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로 향하다2500년 전 고대 세계에선 태양 아래 가장 부유한 제국이었다는 페르시아의 수도, 페르세폴리스. 이곳을 방문하기 위해 얼마를 별렀는지 모른다. 우리는 말로만 전해 듣던 페르세폴리스의 실체를 보기 위해 길을 나섰다. 일단 자전거는 잠시 접어 두었다. 택시를 타고, 다시 버스를 갈아탄 다음, 다시 택시로 갈아탔다. 그동안 연마한 페르시아 말로 더듬거리며 길을 물었다. 택시에서 내린 후에도 우린 다시 한참을 걸어야 했다.
"아! 소문대로다."
강렬한 오전 햇살 속에 다가오는 페르세폴리스의 거대한 실체. 우리는 지금 역사 속의 위대한 문화유산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원래 이름은 팔사, 알렉산더 대왕 침략 후 지금 이름으로 페르세폴리스는 그리스어로 '페르시아의 도시'를 의미한다. 기원 전 512년 경, 다리우스는 내전을 끝낸 후 파사르가드(Pasasaga) - 수사(Shshe)에 이어, 여름 수도 역할을 위해 당시로선 이 거대하고 믿을 수 없는 궁전의 건축을 시작했다. 그 후 페르세폴리스는 크세르크세스 1, 2세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 2세에 이르기까지 장장 150년에 걸쳐 완성되었다.
페르세폴리스는 라마 산의 경사진 곳에 자리 잡고 있고, 이곳의 원래 이름은 팔사(Parsa)였다. 하지만 바깥 세상에 이곳의 이름이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이 있고 난 후, 이곳의 그리스식 이름인' 페르세폴리스'로 불리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어떤 역사학자들은 페르세폴리스의 파괴가 사고였을 거라고도 얘기하고, 어떤 역사학자들은 150년 전 페르시아의 아테네 침공에 대한 알렉산더의 복수였을 거라고도 얘기를 한다. 또 다른 어처구니없는 소문은, 알렉산더의 명령, 즉 이 엄청난 도시의 파괴가 페르세폴리스 점령을 축하하기 위해 열린 연회에서 만난 한 접대녀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서였다는 것이다.
세계의 왕이 거주했던 궁궐페르시아 제국은 동으로는 인도까지, 지중해에서는 그리스까지, 그리고 그 아래로는 이집트와 이디오피아, 북으로는 러시아까지 팽창했다. 각기 다른 30여 민족을 하나의 제국으로 묶고, 그 거대한 제국의 주인은 스스로를 세계의 왕이라 불렀다. 그리고 이 페르세폴리스는 그 세계의 왕이 거주했던 궁궐이다.
새해가 되면, 모든 다른 왕조들의 사신들이 이곳에 와서 신하로서 충성을 맹세했다. 하지만 사실, 이곳은 1년 중 다른 시간에는 거의 사막과 다름이 없는 곳이었다고 한다. 직접 이곳을 방문해, 이곳의 황량함을 겪어본다면 이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게 될 것이다. 처음 이곳에 도착했을 때 가졌던 느낌도 다름 아닌, '뭐, 이런 곳에 궁전을 세워놓았지?'였으니까.
이 궁전은 밖에서 보면 18미터의 벽과 출입구로 둘러싸여있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하지만, 현재는 그런 느낌을 받기에는 너무도 많이 훼손되어 있다. 비록 길이 좁긴 하지만, 처음 이 페르세폴리스로 들어가는 웅장한(?) 계단을 오르고 나면, 정교하게 조각된 거대한 돌상들을 만나게 된다.
길고 우아한 소매가 늘어진 옷들을 입은 페르시아 인들이 이 거대한 건축물 사이의 통로를 따라 왕궁으로 들어가곤 했을 것이다. 그리고 외국의 중요한 사신들이 도착할 때마다, 이 계단의 꼭대기에서는 나팔수들이 나팔을 불어 사신이 도착했음을 알렸다.
'모든 국가들의 문(The gate of all nations)'이라 일컬어지는 이 거대한 돌문과 그에 새겨진 조각과 그 뒤의 석주에 온통 마음이 빼앗기고 있을 무렵, 아래 부분에 사람들이 새겨놓은 낙서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흔적들을 자세히 읽어보니 '1810 Granytan, 1899. E.andre.' 그것은 틀림없이 당대의 연도와 사람의 이름을 새겨 놓은 것이었다.
우리가 어디에 놀러 가면 '철수, 영희 여기 왔다가다' 라는 식의 흔적을 남기듯이 그들도 흔적을 남겨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 연도가 1~2백 년 전의 것이라니 새삼 놀라울 따름이다. 그리고 한때 지구상의 거의 모든 나라들을 나누어 먹었던 제국주의 국가들의 흔적을 이곳에서도 발견하게 되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았다.
똑같은 사물과 똑같은 장소, 그러나 보는 시각에 따라 달라페르세폴리스의 내부는 부속 건축물 없이 혼자 덩그러니 서 있는 거대한 석주들과 그 건물의 흔적들, 왕들이 살았던 궁전 터와 무덤 그리고 각국의 사신들이, 이 위대한 제국의 속국으로써 조공을 바치는 장면들이 새겨져 있는 계단 터, 조로아스터교(배화교)를 숭상하는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새겨져 있는 부조들로 이루어져 있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이곳에서는 하늘로 쭈욱 뻗어 있는 석주들을 계속 올려다봐야 했기 때문에 목이 아파왔다. 그리고 오전인데도 하늘로부터 직선으로 내리꽂히는 햇살이 너무도 뜨거웠다. 우리는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수천 년의 숨길을 한순간에 느끼는 것은 왠지 예의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쉬엄쉬엄, 유적들이 만들어내는 그늘 속으로 들어가 관련 책자를 보고 공부하면서 조금씩 발걸음을 옮겨갔다. 그러다 우리는 약간의 경사진 언덕에서 페르세폴리스의 전경을 바라다보았다. 또 다른 느낌이었다. 똑같은 사물과 똑같은 장소지만, 보는 시각에 따라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여담이지만 문득 오래전,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이 학생들을 한명 한명 앞으로 불러내어, 선생들의 권위이자 전유물인 교탁에 올라서게 한 후 교실을 내려다보게 하던 장면이 떠올랐다.
"내가 교탁에 서있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세상을 항상 다른 시각으로도 보기 위해, 끊임없이 스스로를 일깨우기 위함이지! 세상을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해.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들 땐, 반드시 다른 시각에서도 그 사실을 보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공사에 동원된 모든 일꾼에게 급료를 지급했다니…이 폐허가 된 고대의 도시는 수천 년의 세월을 모래와 흙먼지에 뒤덮인 채 묻혀 있었고, 1930년대 이곳의 대대적인 발굴 작업이 시작되고 나서부터 서서히 과거의 잃어버린 영광이 세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실 이 위대한 왕조의 심장부에 서 있는 도시 페르세폴리스는 발굴되기 전까지만 해도 서구 사회의 역사기록에서는 거의 언급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페르세폴리스의 존재 자체를 바깥세상에는 언급하지 않고 비밀로 했었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페르시아인들은 역사에 거의 문서를 남기지 않았기에, 페르시아에 대해 아는 건 대부분 그리스의 자료를 통해서다.
그런데 그리스와 페르시아는 원수지간이었고, 전쟁에 이긴 건 그리스였다. 결과적으로 역사는 승자인 그리스 인들에 의해서 쓰인 것이다. 그리스 인들은 스스로를 높여서 미화했고, 페르시아인들은 잔인하고 낙후된 민족으로 폄하하여 묘사했다.
하지만 최근 활발해진 페르세폴리스 연구를 통해, 그것들이 근거 없는 비난이었음이 밝혀졌다. 페르시아는, 그 어느 고대제국보다도 평화를 사랑했고, 타민족의 생활방식과 그들의 문화를 인정하고 유지할 수 있게 허용하는 관용적인 제국이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 페르세폴리스와 관련된 이야기 중 정말 믿기 어려운 부분은, 그 옛날, 이 공사에 동원된 모든 일꾼들에게 급료를 지급했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이 공사에 쏟아 부었다. (이 유적에서 발굴된 설형 문자를 해독해 알아낸 사실이라고 한다.)
찻집을 찾아 박물관 근처를 서성일 무렵, 영아를 잃어 버렸다. 한참을 찾고 있는데, 어디선가 나타난 영아가 갈 데가 있다며 손을 잡아끌었다. 잠시 후 찻집은 없어졌지만, 방문객에게 차를 한 잔 대접할 수는 있다며 이란 식 홍차를 내놓은 이란인 현지 아가씨를 소개받았다.
그녀의 이름은 미나. 작년부터 이곳에서 발굴 작업 일을 한다는 이 아가씨는, 종이와 연필을 꺼내더니, 우리에게 시라즈(Shiraz)에서 가볼 만한 곳들을 죄다 적어주었다. (후일 그녀와의 인연은 과거 세계의 중심이라 불렸던 도시, 이스파한에서 다시 이어지게 된다.)
보통은 사람들이 한두 시간 만에 구경하는 이곳을 다섯 시간이 넘도록 보았지만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비록 알렉산더의 말발굽 아래 폐허가 되었고, 지금은 부서진 도시로 남아 있지만 그 옛날 2000년도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 당시 사람들이 만들어낸 위대한 문명의 흔적과 그들이 누린 영화에 대해 상상의 나래를 펴보게끔 하는 데는 조금의 부족함이 없는 곳이었다.
기원 전에 지어진 건축물이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규모와 웅장함이 있었고, 이번엔 어린 시절 읽었던 플루타르크 영웅전의 영웅이었던 알렉산더 대왕의 편이 아닌, 페르시아의 편에 서서, 침략자, 파괴자 알렉산더를 지켜보는, 또 다른 시각을 가지게 된 계기가 되었다.
내 생애 다시 이곳에 들러 페르시아의 영화를 추억할 일이 있게 될는지.
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은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