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달진 계곡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들리면 대지 위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남녘보다는 좀 늦은 감이 있지만 어쨌든 서울에도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립니다. 뒤질세라 앞 다투어 새싹들이 삐죽삐죽 솟아오르고 개나리 가지에도 물이 흠뻑 올랐습니다. 양지 바른 곳에 있는 매화나무 가지와 복숭아 가지 위에도 새순들이 길 가는 행인들에게 빼꼼히 인사를 합니다.
겨우내 숨죽이고 있던 새싹들의 기지개와 함께 농부들도 들판으로 나가는 시간이 많아집니다. 아파트 앞 화단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원추리가 얼었던 땅이 풀리자 힘겹게 봄빛 맞이하러 힘겹게 고개를 듭니다. 이른 봄에 쌓여있는 눈을 뚫고 꽃이 피어 봄의 시작을 알리는 꽃으로 알려진 복수초 꽃이 노랗게 활짝 피어 미소를 보냅니다. 그 곁에 한들거리는 난이 성급한 마음에 꽃을 피워 한들한들 거립니다.
맑은 햇빛이 꽃들을 향해 춤을 춥니다. 1층 사시는 할머니는 봄이면 온갖 자태를 뽐내며 피어나는 다른 꽃들을 빨리 보시고 싶은 마음에 호수를 연결하여 물을 주고 계십니다. 봄은 조용히 소리 없이 우리 곁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휴일을 맞아 동산을 오르고자 들판을 지나가는데 부지런한 농부들은 벌써 씨를 뿌리거나 심기 위해 들녘으로 나가 밭고랑 사이로 부지런히 몸을 놀림니다. 농사일이 힘든 일이지만 새로운 시작은 누구에게나 설렘을 주기 마련인 가봅니다. 농부들의 웃음소리가 먼 곳까지 들려옵니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밭갈이를 하는 농부들을 보니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이맘때쯤이면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라 이제는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도 있으련만 그래도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자식을 둔 부모가 되어서야 힘들게 농사일을 하셨던 부모님 생각이 납니다. 자식들을 위해 고생하신 부모님 모습이 가슴 저리게 다가오는 것을 보니 이제야 조금씩 철이 들어가나 봅니다. 예전에 힘겹게 일 하시던 부모님을 보는 것 같아 잠시 발을 멈추고 바라봅니다.
씨를 뿌리고 씨앗이 제대로 구실을 하기 전까지 자식을 돌보듯 정성을 다해 보살피는 농부들, 그 분들의 주름진 얼굴에 환하게 웃으시는 모습이 빛에 반사되어 정겹습니다. 우리들 부모님의 모습입니다.
산 중턱쯤 오르자 봄바람이 살랑 얼굴을 스치고 나뭇가지를 흔들던 바람은 다시 머릿결을 스르르 만지며 지나갑니다. 스치는 바람이 상큼합니다. 멀리 보이는 밭이랑 사이에 1농사를 짓기 위해 거름을 내려놓았는지 큼큼한 냄새가 납니다. 그래도 봄은 모든 것을 향기롭게 만들어 줍니다.
새 생명이 움트는 소리와 함께 성큼 다가온 봄을 만끽하며 산을 오릅니다. 산을 찾는 사람들의 옷차림도 가벼워 보입니다. 동네 동산이라서 자주 찾는 곳이지만 오늘은 남달리 아름다워 보입니다.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을 흠뻑 들이키고 찬찬이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들판에는 제법 사나웠던 꽃샘추위를 이겨낸 복숭아, 매화, 벚나무, 진달래 등등 꿋꿋한 생명의 흔적들이 여기저기서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서로 꽃을 먼저 피워 뽐을 내고 싶은 모양입니다. 나는 살짝 얘기합니다. 빨리 피워라 나중에 다시 와서 너희들의 예쁜 모습을 봐줄 터이니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