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3월 하늘에 황사가 짙게 깔렸습니다. 기생화산 기슭에도 바닷가 모래밭에도, 노란 유채꽃 꽃잎 위에도 황사는 연기처럼 머물러 있습니다.
노꼬메 오름, 봄을 잉태하기 위한 환절기 춘분을 나흘 앞둔 휴일, 해발 90m에서부터 시작되는 노꼬메 용암기슭에는 이른 아침부터 오르미들이 술렁입니다. 봄 마중을 나온 게지요. 하지만 ‘바람의 신 영등신’이 머물러 있으니 제주바람은 아직 매섭습니다.
지난해 5월이었습니다.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노꼬메오름 입구는 밀가루에 계란을 풀어 노릇노릇 지져낸 부침이 같은 노랑제비꽃이 수를 놓았었지요. 노란 꽃방석을 깔아 놓은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3월의 노꼬메오름은 환절기입니다. 계절의 교차로, 겨울이 봄을 잉태하는 순간이라 할까요. 때문에 검붉은 흙덩이만이 속살을 내밀 뿐. 보랏빛 제비꽃도 클로버 이파리도 화산쇄설물속에 숨어 있습니다. 황무지 같은 기생화산에 뿌리 내릴 야생화들이 터를 잡기까지는 봄바람과 햇빛이 필요하겠지요.
봄 마중 온 제주 마소의 행진 이때 봄을 마중 나온 이가 있습니다. 제주가 고향인 제주 마소 입니다. 겨우내 눈 쌓여 푸른 이파리가 궁핍했을 노꼬메오름, 말들은 먹이를 찾아 답사를 나왔나 봅니다. 녀석들은 떼를 지어 다닙니다. 꼬리를 흔들기도 하고 서로 등을 비비기도 하고 지나가는 오르미들에게 눈짓을 보내기도 합니다. 누렁이가 먹이를 찾아 나서면 어느새 흰둥이는 누렁이 뒤를 쫓습니다. 녀석들은 환절기 오름 속살이 풍성하지 않은지 헛걸음질만 합니다.
오름 가는 길에는 마소의 분비물이 수를 놓았습니다. 길가까지 먹이를 찾아 헤맸나 봅니다. 등산로 역시 해빙기입니다. 발걸음을 옮기기만 해도 흙이 힘없이 부스러집니다. 하지만 돌계단 틈새에는 이제 막 이끼가 돋습니다. 척박한 용암지대에도 생명이 존재합니다.
해발 833m 말굽형분화구 잔설남아겨우내 노꼬메를오름을 지켰던 나목들은 작업 중에 있습니다. 숲이 조용할 걸 보니 머지않아 새 생명이 태어날 모양입니다. 진통이 끝나면 오름 속살은 다시 왁자지껄 하겠지요.
해발 833m 노꼬메오름 정상엔 봄이 왔을까요? 숨을 헉헉대고 억새밭 능선을 따라 올라봅니다. 하지만 북서쪽으로 벌어진 말굽형분화구 안에는 아직 잔설이 남아 있습니다. 정상에는 봄이 찾아왔으리라는 기대는 희망이었겠지요.
제주의 봄은 오손 도손 떼 지어 다니는 제주 마들의 말발굽 아래에서 시작됩니다. 그 말발굽아래에는 온갖 야생화가 피어날 테니까요. 그땐 노꼬메오름에도 봄의 왈츠가 시작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