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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작을 주민들 "정동영-정몽준 출마는 정치싸움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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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정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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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실로 쌈 붙여 놨구만." 서울 동작구 사당동 남성시장. '정의 전쟁'이 벌어진 동작을 지역의 유명 재래시장이다. "오늘 정동영·정몽준씨가 상가를 돌며 인사를 다닌다더라"고 말을 붙이자, 한 상인은 "정몽준까지 출마하느냐"며 이렇게 말했다. '욕실로'는 '일부러'라는 뜻의 전라도 사투리다.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이 정몽준·정동영, 두 '거물'들을 보내 싸움을 붙여놨다는 뜻이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에 이어 정몽준 최고위원까지 출마선언을 한 탓에, 동작을 지역구는 유례없이 언론의 주목을 받고 있다. "우리 동네가 격전지?"... 두 거물 출마에 주민들 '어리둥절'
그러나 주민들은 이런 상황이 어리둥절한 듯 했다. 사당동 주민 신미라(37)씨는 "왜 갑자기 유명하신 분들이 여기로 나오시려는지 모르겠다"며 "출마 보도를 접하고 무척 뜻밖이었다"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동작구에서만 8년을 살았다는 50대의 한 여성도 "연일 기자들이 찾아와 어리둥절하고 놀랍다"며 "왜 다들 여기로 나오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짐짓 불쾌한 기색도 엿보였다. 남성시장에서 식자재도매업을 하는 정아무개(50)씨는 "정당들이 주민을 우습게 봤다는 증거"라며 코웃음을 쳤다. 정씨는 "진작부터 터 닦아놨던 후보들은 밀려나고 두 정치인들이 갑자기 쳐들어왔다"며 "한 마디로 우리를 쉽게 봤다는 것"이라고 불만을 터뜨렸다. 그는 "길게 보면 유명한 정치인들이 출마했으니 누가 되더라도 동작(을)구가 발전할는지는 몰라도, 당장에는 정치적으로 활용되는 느낌"이라며 "두 후보들이 앞으로 어떻게 선거운동을 할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동작을은 지난 17대 총선에서 이계안 통합민주당 의원이 당선됐던 곳이다. 일찌감치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이 의원은 정 전 장관을 돕고 있다. 한나라당은 애초 비례대표였던 이군현 의원이 이 지역에서 공천을 내정받았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의 출마결정에 당 공천심사위원회는 정 최고위원으로 후보를 바꿨다. 정 전 장관을 겨냥한 전략공천이었다. 이 의원은 고향인 통영·고성으로 돌려 공천을 확정했다. "두 당 대리전 전쟁터 됐다" - "선거가 재미있어졌다" 사당동에 사는 김상희(48)씨는 "우리 동네에 연고도 없는 후보들 아니냐"며 "게다가 이름 있는 분들이시니 당선이 돼도 중앙정치하느라 우리 지역을 얼마나 신경 써줄지 의문"이라고 꼬집었다. 김씨는 "지역을 생각해서 출마했다기보다는 두 당이 서로 '정치싸움'한다는 생각이 든다"며 "구경거리는 되겠지만, 길게 봐서 우리지역에 어떤 도움이 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당 '대표선수'의 출마로 주민들이 들썩이는 건 사실이었다. 다른 때보다 선거에 더 관심이 간다는 의견도 적지 않았다. 25년째 동작구에서 살고 있다는 이정옥(59)씨는 "이제 여기도 옆 동네(서초구) 선거 못지 않게 주목을 받는 때가 왔다"며 "이번에는 후보들을 더 면밀히 살펴 투표하겠다"고 밝혔다. 옷가게를 하는 박아무개(52)씨도 "우리 지역 선거가 아주 '재미있는 게임'이 됐다"며 "정말 선거철 같다"고 반겼다. 또 다른 주민도 "어떤 후보든지 지역 경제만 살려주면 좋겠다"며 "유명하신 분들이 나왔으니 당이 아닌 인물과 공약을 꼼꼼히 따져보고 표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정몽준, 장도 보고 만두도 사먹어... '귀족색' 벗기
동작을은 한강 이남이면서도 '강남대접'을 받지 못하는 곳이다. 서민색이 강하다는 얘기다. 호남출신 지역민이 많다는 점도 흥미롭다. 정동영 캠프는 "호남인구가 30%는 될 것"이라는 자체 분석을 내놨다. 그러나 집권 여당을 등에 업은 정몽준 후보의 '바람'이 만만찮은 상황이다. 지난 17일 발표된 <조선일보>-SBS-한국갤럽의 공동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몽준 후보는 49.3%로 정동영 후보(37.4%)를 11.9% 포인트 차로 앞서고 있다. 두 후보는 이날 하루 지역구를 바쁘게 누볐다. 두 사람은 한 때 대권의 꿈을 꿨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직접 승부는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2년에는 좋지 않은 기억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후보 단일화를 했던 정몽준 후보가 돌연 지지를 철회하는 '폭탄'을 터뜨린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당시 투표일 하루 전날 명동 유세에서 '다음 대통령은 정몽준'이라고 적힌 팻말을 보고는 "속도위반 하지 말라. 우리에게는 정동영·추미애도 있다"고 말한 것이 화근이 됐다는 설이 나돈 바 있다. 정몽준 후보는 새벽 7시 흑석동 일대를 시작으로 사당동 남성시장, 흑석1동 상가를 찾아 주민들을 만났다. 정 후보는 언론인터뷰나 특강을 제외하고는 일과를 지역구에서 보냈다. 이날 오전 남성시장을 찾은 정 후보는 직접 고추를 사기도 하고 만두도 사먹었다. 옷차림도 정장을 벗고 파란색 점퍼에 베이지색 바지를 입었다. 귀족적인 이미지가 강하다는 평을 의식한 듯 했다. 젊은이들과 악수를 할 때는 "자원봉사를 하는 게 어떠냐"며 농담을 건네기도 했다. 정 후보는 "(외지인인데도 나를) 다들 반갑게 맞아주시니까 아주 좋다"며 "국회의원을 하는 동안 울산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었는데 이제는 서울의 중심인 동작을 살기 좋은 도시로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정동영, 노인에게 무릎 굽혀 눈 마주치며 악수 정동영 후보도 엿새째 지역민심 잡기에 나섰다. 정 후보는 이날 새벽 지하철 7호선 남성역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해 사당동 일대를 샅샅이 훑었다. 그는 시민들과 악수를 할 때는 꼭 두 손을 잡았다. 키가 작은 노인에게 인사할 때는 무릎을 굽혀 시선을 마주쳤다. 정 후보 못지않은 인지도가 있는 부인 민혜경씨도 같이 움직였다. 정 후보는 이날 아침 2시간 동안 지하철역 입구에서 주민들을 만난 뒤 근처 해장국집에서 아침식사를 했다. 정 후보는 "주민들 중에 반가워하는 사람들도 있고, 왜 갑자기 여기로 나왔느냐는 반응도 있다"며 "하지만 동작을에 관심이 집중된 것에 대해서는 다들 좋아하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당이 어려운 상황이니 필요하면 진 자리 마른 자리 가리지 않겠다는 자세로 출마한 만큼 열심히 뛰겠다"고 덧붙였다. 진보 정당들 "우리가 진짜 서민 후보" 진보 정당들도 후보를 확정하고 동작을 공략에 나섰다. 진보신당은 지난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김종철씨를 내세웠다. 김 후보는 두 후보를 겨냥해 "공약을 보면 너무 비슷해 왜 다른 당으로 나왔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라며 "진짜 서민 정책으로 승부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지희 민주노동당 후보도 이날 출마선언을 하고 "노동자·서민들의 거주지인 동작 을이 난데 없이 보수양당의 자존심 싸움터가 됐다"며 "노동자·민중의 이름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는 기적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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