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낮 없이 문 열어놓고 지내도 상관없지, 뭐 가져갈 게 있어야 도둑도 들지. 이 늙은 몸 가져 가봐야 어디 쓸데가 있어야 가져가지, 머슴을 살리겠나 일을 시키겠나, 아무짝에도 쓸모없지."남부면 다대마을, 바다가 보이는 한적한 집에서 유일한 식구인 고양이와 단둘이 자연과 벗 삼아 살아가고 있는 최진의(71) 전 거제시농촌지도소장은 자연에 동화돼 유유자적 살아가면 그동안 보지 못한 세상이 보이기 시작한다고 말한다.
최씨는 "아무리 막돼먹은 사람이라도 혼자서 숲에 서너시간 앉아만 있어도 인생에 대한 생각이 틀려지고 이 일이 계속되다보면 다른 세계가 보이기 시작한다"며 "그 맛을 즐기려고 매일 소나무 숲에서 솔향을 맡으며 지낸다"고 말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솔향기를 맡으려 집 뒷산을 찾아 소나무 사이를 거닌다. 직접 밥을 지어 먹고 설거지 후 집청소가 끝나면 책을 보기도 하고 글을 쓰기도 한다.
20년 전 수필문학사에 등단, 거제수필 초대회장을 지낸 이후 지금까지도 꾸준히 글쓰기는 포기하지 않는다. 또 바다가 숲에 깔아 놓은 방석을 찾는 일도 잊지 않는다. 방석에 앉아 명상도 하고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일이다. 최씨에게는 이 일 또한 솔향 마시는 일과 함께 하루일과 중 가장 중요한 일이다.
시골생활은 계절을 미리 맛 볼 수 있어 좋다는 최씨는 "내 마음에 꽃이 피고 새 기운이 돋아나면 곧이어 앞뜰에 봄꽃이 피고, 바람만 지나가도 눈물이 나고 야속하고 쓸쓸해지면 몇일 후 가을이 온다"면서 "젊을 때 알지 못했던 많은 일과 생각들을 혼자서 생활하는 이 집에서 얻는다"고 말했다.
사천이 고향인 최씨가 남부면 다대마을 한적한 곳에서 은둔(?)생활을 하게 된 것은 거제시농촌지도소에서 3년간 근무한 것이 인연이다.
35년 공직을 정년퇴임하고 산 좋고 바다가 훤히 바라보이는 이 집에서 6년째 생활하고 있다.
거실에 들어서자 耕雲釣月(경운조월)이란 글귀가 반긴다. 지인이 집에 들렀다가 전해준 글귀로 이제는 최씨의 집이름(당호(堂號))이 됐다. 구름을 갈고 달을 낚는다는 뜻으로 최씨의 집에 앉아서도 구름을 달을 벗 삼을 수 있다는 자연친화적인 집이란 의미다.
그러나 호사다마(好事多魔)란 말이 무색하듯 2006년 몹쓸병(폐암)까지 얻어 죽음을 넘나드는 투병생활도 시작됐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지난해 11월에는 평생의 동반자인 아내까지 저세상으로 떠났다.
국립암센터에서 정기검사를 받고 있지만 최씨가 믿는 것은 오직 자연요법뿐이다. 최씨는 암을 이기는 방법으로 크게 3가지를 든다. 첫째가 체질 개선이요, 둘째는 자연에서 생산되는 항암물질을 섭취하는 것이고 셋째는 암을 이길 수 있는 면역체계를 기르는 것이다.
특히 무엇보다 중요시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음과 몸을 편안하게 하는 것.
"죽음이 내일 올지라도 오늘은 마음을 밝게 가지고 산다"는 최씨는 "내일 죽을 일이 있더라도 오늘 걱정할 이유가 없다, 내일 죽음이 찾아온다면 내일 죽으면 될 것 아니냐"며 죽음 을 초월한 의연함을 보였다.
"갑자기 찾아 온 손님이라 뭐라도 들려줄 게 없다"고 미안함을 표시하는 최씨는 "기자 양반 다음에 집에 오거든 내가 없더라도 남새밭에 있는 배추도 캐가고 두릅도 따 가게나"하며 아쉬움을 달랬다.
또 "세상과 거의 담을 쌓고 사니 글을 쓰려면 내 이름을 최진의라고 하지 말고 다대마을에 사는 '최다대'라고 써 달라"고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