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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남 보해 매실농원 매년 매화 개화시기에 맞춰 한달 동안 무료로 개방하고, 사진 콘테스트 등 이벤트도 열린다고 한다.
▲ 해남 보해 매실농원 매년 매화 개화시기에 맞춰 한달 동안 무료로 개방하고, 사진 콘테스트 등 이벤트도 열린다고 한다.
ⓒ 보해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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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에 봄 사랑이 알큰하게 펴난다
알큰한 그 숨결로 남은 눈을 녹이며
더 더는 못 견디에 하늘에 뺨 부빈다
시악씨야 네님께선 네가 제일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이 한번 나와 보아라

매화 향기에선 가신 님 그린 내음새
매화 향기에선 오는 님 그린 내음새
갔다가 오시는 님 더욱 그린 내음새
시악씨야 네 님께선 네가 제일 그립단다
매화보다 더 알큰이 한번 나와 보아라

- 서정주 '매화'

단양 기생 두향을 향한 퇴계 선생의 사랑

벌써 남녘에는 언덕마다 매화가 한창이라고 한다. 섬진강가 매실농장도, 해남의 어느 양조회사 매실농원에도 꽃이 만발해 듣자하니 매화가 산을 뒤덮고, 바다를 이룬 듯 장관이라고 한다. 그러잖아도 따사로운 남도 땅 바닷가에 울긋불긋 매화는 물론 노란 산수유까지 합세했을 테니 얼마나 아름다울까 눈에 선하다.

매화는 일찍이 사군자의 첫 손에 꼽히며 많은 문사들의 사랑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도산서원의 창업자이신 퇴계 이황 선생의 매화사랑이 유난했던 모양이다.

어느 정도인고 하니 매화를 인격체로 여겨 '매형(梅兄)'이라 불렀고, 선생께서 말년에 병색이 깊어지자 방안에 있던 매화 분재를 밖으로 내보내며 ‘매화에게 피폐한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고 했다고 한다. 게다가 마지막 유언 역시 "저 매화에 물 줘라" 였다니 어찌 보면 좀 지나치지 않았나 싶을 정도다.

하기사 단양에서 정분을 쌓았던 어린 기생 두향과 헤어지며 이별의 정표로 받아온 매화 화분이었으니 어찌 소중하지 않으랴. 퇴계 선생에게는 세상 모든 매화가 두향이었을 것이다. 매화를 소재로 쓴 시만도 100여 수를 넘는다는데 그게 다 가슴 속에 두향이를 품고 읊은 시가 아니겠느냐 말이다.

해남 보해 매실농원의 홍매화 퇴계 선생도 이 매화를 볼 때마다 단양에 두고 온 두향이를 그리워했으리라.
▲ 해남 보해 매실농원의 홍매화 퇴계 선생도 이 매화를 볼 때마다 단양에 두고 온 두향이를 그리워했으리라.
ⓒ 보해양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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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사람들의 매화사랑이 어디 퇴계뿐이랴. 매화를 노래한 시문들이며 그림은 수도 없이 많았다.

규방 아녀자들이 놓는 십자수에도 매화요, 궁궐 뒤뜰 담벼락에도 매화 그림이 새겨졌다. 의적 일지매가 부잣집 곳간을 턴 후에 남겨둔 징표 역시 매화 가지였고, 하다못해 기생 이름 중에도 매향·매월·홍매·설중매 등등 매(梅)가 많았다. 춘향이 엄니 월매도, 일지매의 엄니 백매도 전부 매(梅)에서 나온 이름이다.

한옥 기둥 주련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 한시도 매화의 굳은 절개를 노래하고 있다.

桐千年老恒藏曲(동천년노항장곡)  오동나무는 천년이 지나도 항상 곡조를 간직하고 있고,
梅一生寒不賣香(매일생한불매향)  매화는 일생 동안 춥게 살아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
月到千虧餘本質(월도천휴여본질)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柳經百別又新枝(유경백별우신지)  버드나무는 백 번 갈라져도 새 가지가 올라온다.

'매화 폐인' 우봉 조희룡

홍매도 조희룡, 족자 대련, 종이에 담채, 개인 소장, 용을 닮은 듯한 늙은 나무에서 뿜어져나오는 붉은 홍매화 그림으로 그가 그린 많은 매화 그림 중에서도 단연 명작이다.
▲ 홍매도 조희룡, 족자 대련, 종이에 담채, 개인 소장, 용을 닮은 듯한 늙은 나무에서 뿜어져나오는 붉은 홍매화 그림으로 그가 그린 많은 매화 그림 중에서도 단연 명작이다.
ⓒ 조희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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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사랑이라면 단원 김홍도의 일화도 빼놓을 수 없다. 우봉 조희룡이 쓴 <호산외사>에 따르면, 살림이 넉넉지 않아 끼니를 잇기 어려웠던 김홍도는 그림을 팔아 번 돈 3000냥 중에 2000냥은 매화 분재를 사는 데 쓰고, 800냥으로는 친구들을 불러 술을 마시고, 나머지 200냥으로 식량과 땔나무를 구입했다고 한다.

구워먹을 수도, 삶아 먹을 수도 없는 매화를 사는 데 가장 큰돈을 들이고, 나머지 돈으로는 술잔치를 벌인 그의 호방함은 가히 신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그 호방한 성격 덕분에 그는 아들의 등록금도 대주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는 대목이긴 하다.

하지만 나는 매화사랑의 최고봉으로 우봉 조희룡을 꼽고 싶다. 그는 조선 말기의 화가로 시서화 삼절이라 할 만큼 다방면으로 재주가 뛰어났으나 특히 매화를 많이 그렸고, 남아있는 작품들 중에서도 매화 그림이 단연 우뚝하다.

그는 자신의 집을 '매화백영루'라 이름짓고, '매화시경연'이라는 벼루에 '매화서옥장연'이란 먹을 갈아 매화 그림을 그리고, 그 매화 병풍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 드러누워 '매화시백영'이라는 시를 읊다가, 목이 마르면 '매화편차'를 끓여 마셨다고 한다. 매화로 누릴 수 있는 모든 풍류를 한꺼번에 관통해버렸으니 요새 사람들의 용어로 말하자면 '매화 폐인'이었다고나 할까.

오원 장승업의 생애와 예술을 소재로 만든 영화 <취화선>에도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다. 장승업(최민식 분)이 오랜만에 집에 돌아와 보니 기생출신 아내(김여진 분)가 외간남자, 하필이면 같은 화공 출신이었던 '평산'이랑 바람피우고 있는 것이었다.

분노한 장승업이 빗자루 몽댕이로 아내를 패면서 이별을 고하자 그녀는 "갈 때 가더라도 돈 될 그림 한 장 그려주고 가라"고 한다. 바로 이때 마당 가득히 큰 화선지를 펼쳐놓고 술상까지 받아 마셔가면서 그렸던 그림 또한 매화였다. 아마도 임권택 감독이 호암미술관에 있는 10폭 병풍을 이때 이 마당에서 그린 그림으로 설정한 것이 아닐까 싶었다.

섬진강 매화마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올해도 시간이 여의치 못할 것 같다. 아쉬운 대로 근교 아무 공원이라도 찾아 매화를 구경하고, 슈퍼마켓에 가서 매실주나 몇 병 사다가 홀짝홀짝 마시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취화선 오원 장승업의 생애와 예술을 다룬 임권택 감독의 영화, 조선 말기의 화풍과 여러 화가들의 예술을 엿볼 수 있는 힌트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 취화선 오원 장승업의 생애와 예술을 다룬 임권택 감독의 영화, 조선 말기의 화풍과 여러 화가들의 예술을 엿볼 수 있는 힌트들이 많이 담겨 있었다.
ⓒ 태흥영화(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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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해매실농원#매화#섬진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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