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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인의 경지인 총각 이발사의 능숙한 솜씨 가난한 손님들의 처지도 생각할 줄 아는 멋있는 총각 이발사의 솜씨가 가히 달인의 경지에 이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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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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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놀림이 가히 예술입니다. 경력이 얼마나 되셨나요?"
"아, 예! 올해로 11년째입니다."
한 달 만에 찾은 이발소다. 그런데 요즘은 이발소라는 간판을 단 업소가 거의 없다. 그래서 내가 단골로 찾는 이발소도 사실은 이발소가 아니고 '보이 컷(Boy cut)'이라는 간판을 단 곳이다.
내가 이런 남성전용 이발소를 이용하게 된 것은 불과 몇 년 전이다. 그 전에는 흡사 여성들의 미용실처럼 꾸며놓은 곳이어서 감히 들어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그런데 우연히 이런 형태의 남성전용 이용업소가 있다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이런 업소만 이용하게 된 것이다.
우선 이용료가 저렴해서 좋았다. 또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금방 할 수 있는 것이 내 맘에 쏙 들었다. 그래서 지금 사는 마을로 이사를 한 후에도 근처에서 이런 업소를 찾아보았는데 집에서 걸어서 5분 거리에 마침 이런 업소가 있었던 것이다.
강북구 미아 4동 경남 아파트 앞에 있는 이 업소는 몇년 사이 주인과 간판이 한 번 바뀌었지만 내게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이용료나 하는 스타일이 비슷하면 그만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 업소에서는 30대 후반의 노총각이 혼자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손님도 그리 많지 않아서 일단 찾아가면 대개 20분 이내에 이발을 마치고 나올 수 있으니 얼마나 편리한지 모른다.
오늘도 덥수룩한 머리를 매만져보다가 이발소를 찾게 되었다. 그런데 이발소에는 먼저 와있는 두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은 이발 의자에 앉아 이발을 하고 있는 사람이었고 또 한 사람은 대기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래도 문제될 것은 없었다. 두 사람 쯤 금방 끝나기 때문이다. 머리 다듬는 일만 이발사가 해줄 뿐 머리를 감고 씻는 것은 스스로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저 이발을 하고 있는 것을 보니 가위를 움직이고 기계를 써서 머리털을 다듬는 손놀림이 장난이 아니었다.
뭐랄까? 가히 달인의 경지에 와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경력이 몇 년이나 되느냐고 물어보았던 것이다. 이발사가 11년이라고 대답을 하자 앉아서 이발을 하고 있던 손님이 한 마디 거들고 나선다.
"요즘은 이발사라고 부르지 않고 '남성 헤어 디자이너'라고 합니다."
그렇게 부르면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았다.
"분명히 다르지요. 그냥 이발사로고 하면 기능인 같지만 '남성 헤어 디자이너'라고 하면 남성미를 창조하는 예술가라는 것이지요."
아하! 그렇구나. 이제 남성들도 단순하게 머리털을 다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었다. 시대가 변해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이제 여성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것이다. 요즘은 남성들도 멋과 아름다움을 갖춰야 경쟁력이 있다는 말이었다.
"여기도 요금을 조금 올리지 그래요. 일부 미용실은 5000원씩이나 올려 받고 있다던데요. 2만원 받던 것을 2만5000원, 3만 원짜리는 3만5000원으로…."
이발을 하고 있던 손님이 오히려 왜 요금을 올리지 않느냐고 묻는다. 그런데 이 업소는 정말 몇 년 전에 받던 요금 5000원을 지금도 그대로 받고 있었다.
"올리기는요, 얼마나 올리겠어요? 하긴 500원씩만 올려도 만만치 않은 금액이긴 하지만요."
단골손님들이 많아서 500원씩만 올려 받아도 매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재료값이 올랐다고 해도 크리 큰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물가가 올랐다는 핑계로 1인당 재료비 1000원이나 2000원쯤 오른 것을 5000원씩이나 더 올려받는 미용실은 오른 물가를 핑계로 폭리를 취하는 거지요."
딴은 맞는 말 같았다. 요즘처럼 물가가 뜀박질을 하며 춤을 출 때면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것을 핑계로 폭리를 취하는 업자들이 있게 마련인 모양이었다.
이래저래 힘들고 어려워지는 것은 가난한 서민들뿐이다. 돈 많은 부자들이야 그까짓 물가 얼마쯤 오르는 것이 뭐 대수로울 것이 있겠는가. 주머니 가벼운 서민들의 허리만 더 가늘어질 뿐인 것이다.
그래서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5000원짜리 남성전용 이발소인 이 업소 주인도 요금 올릴 생각을 하지 않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참 대견한 일이다. 그 역시 가난한 영세업자이거늘 좋은 기회를 이용하지 않고 다른 가난한 서민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그리 깊으니 말이다. 500원쯤 올려 받는다고 손님들이 어디 다른 곳으로 가겠는가?
그렇게 생각해서일까? 경력 11년의 능숙한 솜씨로 손님의 머리를 다듬는 그의 손길이 다정하게 느껴진다.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손님은 그에게 멋진 머리 스타일을 안심하고 맡긴 듯 느긋한 표정이다. 손님이나 주인이나 서로 상대방의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깊어서일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유포터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