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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의 첫 번째 철학 스승은 우리의 발이다.’ -에밀

아이를 보자. 걷기를 배우는 시기와 언어를 습득하는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우연히 아니다. 위대한 생각들은 빡빡한 책상에서 힘겹게 태어나지 않는다. 뉴턴의 사과처럼 한가로운 일상에서 걷다가 머리로 떨어진다.
 책사진
책사진 ⓒ 개마고원
<걷기의 철학>(개마고원 2007)은 걷기와 철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반가울 책이다. ‘걷기에 대해서 성찰’을 한 내용들은 신선한 표현들로 모처럼 사색하게 한다. 두껍고 어려운 철학책이 뇌를 마라톤하게 하는 거와 달리 이 책은 가볍고 쉽게 뇌를 산책하게 한다.

이 책은 크게 세부분으로 나뉜다. 먼저 걷기와 관련된 낱말들을 사유한다. 보기를 들면 느림, 관광, 순례, 시위, 산책, 원정 같은 것들이다.

다음으로 걷기라는 행위가 가르쳐주는 의미에 대해 성찰을 한다. 이 부분이 상당히 재미있고 되새길수록 씹는 맛이 난다.

산에서 가장 짧은 경로는 탈진과 실패의 길이다.…(중략)…가볍게 우회하는 것은 정상과 등반자 사이에 거리를 늘림으로써 오히려 정상에 더 가까워지게 한다.…(중략)…멀리 돌아가는 길은 자기 자신으로부터 삶으로 나아가는, 가장 풍요롭고 바람직한 길이다. - 신발 끈의 교훈

내달리는 사람이 조급하다면, 걷는 사람은 한가하다. 전자는 시간에 쫓기고 후자는 시간을 들인다.…(중략)…달리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도착만이 아름답다. 걷는 사람에게는 오로지 길만이 아름답다. - 걷기와 달리기

마지막으로 플라톤, 에피쿠로스, 몽테뉴, 데카르트, 칸트, 니체, 야스퍼스, 키에르케고르까지 철학자들이 걷기를 하면서 어떻게 사유를 했는지 살핀다. 결국 지혜는 발바닥에서 나오는 걸 알 수 있다.

꼭 산책할 장소가 있어야 한다. 앉아 있으면 사유는 잠들어 버린다. 다리가 흔들어놓지 않으면 정신은 움직이지 않는다. -몽테뉴

책날개를 보면 철학에세이 시리즈가 소개되는데 지은이들은 출판사에 문의해보니 전부 프랑스 사람들이다. 'PAUSE PHILO'라고 해서 프랑스 밀랑출판사가, 누구나 쉽고 자유롭게 철학을 접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철학의 대중화 프로젝트다.

이 책 지은이도 고등학교 철학교사다. 고등학교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나라, 영화 <밤과 낮>(홍상수 감독 2008)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학생들에게 당연하게 보조금을 주는 나라. 새삼 부러웠다.

더군다나 프랑스는 언제나 우둔함을 죄악시했고, 지성의 부재를 부도덕과 같이 보았다. 명철함을 남용하면서도 절대 사랑에 싫증내지 않았던 이 민족의 역설을 누가 이해할 수 있겠는가. -시오랑(프랑스 철학자)

그리스 시대의 아고라(시민 광장), 파리 살롱처럼 지성어린 대화와 사람들의 유쾌한 유대가 이루어지던 곳. 어디서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이번 주말에는 컴퓨터에서 벗어나 운동화를 신고 산책해야겠다. 느리게 걸으며 풍경들에 취해야겠다. 발바닥에서 피어나는 여유를 벗들에게 건네야겠다. 발바닥에서 지혜와 여유가 시작되니까.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www.bookdaily.co.kr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걷기의 철학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 고아침 옮김, 개마고원(2007)


#걷기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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