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을 벗어나 도계를 찾아가는 일이 쉽지는 않다.
3월 둘째 주만 해도 산에는 눈이 지천이었는데 넷째 주가 되니 계절이 봄으로 바뀌었다. 이번 도계탐사는 단양군 대강면 올산리 저수재에서 단양군 단성면 벌천리 모녀티 까지다. 도상거리는 14㎞로 길지만 이 중 9㎞가 도로인지라 탐사에 큰 어려움은 없을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차로 올산리 소백산 목장을 지나 저수재(일명: 저수령, 850m)까지 간다. 저수재는 충북 단양군 대강면과 경북 예천군 상리면을 잇는 927번 지방도가 지난다. 이곳에서 북쪽으로 흐르는 물길은 올산천을 이뤄 남한강에 이르고, 남쪽으로 흐르는 물길은 용두천을 이뤄 낙동강으로 흘러간다. 그러므로 저수재는 백두대간 죽령과 함께 수계가 바뀌는 중요한 고개이다.
우리는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아 산을 오른다. 오늘 도계 탐사의 최고 고도는 1,030m의 문봉재이다. 저수재에서 문봉재까지는 1.2㎞의 완만한 경사로 산행에 별 어려움이 없다. 여유 있게 한 시간 반쯤 걸으니 문봉재 정상이다. 그런데 문경 산들모임 산악회에서 2001년에 세운 표지석에는 문복대(門福臺)라고 쓰여 있다. 어떤게 맞는지 조금은 혼돈스럽다.
첫째 문봉과 문복의 문제다. 산을 얘기할 때는 봉이라는 글자를 많이 쓰기 때문에 문복보다는 문봉이 맞다. 두 번째 재와 대의 문제다. 재는 고개를 말하기 때문에 봉우리인 이곳에는 타당치 않다. 그런데 대라는 표현은 생각보다 많이 쓰이지는 않는다. 북한산의 최고봉인 백운대와 금강산의 천선대 정도를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문봉 또는 문봉대로 썼으면 좋겠다. 사실 후세에 표지석을 세울 때 조금은 더 신중해야할 것 같다.
문봉재에서 도계는 백두대간을 벗어난다. 우리는 북쪽으로 떨어져 단양천의 발원지 쪽으로 내려가야 한다. 그런데 길이 전혀 보이지 않고 또 경사도 상당히 급한 편이다. 박연수 대장이 GPS를 가지고 길을 찾아 간다. 이곳은 북쪽 사면인지라 아직도 눈이 쌓여 있다. 길을 개척하면서 내려가다 보니 벌목을 한 흔적이 보인다. 그리고 저 아래로 올산과 방곡을 잇는 임도가 보인다. 그 임도까지만 가면 도계는 다시 평탄해진다.
곳곳에서 발견한 동식물의 흔적
바로 그 길 왼쪽으로 나 있는 실개천을 따라 도계가 나 있다. 이 실개천이 단양천의 상류이다. 문봉재에서 도계인 실개천까지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지만 길이 없어 1시간쯤 걸렸다. 중간 중간 우리는 동식물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생태 전문가인 여러 선생님들의 조언을 받으며 자연 공부를 한다. 가장 먼저 눈 속에 모습을 보이는 것이 처녀치마이다. 따뜻한 자연의 기운을 받아 잎 가운데 초록색 꽃봉오리를 만들어내고 있다. 4월 10일경이면 꽃을 피울 거라고 한다.
또 곳곳에 토끼 똥을 발견할 수 있다. 대체로 회갈색으로 변한 건조한 것이다. 색깔로 보아 여러 번 소화를 시키고 난 다음의 똥이라고 한다. 한두 군데서는 검은색의 똥도 발견할 수 있다. 토끼가 다닌 흔적도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길의 상하 폭이 30㎝ 정도이면 토끼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곳에 토끼가 살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조금 더 내려오니 엄나무와 두릅나무가 보인다. 엄나무는 겨울의 추위를 이기고 새 순을 내밀고 있다. 지난해의 나무가 회갈색이라면 새 순은 노란색과 연두색 그리고 자주색이 섞여 있다. 한 눈에도 대번 구별할 수 있다. 그러자 대원 중 하나가 엄나무와 두릅나무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는지 물어본다. 대부분 다 그것을 구별할 수는 있지만 차이점을 명쾌하게 설명하지는 못한다. 이게 바로 아는 것과 가르치는 것의 차이이다.
우리는 그 외에도 수리취, 산수국 등을 만난다. 수리취와 산수국은 꽃이 핀 다음 그대로 말라버린 것으로 건조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수리취는 털이 많아 푸근하고 산수국은 꽃잎이 아주 단아하다. 그런데 산수국의 단아한 그 꽃이 헛꽃이라고 한다. 수정을 마친 후 더 이상 벌과 나비를 받지 않는다는 표시를 그 헛꽃이 해준다고 한다. 참 알면 알수록 신비한 자연의 묘미이다.
도계인 실개천에 이르니 비교적 깨끗한 물이 흐르고 있다. 그러나 옆에 도로공사를 해서인지 수질이 최고의 상태는 아닌 것 같다. 바닥에 흙이 약간 퇴적되어 있어 텁텁한 느낌이다. 우리는 물가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나서 도로로 들어선다. 아니, 그런데 이건 임도치고는 대로다, 어떤 곳은 4차선도 가능해보인다. 회원 중 일부가 자연 훼손에 대해 걱정을 한다. 그러다가 이야기가 경부운하에까지 미친다. 그러나 서로 자기의 의견을 지나치게 개진하면 정치적인 문제가 되기 때문에 서로 말하는 것을 삼가려고 한다.
폐가에서 만난 사람들의 흔적
도계 옆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오니 진터 마을에 이르고 몇 채의 집이 나온다. 그런데 이들 모두 폐가이다. 사람들이 떠나고 그들이 살던 흔적만이 남아있다. 한 집에 들르니 살림이 온통 그대로이다. 먼저 부엌에 들어가 보니 싱크대 위에 그릇이 그대로 있고, 냉장고에도 먹던 음식이 용기에 든 채 그대로 있다. 냉장고 안에서 퀴퀴한 냄새가 난다. 거실에도 여러 가지 물건들이 널려 있다. 어떻게 된 건가? 사람이 떠날 때는 흔적을 별로 남기지 않는 법인데 말이다.
방 안으로 들어가니 달력이 보인다. 지금부터 10년 전인 1998년의 것이다. 그렇다면 주인이 이 집을 떠난 지 10년이 되었다는 얘기다. 방 안에는 책들이 널려 있고 한쪽의 옷걸이(행거)에는 옷도 몇 가지 그대로 걸려 있다. 책을 살펴보니 괜찮은 책들이 보인다. 대원사에서 나온 ‘색깔 있는 책들’이 꽤 여러 권 나온다. 전통 부채, 자수 등 민속에 관한 것도 있고 다도와 분재에 관한 것도 있다. 한의학에 관한 석사논문도 보이고 <조선 후기 실학자의 일본관 연구>(일지사)도 있다. 책들로 보면 학문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살던 집인데 어째 이렇게 버려졌을까 궁금하다.
그 옆을 보니 더 괜찮은 책들이 나온다. 1989년 한국일보사에서 발행한 <세계의 박물관(Wonders of the World’s Museums)>전집이다. 총 20권으로 된 총서인데 8권이 끈에 묶여 있다. 그런데 건넌방에서 6권이 또 나온다. 이들은 루브르 박물관, 대영박물관, 이집트 박물관 등 정말 문화유산에 관한 지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6권과 함께 <현대 아리타 도예전 1950-1990>(1992) 도록이 묶여 있다. 일본 큐슈 사가현 아리타에 있는 구주도자문화관에 전시된 이탈리아 도자기에 대해 해설해 놓은 책이다. 아니 내가 지난 2월 아리타(有田)에 가서 일본의 도자기를 살펴보았는데 이 무슨 우연이란 말인가!
나는 이 책을 버려둘 수가 없어 들고 내려왔다. 우리가 도계 탐사를 하면서 하는 중요한 일이 산경 탐사, 생태 탐사, 문화 탐사이다. 사실 문화 탐사라고 하면 도계 주변 마을을 찾아 그곳 사람들이 사는 생활과 민속 그리고 문화를 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길에는 사람들은 못 만나고 그들이 살던 집만을 만나 이렇게 좋은 책자도 얻게 되었다. 아, 책은 좋은데 그 놈의 책이 어찌나 무거운지 윤석주 선생과 나는 등골이 다 빠지는 줄 알았다.
다행히 웃점 마을까지 오니 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 도계 탐사단은 자동차 도로가 나 있을 경우 차를 타고 이동하기도 한다. 시간을 절약하는 측면도 있고, 도로를 걷는 것이 위험한 탓도 있다. 차는 눈동 마을에 있는 신선봉 가든으로 간다. 신선봉 가든 옆의 적성교가 충북과 경북을 나누는 경계이기 때문이다. 적성교는 단양군 대강면 방곡리와 문경시 동로면 적성리를 잇는 59번 국도 상에 있다. 벌써 오후 1시가 넘어 이곳에서 점심을 먹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충북 도계탐사 3차년도 사업이 2월 23일부터 시작되었다. 탐사는 매월 2,4주 토요일에 실시된다. 3월22일 제3차 도계탐사가 저수재에서 모녀티까지 진행되었다. 이번 탐사 내용을 2회에 걸쳐 연재한다. 다음 회 제목은 '개울로 도계가 나는 바람에 다른 동네가 되었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