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 내내 봄비가 내린다. 거칠거나 강하게 아닌 낮은 포복으로 내리는 봄비. 이런 날엔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혹은 무엇을 먹고 싶어 할까. 이렇게 봄비 오는 날, 어릴 때 솜씨 좋은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팥수제비랑 부침개, 찐빵 등이 생각난다. 소녀 시절엔 비가 오는 날이면 다락방에 올라가 공중에 빗금을 그으며 가만가만히 내리는 비 소리 들었다. 그러면서 일기장에 뭔가를 끄적이거나 공상을 하거나 책을 읽곤 했다.
아니면 언니, 동생들과 함께 부침개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골목길에까지 그 맛난 냄새가 번져 나가곤 했다. 밖에 있는 날이면 집에 들어가 뜨뜻한 방구들에 배를 깔고 누워서 음악과 책과 커피 한 잔을 놓고 마냥 쉬고 싶었다. 하여튼 비가 오시는 날엔 바깥 보다는 집에, 시끌벅적한 사람들 사이에 있기보다는 조용한 공간, 조용한 시간 속에 파고드는 것을 좋아하게 되나 보다.
일주일 내내 일에 지친 남편은 기가 다 빠진 듯하다. 해서 등산도 가지 않고 낮에 잠시 바람을 쐬고 왔을 뿐, 어젠 집에서 푹 쉬었다. 오늘은 온 종일 봄비 오시니 집에서 쉬기에도 좋다. 도시의 소음도 비 오는 날엔 조금은 묻히는 듯하다. 둘이서 책 읽다, 이야기 하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있다가 우연히 인터넷에서 올라와 있는 음식 이미지를 보고서 남편 하는 말,
“이걸 보니 파전 먹고 싶다.”
“그럴까요? 잠깐만 기다려 봐요.”
그렇잖아도 나도 좀 출출하던 참이다. 비 오는 날엔 왠지 부침개가 먹고 싶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냉장고 안에 부추가 얼마쯤 남아 있는 게 생각이 났다.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신문지에 싸인 부추가 있다. 한 주먹도 안 되는 양이지만 양파랑, 당근 등을 넣어서 반죽하면 같이 먹을 만큼은 될 듯하다. 아주 간단하고 빠르게 부추전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금 시든 부추를 씻어 썰고, 양파 하나도 썰어 넣고, 당근도 채 썰어 넣고, 또 지난 가을에 시골에서 가져 와 냉동실에 보관해 놓고 양념으로 쓰고 있는 풋고추, 홍고추도 하나씩 다져 넣고 부침가루를 넣고 반죽한다. 제법 몇 개는 구울 만한 양이다. 아 참, 오징어가 있지, 냉동 보관해놓은 반 건조 오징어도 꺼내서 잘게 썰어 넣었다.
드디어 구워냈다. 간단하고도 빠르게 만든 부추전, 하나씩 구워서 접시에 담아낼 때마다 오랜만에 먹어 좋은지 부추전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는다. 여러 가지 재료를 준비해서 하지 않아도 이렇게 집에 있는 재료를 이용해 부추전을 만들어 먹어도 맛나기만 하다. 봄비 오는 저녁, 우리의 식탁 위에 오랜만에 올라온 부추전은 인기 만점이다. 비 오는 날이면 가끔씩 이렇게 해먹을 만하다.
밖에는 봄비, 우리집 식탁 위에는 따끈따끈한 부추전 냄새 가득하다. 이런 날 사람들은 무슨 맛난 것을 해 먹을까. 봄비는 이 저녁에도 쉬지 않고 계속 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