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이영훈 교수 등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펴낸 한국 근ㆍ현대사 교과서가 출간되었다. 때마침 이들의 역사관을 비판한 필자의 저서 <뉴라이트의 실체, 그리고·한나라당 : 식민지근대화론 비판>이 도서출판 일빛 ilbit@naver.com 에서 발간된다. 근-현대사에 관한 역사인식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쟁이 불가피해졌다.
현재 “식민지근대화론
=신식민사관”은 현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이념으로까지 승격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재 한나라당의 부설 공식기구인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은 식민지근대화론의 중심인물인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다. 이영훈 교수는 안병직 교수가 이끄는 뉴라이트에 속한다. 이번에 나오는 필자의 책에서는 그들이 제창해온 “식민지근대화론”이 매우 사대주의적 이론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이완용의 실용적 반민족적 역사관과 일맥상통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런 사대주의적 역사관이 활개 치는 대한민국을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 없다는 것이 필자가 책을 내게 된 동기다.
안병직-이영훈 이론은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 근대화 정책 덕택으로 오늘과 같이 잘 살게 되었다고 보는 역사이론이다. 이런 역사관은 일본의 <후소샤>의 군국주의 역사교과서와 사실상 짝퉁이다. 이 때문에 일본의 <후소샤>의 소유주인 극우신문 <산게이신문>은 안변직 교수의 “식민지근대화론”을 1면 톱기사로 보도하면서, 일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한국학자들이 주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크게 부각시킨바 있다.
잘 알다시피 “일본정부가 한국에 대해 잘못한 것이 무엇이 있느냐”라고 주장하는 일본 <후소샤>의 교과서에 대해 우리 국민은 한 목소리로 그 부당성을 항의해왔다. 또 이런 견해에 동조했던 한승조 고려대 명예교수는 언론의 못 매를 맞아 명예교수 자리를 사퇴했다. 그런데 똑 같은 말을 해온 한나라당 부설 여의도연구소 이사장 안병직 교수의 역사인식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언론들이 꿀 먹은 벙어리다.
왜 이런 기이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것은 그의 이론이 일제시기의 각종 통계를 인용하는 등, 숫자의 마력으로 매우 정교하게 포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계숫자라는 것은 보는 사람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된다. 식민지근대화론자들은 일제시대 한국의 여러 가지 통계숫자 가운데 일본정부가 한국경제발전에 기여한 부분만을 뽑아서 부각시켜 왔지만, 그것과 반대되는 사실을 입증할 통계숫자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충남대 허수열 교수의 저서 <개발 없는 개발>(서울 : 도서출판 은행나무, 2005)은 그 좋은 예다. 역사관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3.1절 기념사에서 “편협한 민족주의”를 버려야한다고 강조했다. 세계화시대에 “열린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열린 민족주의는 과거에 대한 무조건적인 망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과거사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없으면, 똑 같은 과오를 반복할 우려가 있다. 이 때문에 과거사를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그래서 역사는 반면교사라고 한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사가 아니라 현실 그 자체이기도 하다.
우리가 일본의 과거사를 올바르게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보는 것 역시, 이웃인 일본이 또다시 과거로 돌아가서 제국주의적 본성을 들어내면 큰일 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가 독도 영유권 문제, 야스꾸니 신사 문제, 일본교과서 왜곡 문제, 일본군 강제 징발 종군위안부의 진실 규명문제 등 과거사와 관련된 문제들을 확실하게 매듭지고 넘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현재의 일본이 과거에 대한 올바른 반성을 하지 않음으로써, 과거의 잘못을 반복할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의 과거사에 대한 확실한 반성의 촉구는 일본의 평화애호국민을 측면에서 응원하는 의미를 갖는다.
필자의 저서가 일제 식민지 시기의 일본의 역할을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식민지근대화론”을 문제 삼는 이유도 과거사가 바로 현재에 그대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역사이론은 매우 사대주의적 역사관의 산물이다. 그들의 역사관은 오늘날 집권 여당의 실용주의적 역사관의 지도이념으로 되어 있으며, 올바른 열린 민족주의의 실종으로 이어질 조짐을 나타내고 있다. 바로 이 점이 한나라당의 정체성이 혹시나 “사대주의” 아닌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실용주의는 매국노의 행위조차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마력을 갖고 있다. 이완용도 약소국인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근대화 할 능력이 없고 국가의 독립을 지키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가까운 일본의 식민지로 편입되는 것이 우리 민족이 잘 사는 길이라고 보았을 것이다. 그는 당시에 가장 실용주의적 인물이었다. 일제 시기 친일파들의 견해도 우리 민족이 잘 살려면 일본제국주의에 협력하는 길 밖에 없다는 지극히 실용주의적 관념에 젖어있었다. 이렇듯 민족문제를 실용주의의 잣대로 재단하면 반민족적 사대주의적 역사관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이완용이 오늘날 되살아나서 식민지근대화론이 활개 치고 있는 것을 보면, 왜 나만을 친일파 민족반역자로 매도하느냐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식민지근대화론과 같은 실용주의적 역사관을 경계해야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민족을 강조하면 시대착오적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요즘 부쩍 늘고 있다. 사구라파나 일본의 민족주의는 민주주의를 억압한 주범이었다. 이 때문에 민족주의는 흔히 반민주적 반민중적인 것으로 매도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도 박정희 이래 역대 군사정권은 민족주의를 자기들의 독재를 포장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들은 민족주의를 시대착오적인 반민주적인 것으로 보게 하는 원인을 제공했다. 그러나 분단된 한반도는 서구라파나 일본과는 다른 특성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한반도는 국토분단을 극복해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서 “민족은 없다”느니, “민족주의는 시대착오적”이라고 매도하는 것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견해인지 깊이 반성할 필요가 있다.
금년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셨던 김구선생 등이 주도하신 “남북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38선을 베고 죽는 한이 있어도 분단된 조국을 볼 수 없다”고 외치셨던 김구 선생은 “백범기념관”으로 온 민족의 존경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대한민국 헌법 전문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과 4.19 정신을 계승한다고 적혀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것과는 반대방향으로 흘러가면서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부정하는 역사교과서가 버젓이 저술되고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셨던 김구 선생은 국민 모두의 승배를 받고 백범기념관으로 모셔져 있지만, 현실 사회는 기념관 하나 제대로 남겨놓지 못한 역대 대통령들의 법통을 이어받은 세력들이 활개 치는 장이다. 이런 일종의 착시 현상은 역사관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뜻에서 필자는 현재 한국에서는 “역사전쟁”이 전개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역사전쟁의 일각에는 민생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필자가 보기로는 민생문제에 관한 한, 임시정부의 “삼균주의 건국강령” 속에 그 답이 이미 나와 있다. 토지공개념을 비롯하여, 독과점의 폐해 방지와 이익 균점, 중소상공인과 노동자 농민의 생존권 우선 보호 원칙 등, 오늘날의 진보 담론들이 거기에 거의 다 포함되어 있다. 2008년 4월 남북제정당사회단체대표자연석회의 60주년을 마지하면서 김구 김규식 조소앙 선생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애국애족 정신을 새삼 흠모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 주종환 기자는 동국대 명예교수, 참여연대 부설 참여사회연구소 명예이사장, 민족화합운동연합 대표이다. 이 기사는 경향신문, 한림online, 평화만들기 등에도 송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