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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치경제로의 회귀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생필품 52개를 정해 물가를 관리하겠다는 이명박 정부가 부동산값 상승이 뻔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물가 상승으로 이어질 인위적인 환율 상승 등의 물가 오름세를 부추기는 발언을 계속하고 있다.

 

한 문장 안에 서로 모순되는 말을 서슴없이 나열하는 게 이명박 대통령과 그 참모들의 '특징'으로 거론되는데 물가에서도 마찬가지인 셈이다.

 

'MB물가지수'라는 조롱까지 감수했는데...

 

이명박 정부는 원자재값 급등으로 물가가 급등세를 보이자 생필품 52개 품목을 정해 관리에 나섰다. 쌀·라면·소주·휘발유·자장면·학원비 등이 대상이다. 정부는 이들 품목의 가격 동향을 열흘마다 점검하고 매달 서민생활 안정 태스크포스(TF)에서 들여다보기로 했다.

 

정부는 "직접적인 가격 통제는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나라 밖에서 뛰는데 안에서 묶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1994년 가격변동 사후보고제 폐지 이후 가격정책은 완전 자율화돼 정부도 실제 카드는 없다" "박정희 정권 때나 볼 수 있었던 발상이다" 등의 반박이 많았다.

 

'MB 물가지수'라는 조롱까지 감수하면서 생필품 물가 관리에 나선 것은 그만큼 상황이 절박했다는 반증이다. 이 대통령은 23일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위기상황으로 당장 서민생활에 피해가 닥치고 있다"며 "물가안정이 7% 성장이나 일자리 창출보다 시급해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숱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살리겠다며 747공약으로 당선된 이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그만큼 물가를 잡겠다는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다.

 

그러나 불과 하루도 지나지 않아 물가를 잡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의지가 진짜인지 아니면 그냥 해본 소리에 불과한 것인지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부산 항만공사에서 열린 국토해양부 업무보고에서 "도심에 집을 지어서 공동화되지 않도록 하고 거기서 출퇴근을 하면 경제적 효과가 있다"며 "재건축을 하면 복잡한 면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건축·재개발 매물 쑥 들어가... 다시 오름세 될까

 

원래 신도시보다는 도심 재건축·재개발에 중점을 두겠다는 것은 이 대통령의 기본적인 부동산 정책이다. 이 때문에 이 대통령의 당선이 유력해지자 재건축·재개발이 가능한 아파트와 빌라 가격이 많이 올랐다.

 

그러나 부동산 오름세가 심상치 않자 이후 이 대통령과 인수위는 부동산 관련 각종 규제를 풀지 않겠다고 언급했고 이 때문에 오름세를 보이던 재건축·재개발 지분 가격은 다시 내림세로 돌아섰다.

 

예를 들어 부동산 관련 포털인 '부동산뱅크(www.neonet.co.kr)'에 따르면 3월 25일 현재 서울 재건축 단지(317개 단지 9만5991가구)의 시가총액은 84조8895억1600만원으로 2월 25일 84조9015억600만 원에 비해 119억9000만 원이 떨어졌다. 이는 이명박 정부 출범 직전 한 달 동안 2621억 8250만 원(84조6393억2350만→84조9015억600만원)이 증가한 것과는 차이가 난다.

 

그런데 이 대통령이 24일 다시 재건축·재개발 활성화를 언급하자 시장에 나와있던 매물이 쑥 들어가버렸다.

 

"부동산 값을 자극한다"는 비난이 일자 정종환 국토해양부 장관은 25일 기자간담회에서 "불필요한 규제는 완화해 공급을 확대하되, 불로소득은 철저히 환수해 집값 상승은 반드시 막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시장의 반응은 '공급 확대'보다는 '규제 완화'에 훨씬 더 시선이 쏠리고 있다.

 

한나라당 소속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26일 <아시아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내 임기중에 추가로 (뉴타운을) 지정해야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며 "집값이 폭등하는 것을 보고 추가 뉴타운 계획을 무기한 유보하자는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뉴타운은 대표적인 도심 재개발·재건축 사업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야심차게 추진했던 것이다. 이명박 정부가 재건축·재개발 관련 규제를 완화한다고 할 경우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게 용적율 상향 조정이다.

 

그러나 오세훈 시장은 <아시아경제> 인터뷰에서 "용적률 완화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 용적률 일반화는 정책적 부담이 된다"며 "재건축·재개발이 용적률이 모자라서 개발이 안되는 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대통령과 서울시장이 같은 당 소속이라고 해서 반드시 의견이 일치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그러나 부동산 값 폭등의 요인이 되는 재건축·재개발 지역은 거의 서울시에 몰려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두 사람의 인식차는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재정부-한국은행 수장들 발언에 환율 널뛰기

 

물가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리와 환율을 둘러싼 정부 당국자들의 발언도 마찬가지다.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성장보다는 물가'라는 발언을 한 데 이어 25일 이성태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환율 급등은 천장을 한번 테스트해본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환율은 무려 20.9원이나 떨어져 하락폭이 7년만에 최대를 기록했다.

 

대통령과 한국은행 총재의 발언은 물가 안정을 위해서 정부가 환율 상승을 원하지 않으며, 금리 인하도 할 수 없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강만수 재정부 장관과 최중경 재정부 1차관은 정 반대의 말을 쏟아냈다.

 

강 장관은 25일 저녁 매경 이코노미스트클럽 초청강연에서 "한국과 미국의 정책금리차가 2.75%포인트까지 벌어졌는데 무엇이든 과유불급"이라며 "환율과 경상수지 적자 추이를 감안할 때 어느 길로 가야할지는 자명한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대통령이 물가를 성장에 우선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보도됐는데 이는 전혀 사실과 다르다"며 "대통령의 발언은 지금은 원자재 가격 급등으로 물가를 우선시하겠다는 것으로 7% 성장 능력과 물가는 우선순위와 관련이 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강 장관은 "경상수지는 악화되고 있는데 원화 가치는 가장 높을 때와 낮을 때를 비교하면 45% 가량 절상됐다"며 "대외균형과 대내균형이 상치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대외균형이다, 이는 견해가 아니라 팩트의 문제며 팩트는 두 가지가 있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최 차관도 26일 서울 명동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경제·금융상황점검회의에서 "환율 급락은 환율 급등보다 더 바람직하지 않다"며 "환율 급변동은 없을 것이라는 지난주의 발언은 급변동이 있으면 정부가 반드시 개입하겠다는 의미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예 노골적으로 '개입'이라는 말까지 꺼냈다. 결국 이명박 정부 경제 수장들이 노골적으로 환율 상승과 금리 인하를 주문한 셈이다.

 

더구나 정부는 26일 아예 7억~8억달러를 사들여 환율을 끌어올린 것으로 외환딜러들은 추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날까지 하락하던 환율이 10.5원이나 급반등해 986.8원으로 마감했다.

 

'성장'과 '물가잡기'는 모순되지 않는다?... 과연 그럴까

 

하루에 환율 등락폭이 10원이 넘는 등 널뛰기 장세가 이어지자 27일 조간 신문들은 진보나 보수, 종합지나 경제지를 막론하고 모두 정부 당국자의 입으로부터 초래된 '오럴 리스크'를 질타했다.

 

왜 대통령과 재경부 장관의 말이 서로 다르냐는 비판이 나오자 26일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대통령은 성장에 집착하는 게 아니다"라며 "성장과 물가의 이분법으로만 이야기하니까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전체적으로는 국가 경쟁력 강화가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장기적으로 성장은 계속 가는 목표인데 단기적으로는 물가를 보겠다는 뜻이다"며 "강만수 장관이 한 이야기도 그런 의미이며 (강 장관 발언과 대통령 입장이)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같은 설명은 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애초 7% 성장 공약을 내걸고 숱한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당선됐던 이명박 대통령은 이미 대내외 경제 여건의 악화로 7% 성장은 포기하고 6% 선으로 후퇴했다.

 

만약 연말에 6% 성장도 못할 경우 정권 기반은 대단히 취약해질 것이다. 따라서 어떻게든 최소한 6% 성장은 이룩하기 위해서 물가를 희생하고 수출 증대와 경기 부양에 나선 것으로 해석할 여지가 많다.

 

잘 알려져있다시피 환율이 상승하면 수출에는 도움이 된다. 그러나 수입 물가가 올라 국내 물가에는 악영향을 미친다. 금리 인하도 경기 부양에는 도움이 되지만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재건축·재개발 활성화가 부동산값 상승으로 이어지면 건설 경기가 다시 활성화되면서 일자리 창출과 경제 성장에는 도움이 된다. 물론 가뜩이나 현재 거품 상태인 한국 부동산에 거품이 더욱 끼고 이것이 나중에 더 큰 부담으로 돌아오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명박#물가#환율#부동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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