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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골든벨’이라고 하는 풀그림이 있습니다. 고등학교 아이들 백 사람이 나와서 문제풀이를 하는데 쉰 번째 문제까지 맞추면 금으로 된 종을 울립니다. 지난 2005년 12월 어느 날, 서울 신촌에 있는 헌책방을 들르고 저녁을 먹다가 밥집 텔레비전에서 흐르는 ‘골든벨’ 끝자락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때 쉰 번째, 그러니까 마지막 문제가 나옵니다. ‘얼마 앞서 해금이 되고 건국훈장이 내려진 혁명가이자 중국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이 누구냐. 교장선생은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자기네 학생이 이 문제를 맞추기를 바랍니다. 학생은 자신감이 없이 답을 적습니다. ‘여운형’. 땡!

 

 차디찬 얼음장 나라였던 1984년 어느 날, <아리랑>이라는 책이 세상에 나옵니다. 얼마 못 가서 ‘판매금지’ 딱지가 붙어 몰래몰래 숨어서 읽거나 헌책방에서 어렵사리 사서 읽어야만 했습니다. 그런 데에도 1986년에 <아리랑ㆍ2>이 나옵니다. 놀라운 일이지요. 세상이 차츰차츰 바뀌어 가는 때였기에 나올 수 있었을까요. 그렇지만 중국땅에서 공산당원으로 조선독립과 혁명을 꿈꾸었던 사람들 발자취는 오래도록 더듬을 수 없었고, 중국땅에서도 <아리랑> 주인공이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은 때는 1983년. 1938년에 ‘일본 특무’라는 억지 죄를 들쓰고 형장에서 이슬이 되어버린 안타까운 목숨은 마흔다섯 해 만에 가까스로 살아났지만, 그동안 남은 식구는 죽을고생을 해야 했고, 그이한테 남았던 얼마 안 되던 자취는 먼지처럼 사라집니다.

 

겉그림 혁명가 김산 발자취를 좇던 우리 나라 학자 한 분이 쓴 <미완의 해방노래>입니다.
겉그림혁명가 김산 발자취를 좇던 우리 나라 학자 한 분이 쓴 <미완의 해방노래>입니다. ⓒ 정우사
 그렇다면 이제 해금도 되고 건국훈장도 내리는 이때, 나라에서는 김산과 같은 사람을, 또는 아직까지 남녘땅에는 알려지지 않은 중국땅 독립운동가나 혁명가 발자취를 찾도록 힘을 쏟고 있는지요. 나라에서 하지 않는다면 이 나라 대학교마다 하나씩은 있는 역사학과에서 현대사를 배우는 학생이나 가르치는 교수들은 차근차근 살피고 있는지요. 나라나 대학교에서 하지 않는다면, 자유로이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힘닿는 데까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지요. 그리고 우리들 여느 사람은 이러저러한 다리품과 피땀으로 이루어진 ‘중국땅 독립운동가나 혁명가 삶을 다룬 책’이 나왔을 때 기꺼이 주머니를 털어서 장만해 주는지요. 책을 장만할 뿐 아니라 꼼꼼히 읽고 둘레에 알리며 지난날 우리들이 훌륭히 애쓴 대목과 아쉽게 쓴맛을 본 대목을 곱씹고 있는지요.

 

 그나마 님 웨일즈(헬렌 포스터 스노) 님이 남겨 놓은 <아리랑>은 퍽 널리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미완의 해방노래>(백선기 지음,1993)라는 책은 아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소수는 보호되어야 하며, 소수는 변혁의 최초의 도구요, 다수의 자식이며, 아버지 … 한 사람의 이름이나 짧은 꿈은 그 뼈와 함께 묻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힘의 마지막 저울 속에는 그가 이루었거나 실패한 것이 단 한 가지라도 없어지지 않는다 … 아들을, 백의민족의 해방을 위해 싸울 수 있는 사내로 기릅시다. (김산)”

덧붙이는 글 | - <시민사회신문>에 함께 싣는 글입니다.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헌책방+책+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미완의 해방노래

백선기, 정우사(1993)


#절판#헌책방#김산#백선기#미완의 해방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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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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