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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아무개 씨가 입사했던 화성 K택시회사 전경. 이 회사는 영업용 택시 100여대를 보유하고 화성지역 10곳에 영업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유아무개 씨가 입사했던 화성 K택시회사 전경. 이 회사는 영업용 택시 100여대를 보유하고 화성지역 10곳에 영업소를 설치, 운영하고 있다. ⓒ 김한영


이달 초 경기도 화성에서 발생한 한 택시 노동자의 자살사건을 두고 유족과 인권단체 측이 유서내용을 근거로 회사 측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으나 회사 측이 문제가 없다고 일축해 논란이 일고 있다.

최근 다산인권센터와 유족, 관련 택시업체 관계자 등에 따르면 경기도 화성시 소재 K택시회사에 근무하던 유아무개(54)씨가 지난 6일 낮 화성시 매송면 원평리 자신의 집 안방에서 목을 매 자살했다.

유씨는 화성에서 무사고 5년이면 개인택시면허를 받을 수 있다는 주변의 권유로 지난 2004년 8월 수원의 E택시회사에서 화성의 K택시회사로 옮겨 4년째 근무해왔다.

그러나 유씨가 그토록 고대하던 개인택시면허 발급 시한을 눈앞에 두고 갑자기 자살하면서 그 원인을 놓고 유족과 회사 측이 책임공방을 벌이고 있다.

유족과 인권단체는 회사 측의 배차횡포와 동료들의 집단따돌림 문제 등이 담긴 유씨의 유서 내용을 근거로, 유씨의 죽음에 대한 원인이 회사 측에 있다면서 철저한 진상규명과 관련자 징계 등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회사 측은 자체 조사결과 별다른 문제점이 없었다고 유족 측의 주장을 일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유족 측은 회사 측이 진상규명을 외면한 채 책임회피에만 급급하고 있다고 반발하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혀 논란이 커질 전망이다.

숨진 유씨 유서, '배차횡포-집단 따돌림' 등 언급... 자살 선택 암시

유씨가 숨진 날 유씨의 부인 이아무개(50)씨는 방안에서 유씨가 회사생활에 대한 회한 등을 적은 편지지 1장 분량의 유서를 발견했다. 이씨는 또 남편의 장례를 치른 뒤 안방 벽에 걸린 가족사진 액자 뒤에서 편지지 4장 분량의 2차 유서를 찾아냈다. 일기형식으로 작성된 2차 유서에는 회사 측의 배차문제를 비롯해 동료들의 따돌림 등의 내용들이 언급돼 있다.

유씨는 유서를 통해 "수원의 E택시회사에서 화성의 K택시회사로 옮긴 것을 후회한다"면서 "회사 및 자체교육은 강제성을 띨 수 없으나 나름대로 대부분 참석을 했는데, 이를 이유로 타 지역에 근무를 하게 했다"고 불만을 드러냈다.

이어 유씨는 "이아무개 팀장과 이아무개 상무는 (나를) 퇴사하도록 하기 위해 동료들과 전화나 대화를 두절시켰고, 고정기사가 될 기회가 있었음에도 고정을 시키지 않고 예비기사로 먼 동탄 등 타 지역으로 보내 고통을 주려했다"고 적었다.

유서 내용을 보면 화성 매송·봉담영업소에 배정됐던 유씨는 몇 차례 고정기사(고정차량을 배정받아 영업하는 기사)가 될 기회가 있었지만 팀장에 의해 무산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유씨는 지난 2006년 7월 팀장의 사고로 인한 운행정지로 자신이 입사 순서에 따라 고정이 될 차례였으나 팀장은 자신보다 입사일 늦은 사람을 고정으로 배정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유씨는 "동료기사의 퇴직으로 지난해 3월 29일 고정 배차표를 받고 4월 1일 출근하자 팀장이 새 배차표를 보여주며 다른 사람이 고정이라고 말해 집으로 돌아왔다"고 썼다.

유씨는 또 "지난해 5월 따돌림을 받아 도저히 참을 수 없어 교육 불참을 시작했다"고 밝히면서 교육 참석을 요구하는 상무와 팀장에게 불만을 토로한 내용도 소개하고 있다. 여기엔 유씨가 동료들에게 수모와 농락을 당했다는 표현도 들어있다.

그는 "지난해 8월 초순 상무가 집 앞으로 찾아와 '교육에 잘 나오라'고 말해 '상무님도 알다시피 여태껏 많은 수모를 겪었는데, 상무님이 모른다면 말이 되느냐. 여럿이 한사람 바보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라고 했다"고 적었다.

이어 그는 "지난해 8월 중순 김아무개 봉담 팀장이 만나자고 해 밤 8시경 콜 사무실에 갔는데, 이 상무와 봉담 팀장이 있었다"면서 "봉담 팀장이 교육 좀 나오라고 해 '그렇게 많은 사람들한테 농락을 당하는데, 팀장 같으면 교육을 받겠냐. 알아서 하라'고 했다"고 적혀있다.

유씨는 유서 끝부분에 "바보가 되기 싫어 봉담 가서 일을 안했다"면서 "작년과 같은 선출기준이면 올해 개인택시를 받고 아니면 내년에 될 수 있는데, 바보 된 사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고 써 놓았다.

이런 유서 내용은 유씨가 직장생활을 하면서 회사와 동료들로 인해 '마음고생'이 무척 심했으며, 결국 개인택시에 대한 희망을 접고 자살을 선택했음을 암시하고 있다. 유족과 인권단체가 회사 측의 책임론을 제기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2차로 발견된 숨진 유아무개씨의 유서 첫장. 유씨는 유서에서 수원에서 화성으로 직장을 옮긴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또 팀장과 회사측의 배차횡포와 동료들의 따돌림 등을 언급하고 있다.
2차로 발견된 숨진 유아무개씨의 유서 첫장. 유씨는 유서에서 수원에서 화성으로 직장을 옮긴 것을 후회한다고 밝혔다. 또 팀장과 회사측의 배차횡포와 동료들의 따돌림 등을 언급하고 있다. ⓒ 유진희 제공


유씨 부인 "얼마나 고통 심했으면 죽음 택했겠냐"... 경찰수사 의뢰 검토

유씨의 부인 이씨는 "남편은 화성으로 회사를 옮긴 뒤 '고향에서 일하니까 마음이 편하다'며 좋아했으나 작년부터 한숨이 많아지는 등 무척 힘들어 했다"면서 "설마 회사에서 배차횡포를 부리고, 동료들이 왕따를 시킨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개탄했다.

그는 "남편은 가진 것은 없었지만 남에게 피해주지 않고 열심히 살아왔다"며 "직장에서 얼마나 정신적·육체적으로 고통이 심했으면 죽음을 선택했겠느냐"고 울분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씨를 더욱 참담하게 만든 것은 회사 측과 동료들의 태도. 이씨는 "너무 억울해 같이 일했던 기사들과 만났으나 자기들은 따돌린 적이 없다고 입을 맞춘 듯 똑같은 말들만 하고, 회사와 노조 측은 남편 죽음의 원인에 대한 진상규명 노력보다 배차문제나 집단따돌림 등은 없었다며 책임회피만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씨는 "아무리 '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고 하지만 회사와 동료들이 유서내용을 모두 부인하고 있는 것에 대해 참담함을 느꼈다"면서 "남편 죽음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단체 "회사와 노조는 진상규명 통해 유족들 눈물 닦아줘야"

다산인권센터도 최근 보도자료를 내고 "고인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개인택시라는 희망조차 회사와 간부들에게 밉보인 자신에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절망 때문이었다"며 "회사와 노조 측은 철저한 진상규명 등을 통해 유족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고 촉구했다.

회사 측의 사납금 문제도 논란거리다. 다산인권센터는 유씨가 평소 회사 사납금 문제에 대해서도 부담을 느꼈다는 유족 측의 주장을 근거로 사납금 부담도 유씨 죽음의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보고, 정부에 불합리한 사납금제도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다산인권센터와 유족들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 2004년 8월 입사한 뒤 24시간 2교대 근무를 하면서 하루 13만원을 사납금으로 입금시키고, 나머지 초과수입금으로 생활했다. 그러나 초과수입이 거의 없었던 유씨는 한 달에 고작 30~40만원 정도의 기본급을 부인에게 가져다주는데 불과했다.

이씨는 "남편은 수원 택시회사에서 근무할 때는 100만원 이상 생활비로 갖다 주었으나 화성으로 옮기고 나서 수입이 줄었다"면서 "특히 일하는 날엔 사납금 걱정을 많이 했고, 어떤 때는 내가 공장에 나가 번 돈으로 사납금을 채워 넣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하지만 유씨가 이처럼 어려운 조건에서도 회사에 다녔던 이유는 5년만 근무하면 개인택시 면허를 받을 수 있다는 희망 때문이었다고 한다. 이씨는 "개인택시는 남편 인생의 마지막 목표였고, 우리가 열심히 산 결과물일 것으로 생각했다"며 "그래서 수입이 적어도 싫은 소리 하지 않고 개인택시 받을 때까지만 고생하자고 위로하며 살았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게 무너졌다"고 말했다.

다산인권센터 관계자는 "택시업계의 고질적인 사납금 제도 등 불합리한 관행도 유씨 죽음의 근본 이유 중 하나"라며 "택시 노동자들은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며 그야말로 '개인택시'라는 희망 하나에만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특히 "개인택시라는 희망은 월 30~40만원의 저임금과 24시간 고된 노동에도 불평 한마디 없도록 택시 노동자들을 내몰고 있다"면서 "정부는 택시 노동자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사납금 제도 등 불합리한 관행을 근절할 제도 마련에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K택시회사 화성 봉담영업소 택시기사 대기시설. 숨진 유아무개씨는 자신의 집부근에 있는 매송영업소에 배정됐다가 회사 측의 이동 조치로 이곳에서도 근무했다. 지난 25일 저녁 이곳을 찾았으나 불이 커진 채 택시기사들도,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K택시회사 화성 봉담영업소 택시기사 대기시설. 숨진 유아무개씨는 자신의 집부근에 있는 매송영업소에 배정됐다가 회사 측의 이동 조치로 이곳에서도 근무했다. 지난 25일 저녁 이곳을 찾았으나 불이 커진 채 택시기사들도,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 김한영


회사-노조 "자체조사결과 문제 없었다" 유족-인권단체 요구 일축

하지만 유씨의 유서내용과 관련해 K택시회사와 노조 관계자는 자체 조사결과 별다른 문제점은 없었다며 유족과 인권단체 측의 요구를 일축했다.

K택시업체 공아무개 사장은 "유씨가 유서에서 거명한 사람들을 상대로 자체 조사를 벌였지만 배차문제나 집단따돌림 등의 문제는 없었다"면서 "관련자 처벌 등 유족 측의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노조 심아무개 사무장도 "조합원인 유씨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 "유족 측이 공개한 유서내용을 보고 노조차원에서 사실관계를 조사했으나 별다른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아 현재로선 유족 측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회사의 한 관계자는 "유씨가 회사에 찾아와 상담을 했으면 불행한 일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깝다"면서 "회사에서는 현장의 문제를 일일이 파악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사납금 문제와 관련해 "우리 회사 사납금은 다른 회사에 비해 많지 않다"면서 "기사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5년 동안 사납금을 동결했으며, 회사 복지관을 건립해 기사들의 복지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유씨가 유서에서 거론한 회사 노무관계자와 팀장 등 핵심 당사자들도 관련 사실을 모두 부인하거나 유서내용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유서에 거론 당사자들도 관련 사실 부인... "유서 사실관계 잘못됐다"

이아무개 노무 담당 상무는 "유씨가 고정배차 문제를 제기했으나 자신이 배정받을 차례가 돌아온 장애인 운전 보조 장치가 달린 차량을 불편하다며 타지 않고 예비기사로 남겠다고 해 제외됐던 것"이라며 "지난해 8월부터는 고정기사로 근무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나와 이 팀장이 동료 기사들과 전화나 대화를 두절시키고, 타 지역으로 보내 고통을 주려고 했다는 내용도 사실이 아니다"면서 "매송지역에서 힘들어 하는 것 같아 봉담으로 옮겨줬으나 싫다고 해서 원상복귀 시켰다"고 주장했다. 

이아무개 팀장도 비슷한 해명을 했다. 그는 "고정배차는 입사 순서에 따라 배정하는데 유씨가 원하지 않아 후순위자에게 배정한 것"이라며 "따돌림도 없었고, 오히려 유씨 자신이 동료 기사들과 어울리는 것을 피했다"고 해명했다. 덧붙여 "유서의 사실관계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반면, K회사에서 유씨와 근무했던 전 직장동료 서아무개씨는 "유씨는 대인관계도 원만했고 남에게 절대 피해를 끼치지 않는 등 자기관리가 철저했던 사람이었다"면서 "어쩌다 회사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자살을 했는지 믿어지지 않는다"고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K택시회사는 영업용 택시 100여 대를 보유한 화성지역 최대 규모의 택시회사로, 권역별로 10곳에 영업소를 설치·운영하고 있다. 또한 각 영업소는 이른바 '팀장'이 관리·운영토록 하면서 이들이 사실상 기사들에 대한 배차권과 영업지역 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팀장은 회사의 공식 직함이 아니어서 변칙논란이 예상된다. 회사 관계자는 "영업소 팀장은 회사 직제에 따른 공식 직함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는 "각 영업소 팀장은 운영 편의를 기사들이 자체적으로 선출해 부르는 호칭이며, 차량 배차표는 팀장들이 통보해오면 본사 관리팀에서 짜고 있다"면서 "팀장이 임의대로 기사들을 다른 지역으로 보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말했다.


#택시노동자#자살#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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