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척, 개봉, 오류, 수궁동. 서울 구로갑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이름만으론 확실한 '야당의 표밭'일 거란 느낌을 주는 지역이다. 그러나 과거 12, 13, 14, 16대 총선의 승리는 민정·민자당의 이름을 빌린 한나라당이었다. 다소 이례적인 결과를 내놓은 지역구다. 그러다 15대 선거에서 탤런트 정한용씨가 유명세를 등에 업고 야당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했고, 지난 17대에는 탄핵 열풍 속에 이인영 열린우리당 후보가 승리를 거뒀다. 그리고 다시 4년이 흐른 시점. 구로갑 선거구는 누구를 승자로 뽑을까. 구로갑에 출마한 후보는 현 지역구 의원인 통합민주당의 이인영(43), 한나라당의 이범래(49), 친박연대 유영철(57), 평화통일가정당 나인환(59)등 4명이다. 사실상 이인영, 이범래 두 후보의 재대결에 승부가 맞춰져 있다. 지난 17대 선거에서 4만 8970표(44.7%)로 무난히 승리를 거뒀던 이인영 후보. 그러나 탄핵정국에서 32.7%의 의미 있는 지지율을 올렸던 이범래 후보의 반격이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두 후보는 지난 23일 여론조사에서 각각 35.4%(이인영)와 35.3%(이범래)를 기록해 현재 초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다. 전대협 1기 의장 출신으로 386세대의 정신적 리더로 불리는 이인영 후보, 법조인 출신으로 이른바 'MB맨'으로 분류되는 이범래 후보. 구로갑 지역에서는 두 사람의 새로운 승부가 한창 진행 중이다. 한나라당, 장관임명-공천과정 겪으며 얼어붙은 지역민심
지난 27일 오후 1시 고척시장을 찾은 이범래 후보. 구로구에서 30년을 넘게 산 덕분인지 제법 인맥이 탄탄해 보인다. 웃는 인상이 선해 보이는 이 후보. 주민들도 대부분 활짝 웃는 표정으로 이 후보를 맞아주었다. 하지만 그가 느끼는 지역민심이 따뜻한 것만은 아니었다. "2월까지는 이명박 정부에 적극적 지지세였다. 하지만 장관임명과 공천과정 문제를 겪으며 지지가 수그러진다는 걸 현장에서 느낀다." - 흔히 말하는 '리턴매치'(재대결)다. 이번에는 자신이 있는지? "자신 있다. 지역구에서 한나라당이 돼야 발전된다는 믿음들이 있다. 청소년기를 보냈기에 항상 머리에 남아있는 곳이다." - 구로구는 아직 변두리, 변방, 소외지역이라는 이미지가 남아있다. 어떤 식으로 고쳐 나가야 한다고 보나. "그걸 해소하기 위해 '신구로 프로젝트'를 준비 중이다. 저개발의 원인은 60~70년대 대규모 중공업지구로 묶였기 때문이다. 개발여지가 있는 부지가 많다. 완화, 해지를 통해 해결하겠다. 또 남부순환도로 평탄화, 오류역 민자화를 통해 동서, 남북간을 연결하겠다." - 지역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어떤 것이라고 보나. "영등포 교도소·구치소 이전문제다. 현재 진행되고 있지만 더 빠르게 진척시켜 주민들에게 '우리 지역이 이렇게 바뀌고 있구나'란 느낌을 갖도록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 상대인 이인영 후보에 대해서 평가한다면? "사람은 착하다. 깔끔하다고 해야 할까. 실제 만나보면 꾸밈없고 소탈하다. 하지만 4년 의정활동 중 초반 2년 발의 안건이 없는 걸로 안다. 이후 대표적인 것은 사학법 관련이다. 우리 지역은 국회의원이 뛰어다니며 할 일이 너무 많다. 나름대로 열심히 했겠지만, 4년 전과 비교해 지역이 바뀐 것이 없다. 그 부분에 대해선 개인적으로 낮은 평가를 내리고 싶다."
- 유권자들에게 자신이 뽑혀야 하는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시고, 인사를 부탁드린다. "우리 구로지역은 지난 몇 십년간 발전이 정체됐다. 특히 지난 5년간은 서울 다른 지역에 비해 뒤처졌다. 이제 대통령·서울시장을 쉽게 만나서 지역에 필요한 예산을 당당히 요구해 따올 수 있는 힘 있는 일꾼이 필요하다. 그런 일을 하기 위해 나왔고, 지역 출신으로 그러한 정서를 너무 잘 알고 있다. 지역민들께서 발전을 원하신다면 제대로 된 일꾼을 뽑아주실 거라 믿는다. 분명 해 내겠다." 이어진 유세현장, 그의 첫마디 대로 모든 민심이 우호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한 상점에서 고척지구 발전에 대해 설명을 벌이던 중 일행 중 한 사람이 "저쪽(이인영 후보)은 이런 일 못한다"고 한마디 거들자, "그건 아니다. 상대방을 깎아 내리는 건 옳지 않다"는 한 주부의 지적이 날아들었다. 하지만 적극적 지지자들은 두 손을 감싸 쥐며 "꼭 승리하시라"는 덕담을 보내기도 했다. 35년간 이 지역에 살았다는 김학두(62·부동산 중개업)씨는 "이번만은 확실하다"며 이 후보를 치켜세웠다. "믿음직스럽다. 지역 일꾼으로선 적임자다. 32년째 중개업을 해 지역 민심을 잘 아는데, 이 후보자가 월등히 앞서고 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이 지지한다. 당선될 게 확실하다." 통합 민주당, 차갑거나 혹은 따스하거나
"4년 전에 보고, 이제야 또 보는 것 같습니다." 같은 날 오후 3시 개봉동, 나이 지긋한 한 지역민은 불만스런 감정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다소 피곤해 보이는 통합민주당 이인영 후보. 현역의원이지만 4년 전과는 다른 분위기. 게다가 공천 심사위원회 활동에 바빠 상대적으로 지역구 유세에 늦었다. - 유세가 늦었다. 지역 민심이 어떻다고 보나? "이제 6일째다. 대선 직후하고는 많이 바뀌었다. '해봐야 되겠느냐'며 걱정스런 표정이었는데, 지금은 '분위기 좋아졌으니,열심히 하라'는 격려가 많다. 경제 살리겠다는 이야기에 많은 기대를 했다가 '어륀지' 인수위, 강부자 내각, 형님 공천을 보곤 실망 하신 것 같다. 오랜 시간 서민과 중산층의 친구인 통합민주당을 다시 봐 주시는 것 같다." - 4년 전에 이어 이범래 후보와 재대결을 벌이게 됐다. "'뉴 매치'라고 본다. 2004년과 같은 상태가 아닌 완전히 다른 상황이다. 이제 새로운 경제, 미래에 관해 이야기해야 할 시점이다. 정글식 시장과 자본주의가 옳은 것인지, 사회 통합과 패자부활이 가능한 시장경제가 맞는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 구로구에 산 지 얼마나 됐나. 상대 이범래 후보는 구로구의 토박이임을 강조하는데. "9년 됐다. 누가 더 오래 살았느냐는 단순한 산수에 불과하다. 중요한 건 애향심이다. 문제의식을 가지고, 발전에 대한 비전을 만들고 실천한 시간은 내가 더 길다고 본다." - 구로구를 어두운 이미지로 기억하는 이들도 있다. 그간 지켜본 지역에 대한 느낌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곳이다. 그린벨트와 시계경관지구가 많기에 환경 친화적으로 개발 가능한 곳이다. 무엇보다 사람들 간 공동체 정서와 유대가 끈끈히 남아있는 곳이라 그 가능성을 더 높여준다. 다만 구로공단의 기억과 지정학적 위치가 그런 느낌을 준 것 같다. 주거환경도 바뀌었고, 디지털 첨단단지로서의 전환이 있어 고쳐질 것이라 본다." - 지역에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하는 문제는? "전철을 지하로 넣는 것이다. 지역의 오랜 숙원이던 영등포 구치소는 이전이 결정됐다. 시계만 돌아가면 되는 문제다. 남부순화도로도 평탄화 작업을 시작했다. 이제는 새로운 조건에서 구로발전의 근본 장애가 됐던 경인지하철을 지하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 상대인 이범래 후보에 대한 평가는? 4년간 의정활동에 대한 평가가 인색하던데. "일년 간 일부러 법안 발의를 하지 않았다. 남의 말 듣고 무책임하게 하는 것보다는 연구하고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2년째 교육복지, 평생교육, 학제개편 등 굵직한 법안을 발의했고, 실제 교육정책 변화에 중요한 영향력을 미쳤다. 이범래 후보는… 좋은 사람이다. 그 한마디가 그분을 대변한다. 다만 젊은 사람이 가져야 할 정치적 노선과 사고, 이념 등은 좀 아닌 것 같다." - 선거 결과에 자신있는지. 지역민들에게 인사를 바란다. "자신보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임하려 한다. 요란한 성장, 발전과 성공식의 구호가 아닌 실제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길을 일관되게 걸어온 게 누구냐를 묻고 싶다. 그런 면에서의 자부심은 양보할 생각이 없고, 그것으로 '진인사대천명'하려고 한다. 우리 시대 주인인 분들의 실망과 낙담을 희망과 의욕으로 바꾸어 내겠다." 이인영 후보에 대한 지지는 젊은 층에서 더 두드러졌다. "좋은 하루 되세요"란 인사에 "원래 그 직업이 열심히 해도 티가 안 난다"는 농담 섞인 응원도 돌아왔다. 그 중 재봉틀 작업을 하던 한 주부는 70~80년대 노동운동을 했다며, 지난 대선 때 하도 억울해 남편과 껴안고 울었다는 이야기를 꺼내 이 후보를 숙연케 하기도 했다. "참 좋은 분이시다. 지난번에 한 번 찍어 드렸는데, 이번에 한 번 더 밀어 드리려 한다. 평소 지역구 활동도 열심히 하신다. 야당에 충분한 견제의석을 주어야 국정이 원만히 돌아간다고 믿는다. 꼭 잘되셨으면 좋겠다."(이성준·48·소매점 운영) 두 후보를 맞이하는 유권자들의 표정은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개었다 흐렸다를 반복했다. 또 때때로 악수마저 거부한 채 종종걸음을 치는 '무관심형'도 있었다. 구로갑 지역은 한 사람의 절대 우세를 점칠 수가 없었다. 4년 만의 재대결, 과연 민심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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