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 이게 무슨 좋은 일이라고…." 인터뷰 좀 하자는 말에 류제언(73) 할아버지는 쑥스러운 듯 허허 하고 웃는다. 할아버지 웃음에 장학금을 받은 아이들도 덩달아 따라 웃는다. 일이년도 아니고 10년이 넘은 세월을 한 번도 빠짐없이 매달 장학금을 아이들에게 준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것도 넉넉하지도 않은 상태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런데 류제언 할아버지는 16년째 그 일을 하고 있다. 매년 3명(학년별로 1명씩)을 선정하여 많지 않은 액수지만 매달 아이들을 직접 찾아와 작지만 큰 봉투를 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간다. 그런 류제언 할아버지가 아이들에게 기대하는 가장 큰 바람은 뭘까. "학교 생활하면서 아이들이 점차 밝아지는 모습을 보는 것이고 졸업 후 사회에 나가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지." 할아버지가 전주 완산여고와 인연을 맺게 된 사연은 이렇다. 91년 소년소녀 수기공모로 금상을 받은 당시 서희윤(현재 하이닉스반도체 근무) 학생을 방송을 통해 알게 되면서부터다. 방송을 본 류 할아버지는 서희윤 학생에게 장학금을 매달 전달하게 됐고 지금까지 그 일이 이어지고 있다. "결혼 후 희윤이가 남편과 함께 시골 모정에 찾아왔었지. 그때 남편이랑 와서 큰절을 하더라구. 노인들이 많은 데서 말이지. 그때 큰절을 하면서 어려울 때 도와준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하는데 마음이 훈훈하더라구." 아이들을 만나면 무슨 말을 주로 할까. 그리고 어떤 마음일까. 의외로 소박하다. "사회에 나가면 자신보다 못 살고 있는 이들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고 하지." 사실 류제언 할아버지는 현재 수입이 없다. 자식들이 이따금 보내주는 용돈과 노령연금으로 생활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이들에게 좀 더 많이 해주지 못하는 것을 가슴 아파한다. 그러면서 예전 축산업을 할 땐 좀 여유가 있어 아이들 데리고 옷이나 책도 사주고, 수학여행 땐 수학여행비와 용돈을 주곤 그랬는데 요즘은 그렇지 못한다며 아쉬워한다. 어떤 때는 한 달 생활비가 없을 때도 있다고 한다. 그래도 하는 데까진 계속 할 생각이라 한다. "내가 아이들 만나고 가는 날엔 흐뭇하고 행복해요. 주는 내 마음이 위로가 되지. 그래서 없어도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니까 기분이 좋아." 이런 장학 사업을 가족들도 아느냐 물었다. 몰랐었는데 3년 전에 들켰다며 허허 웃는다. "가끔 집에 이상한 꽃 편지가 오는 거야. 여자한테 편지가 오니까 할머니가 이상하게 생각하는 거야. 그래서 자세히는 말 안하고 대충 이야기해줬지." 가족들한테 장학금을 전달하는 걸 숨긴 건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 때문이라 한다. 자식들이 학교 다닐 때 학용품을 제대로 사주지도 못하고 라면도 제대로 못 먹였다고 한다. 할머니나 자식들이 그걸 알기 때문에 숨겼는데 들켰다며 웃는다. 혼나지 않았느냐는 말에 다행히 할머니를 비롯한 가족들이 이해해준다며 고맙다고 말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생일을 기억하고 연락을 할 때나 가끔 잊지 않고 인사를 하러 올 때 기쁘고 보람을 느낀다는 류제언 할아버지, 아이들에게 큰돈은 아니지만 매달 아이들을 찾아와 장학금을 줄 땐 늘 조심스럽단다. "돈도 잘못 주면 역효과가 날 수 있어 항상 조심스러워요. 그리고 혹 아이들이 자존심 상하진 않을까 염려도 되구." 해서 장학금을 줄 때도 조용히 아이들을 불러 다른 아이들 모르게 준다. 그리고 친할아버지가 손녀들에게 용돈을 주는 것처럼 편안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류 할아버지를 친할아버지 마냥 편하게 대한다. 이야기하며 함께 웃고 떠들기도 한다. 그리고 류 할아버지가 매달 아이들을 직접 찾아와 봉투를 전달하는 것 또 다른 이유가 있어서이다. 장학금만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따스한 사람의 마음을 주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아이들을 만나면 학교생활뿐만 아니라 건강 이야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로 주고받는다. 아이들과 헤어져 자리를 떠나면서 류 할아버지는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고 아이들은 "할아버지 안녕히 가세요"하고 인사한다. 그런 아이들을 향해 웃어주는 류 할아버지의 꿈은 딱 하나라고 말한다. 자신의 기력이 있을 때까지 형편이 안 돼도 힘닿는 데까지 아이들에게 작은 마음이나마 주고 싶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 어른이 되면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들에게 보답하고 동행하는 삶을 살아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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