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 손병관 김지은 박상규 선대식 기자
이명박 정부의 핵심 공약인 한반도 대운하 추진에 대해 한나라당 18대 총선 후보자 절대다수가 찬반 입장을 명확히 밝히기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오마이뉴스>가 1일 한나라당 공천으로 수도권(서울·경기·인천)에 출마한 후보자 111명 전원에게 대운하 추진에 대한 입장을 전화로 물어본 결과, 18명만이 찬성 입장을 밝혔고, 유보적 입장이거나 답변을 회피한 후보자가 74명에 달했다. 반대 입장이 8명이었고, 11명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향후 국정을 책임지고 뒷받침해야 할 여당의 국회의원 후보자의 무려 74%가 새 정부가 추진하려는 핵심 사업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분명히 드러내길 꺼리는 결과가 나온 셈이다. 이 같은 결과에 대해 '유보' 성향의 한 여당 후보는 "대통령의 구상과 민심이 정면충돌하는 상황에서 꺼낼 수밖에 없는 고육지책"이라고 토로했다. 후보자들의 입에서 "대통령 공약이었는데"와 "반대가 많으면 굳이…"라는 말이 번갈아 나오는 상황은 대운하에 대한 입장 정리가 후보들의 적잖은 고민거리였음을 보여준다. '유보' 입장의 박종희 후보(수원 장안)는 "민의를 무시하고 밀어붙이면 안 된다, 그렇다고 공약으로 내세운 걸 없던 일로 하는 것도 무책임하다"고 말했다. 특히 후보들이 찬성·반대·유보 중 어떤 선택을 하건 "국민이 반대하면 못하는 것"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는 것이 흥미롭다. 지역구에서 젊은 유권자들을 만날 때 대운하 관련 질문이 많이 나오기 때문에 "나도 모르게 입에 배었다"고 얘기하는 후보도 있었는데, 그만큼 후보들은 대운하 반대가 많은 분위기에서 아슬아슬한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지난해 '대운하 물길'을 자전거로 답사하며 지지 여론을 독려했던 이재오 의원이 수도권 지역구 의원 중 유일하게 '열세'에 몰린 것도 여당 후보들의 말조심과 무관하지 않다. 대운하 답사에 동행했던 윤건영 의원(용인 수지)조차 "대운하는 총선에서 민감한 이슈"라며 '유보' 입장으로 돌아설 정도다.
"찬반 의견은 있지만... 입장 표명을 유보한 것으로 해달라" 그러나 동일한 '유보'라도 후보들의 가치관과 입지에 따라 전혀 다른 해석을 내려야 할 경우도 적지 않았다. 후보자 의견이 찬반 한 쪽으로 쏠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음에도 "입장 표명을 유보한 것으로 분류해달라"는 후보자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 경우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신상진 후보(성남 중원)의 경우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내건 공약이라도 이미 정치적인 문제가 됐기 때문에 서두르지 말고 국민의 뜻을 모아야 한다"며 '전면 재검토'를 강조했다. 반면, 임해규 후보는 (부천 원미갑) "정밀 검토가 필요하지만, 여론조사에서 밀린다고 주요공약을 접는 것은 전형적인 포퓰리즘"이라고 '국민 설득'에 무게중심을 두었다. 그러나 두 후보 모두 대운하에 '유보' 입장을 선택했다. 경기 남부의 모 후보도 "중부 운하는 환경 파괴가 별로 없으니 찬성이지만, 조령산맥을 뚫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대운하에 사실상 반대하면서도 '유보'를 택했다. 결과적으로, '유보' 입장의 후보 62명 중 상당수는 이명박 대통령(찬성)과 국민여론(반대)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개인적 소신을 숨기고 이도 저도 아닌 안전지대(유보)를 택한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는다. "대통령 공약이니 국민 신임 얻은 것" vs "국민이 잘 모르면서 지지했을 수 있다" 찬성 입장에 선 후보자들의 절반(9명)이 명확한 소신을 보여주지 못하고 '조건부 찬성'이라는 꼬리표를 단 것도 반대 여론의 역풍을 의식한 측면이 크다. 이명박 대통령이 지난달 24일 "(국토의) 구조를 한번 바꿔놓을 필요가 있다"며 대운하 강행을 시사한 지 일주일 뒤에 발표된 <내일신문>-디오피니언 여론조사에서는 서울 유권자의 대운하 반대여론이 64.2%까지 치솟았다. (찬성은 23.9%) 이재오·정두언·정태근 등 대통령의 최측근 후보들이 대운하에 대한 입장 표명을 꺼린 가운데 대통령직인수위 행정실장 출신의 백성운 후보(경기 고양·일산갑)는 "대통령의 공약사항이니만큼 (대운하는) 국민의 신임을 얻은 것"이라고 당당하게 주장하기도 했다. 반면, 정재학 후보(경기 광명갑, 유보)는 "대선공약이었지만 국민이 잘 모르면서 지지했을 수 있다"며 "밀어붙이는 것보다 합의를 도출한 다음에 추진하는 게 옳다"며 다소 엇갈린 의견을 피력했다. 대운하 경유예정지인 경기 남동부의 후보들도 비교적 명쾌하게 찬성 입장에 섰다. 지역개발을 바라는 민심이 이들을 이 같은 결론으로 이끌었다. 심장수 후보(경기 남양주갑)는 "남양주는 대운하 제1선착지다. 여러 가지 조건이 붙고, 타당성이 확실해야겠지만 우리가 반대할 수 있냐"고 말했고, 이범관 후보(경기 이천·여주)도 "주민의 70%가 찬성한다"고 전했다. 8명 반대는 대부분 '친박'... "대운하 얘기에 젊은 유권자들이 속상해한다" 소수에 머물렀지만, 8명의 후보는 '대운하 반대' 입장을 밝혔다. 박근혜 캠프 출신의 후보들은 이명박계에 비해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지 않고 대운하에 대한 생각을 홀가분하게 밝힌 경우에 속한다. 김선동 후보(서울 도봉을)는 "지역구의 젊은 유권자들이 대운하 얘기에 속상해한다"며 "만약 18대 국회의원이 돼서 대운하특별법 표결을 하게 되면 소신껏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언했다. 이성헌 후보(서울 서대문갑)도 "처음부터 한반도 대운하는 경제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정부가 지금까지 내놓은 것으로는 반대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고, 유영하(경기 군포) 후보도 "환경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게 기본입장"이라고 밝혔다. "국회의원을 못하게 되면 대운하반대 시민단체 활동이라도 하겠다"고 했던 박근혜계의 한 후보는 "여론의 시선이 부담스럽다"며 '일부러' 유보를 택하기도 했다. 안형환 후보(서울 금천)는 "국민 대다수가 대운하를 반대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이 반대하면 다시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고, 이수희 후보(서울 강북을)도 "단순히 포크레인으로 땅을 파는 게 아니라 엄청난 기술이 집약된 사업일 텐데 배를 운하에 띄우는 게 건축공학적으로 가능할지 모르겠다"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반대' 의견을 밝힌 후보들이라고 해서 모두가 '당당한 모습'을 견지한 것은 아니다. 대운하를 반대하는 이유를 소상하게 설명한 모 후보는 자신의 견해가 실명으로 보도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그건 곤란하다, 익명으로 해주면 안 되냐"며 '약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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