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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나오면 곳곳에서 아파트가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포4동 서래마을 입구 육교에서.
 고속버스터미널역에서 나오면 곳곳에서 아파트가 올라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반포4동 서래마을 입구 육교에서.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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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총선이 있기 전, 그러니까 몇 주 전 일이었다. 집에 가는 길에 집 인근 가게에 들렀다. 가게 주인이 "박근혜가 대단하네"라면서 TV에서 눈을 못 떼고 있었다. 이어 "(서울) 은평을 선거가 요즘 재밌다"라며 말을 보탰다. 한나라당 이재오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가 맞붙어 볼 만한다는 평이었다.

"우리 동네엔 찍을 사람이 없냐"고 물었더니 동네 판세를 알기 쉽게 정리했다. 001동엔 누가 강세고, 00후보는 누구 계열이며, 주민들이 000후보를 미는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깜짝 놀랐다. 4년여 동안 봐왔으면서도 동네 소식에 이렇게 정통할 것이란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옛 말이 그른 게 아니다. 가까이 있어 무심하게 생각한 것이다. 수시로 보는 얼굴인데, 갑자기 정색을 하고 이것저것 물어보기가 계면쩍었던 까닭도 있다.

문득 2년 정도 살았던 동네에 가보고 싶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집을 나서기 전 네 다섯 군데 정도 되는 동네를 놓고 열심히 머리를 굴리다 내린 결정이었다.

그렇게 서울지하철 3호선을 타고 고속버스터미널에서 내렸다. 이번엔 서리풀공원 구경을 할 셈이었다. 반포동 서래마을에서 내방역을 지나 방배역까지 이어지는 지하철 세 구간 여행. 반포동과 방배동을 잇는 길이다.

한 달 20-30만원으로 밥값, 차값, 술값, 수도사용료, 전기사용료를 내던 시절에 그 동네에 살았다. 몸이 뻐근하면 서리풀공원에 올라 땀 나도록 뛰었고, '막일'을 할 때는 서리풀공원 언덕을 넘어 집에서 공사장까지 다녔다.

그곳을 떠난 지 대략 5년. 그 동안 크게 변했을까 하는 마음으로 동네를 찾았다.

마을 앞 개울이 서리서리 흐르는 프랑스 동네, 서래마을

반포천 옆 산책로. 서래마을을 서릿개(蟠浦)라 하며, 반포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했다.
 반포천 옆 산책로. 서래마을을 서릿개(蟠浦)라 하며, 반포라는 이름도 여기서 비롯했다.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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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리풀공원은 반포4동 서래마을에서 시작한다. 고속터미널역 5번 출구로 나와 5분 정도만 걸으면 서래마을에 도착한다. 걸어가는 도중 주위를 보니 온통 아파트가 올라가고 있다. 25층이 넘는 아파트들이다.

아파트 꼭대기마다 대형 크레인이 달려 있으니 꼭 거대한 로봇도시에 온 느낌이다.

서래마을은 마을 앞 반포천이 서리서리 흐른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다. 서애(西涯, 서쪽물가)마을 또는 서릿개마을이라고도 불렀다 한다. '서애(西涯)'라는 이름이 임진왜란때 정승 유성룡의 호와 같은데 그와는 별 관계가 없다. 유성룡이 태어난 곳은 경북 의성이다.

조선시대 임금 인조와는 관계가 다소 있다. 서초구청 홈페이지에 따르면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남쪽으로 가는 길에 이 곳에서 죽을 먹었다고 한다. 추측해 보건데 왕에게 죽을 대접했을 정도라면 당시 이 동네가 그다지 잘 사는 동네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긴 조선시대 서래마을 근처 마뉘꿀 고개엔 호랑이가 나타날 정도로 숲이 우거지고 산적이 나타난 동네였다고 하니 그 정도를 알 만하다.

서리서리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니 '뱀 따위가 몸을 똬리처럼 둥그렇게 감고 있는 모양'이라고 돼 있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서리'가 어쩌다가 '서래'가 됐는지 궁금하다. 함경남도에선 넋두리를 '서래'라고 하고, 경상북도에선 '서리'를 서래라고 한다는데, 지방 사투리와는 별 관계가 없는 듯하다. 어쨌든 서릿개(蟠浦)가 변해 반포(盤浦)가 되었다.

서래마을에 들어가기 전 먼저 반포천 구경부터 해야 할 듯하다. 동작역에서  고속터미널역까지 걸쳐 있는 반포천 2.2km 구간 옆엔 보행로가 만들어져 있다. 길 넓이나 분위기가 걷기에 적당하다.

'서울에서 걷기 좋은 길'에 여러 번 뽑혔는데 비오는 날 보니 더욱 운치 있다. 날씨가 궃은 데도 불구하고 제법 많은 사람들이 우산을 들고 길을 걷는다. 이 일대는 2006년 지금과 같은 공원 형태로 다시 만들어졌다.

보기엔 더없이 좋아 보이지만 서울환경연합은 지난해 '전기로 퍼 올린 물이 생태계에는 좋지 않다'며 비판 논평을 한 바 있다.

서래마을 몽마르뜨길.
 서래마을 몽마르뜨길.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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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포천에서 육교를 건너 서래로를 따라 걸어가면 보이는 동네가 반포4동 서래마을이다. 자동차를 타고 '쓱' 지나가면 아무런 감흥이 남지 않을 동네다.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또는 걸어서 동네를 다니면 뭔가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속도에 따라 보이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우선 파란색, 흰색, 빨간색 보도블록을 그냥 지나칠 순 없다. 보도블록색은 바로 프랑스 국기를 상징한다. 길이 오르막이기 때문에 걷다 보면 자연스레 보게 된다.

삼색 보도블록이 시작되는 지점에 파리크루아상이 있다. 프랑스 빵맛을 느낄 수 있는 빵집으로 제법 여러 군데 소개가 된 곳이다. 프랑스에서 가져온 밀가루를 사용한다고 한다.

서래마을. 보도블록이 프랑스 국기를 뜻한다.
 서래마을. 보도블록이 프랑스 국기를 뜻한다.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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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르메 드 커피'(Gourmet de Coffee), '카페 몽마르트'(Cafe Montmartre), '도쿄 투르 드 빈 서울'(Tokyo tour du vin Seoul), '프렌치 아시안 와인 하우스'(French Asian Wine House), '벨르 메종'(Belle Maison) 등 프랑스풍 가게가 많다.

가게만 프랑스 이름인 게 아니다. 프랑스 대통령궁 이름을 딴 '엘리제빌' 빌라, '그랑씨엘 부동산'도 보인다.

프랑스 학교가 도로변에 있다. TV에 많이 나와 잘 알려진 이다도시 사진이 붙어 있다. 짐작컨대 프랑스학교에서 무슨 행사를 하면서 이다도시가 초청인사로 왔거나 올 모양이다. 주말인데다 비가 와서 프랑스학교 놀이터에서 노는 학생을 보진 못했다.

절정은 몽마르뜨공원과 몽마르뜨길이다. 서래길 끝까지 가면 나오는 언덕길이 몽마르뜨길이다. 마침 3월이라 개나리가 활짝 피어 있었다.

서래마을 어느 카페.
 서래마을 어느 카페.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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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래마을에는 고급차가 많은 편이다. 아주 흔하게 고급차를 볼 수 있다. '잘 빠진' 스포츠카는 인근 카페와 잘 어울린다. 사진을 찍는 정래에게 "유럽 어디서 찍은 것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모르겠지?"라고 물었더니, "한글로 된 주차금지 표지판이 있어서 바로 알아차릴 것"이라고 핀잔을 준다.

고급차 수에 비해 아주 으리으리한 고급저택은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이 빌라다. 부자동네 몇 군데를 돌아본 정래는 "아주 잘 사는 동네 같지는 않다"고 인상비평을 했다.

눈으로 본 것이 꼭 사실이라고만 할 순 없을 것이다. 마케팅 전문기업 타스테크와 서울여대 VIP 마케팅 컨소시엄이 2003년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서래마을이 있는 반포4동은 연평균 소득이 6080만원으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미국돈으로 계산하면 6만1794달러가 되는 셈이다.(<이코노미스트>(2006년 8월 16일))

몽마르뜨공원은 프랑스 의류기업 '까샤렐'(cacharel)이 기부금을 내 2005년 4월 만든 공원이다.

양녕과 효녕대군과 관계있는 동네, 방배동

효령대군과 부인의 위패를 모신 청권사.
 효령대군과 부인의 위패를 모신 청권사.
ⓒ 김대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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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길을 따라 방배동으로 들어섰다. 방배동은 요즘 드라마 <대왕세종>을 보는 이라면 흥미로워할 동네다. 미래의 세종대왕이 될 충녕대군의 두 형 양녕과 효녕과 관계가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관련된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서울학연구소가 펴낸 책 <서울정도 600년 기념 설화집-옛날 옛적 서울에>에 보면 방배동과 관련한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세종이 등극한 뒤, 친형 양녕은 언제나 왕위를 빼앗을 수 있는 인물로 요시찰대상이었다. '양녕이 수상하다'는 보고도 종종 들어갔다. 세종은 그런 보고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양녕도 동생의 믿음에 보답했다. 항상 한강 남쪽에 있으면서 절대 한강을 넘지 않았던 것이다. 그 시절 도성이라고 하면 한강 이북이었다. 양녕은 도성을 떠나기 전 한강 남쪽 강둑에 서서 한양을 바라보며 다음과 같이 말하며 절을 했다.

"나의 동생 충녕아. 네가 내 대신 왕이 되어서 고생을 많이 하는구나.…우리 형제 중 나나 효령대군은 장수할 것이다마는 너는 온 정력을 쏟아서 나라를 다스릴 것이니 우리만큼 장수를 하랴? 미안하오 상감마마."

양녕을 등지고 떠난 동네라 해서 '방배동'이다. 이 이야기는 방배동에 얽힌 여러 설화 중 하나인 듯하다. 건설부 도로국에 근무했고, 한국땅이름학회 부회장인 김기빈이 쓴 <600년 서울 땅이름 이야기>에는 방배동편에 양녕과 관련된 언급은 없다. 단지 방배동은 우면산(牛眠山)을 등지고 있어서 방배동이라고만 돼 있다.

서리풀공원
 서리풀공원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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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마르뜨길을 따라 가다, 내방역으로 방향을 틀었다. 내방역에서 서리풀공원으로 들어갔다. 서리풀을 한자로 '서초'라고 하니, 서초구와 서초동이란 지명이 바로 '서리풀'에서 나왔다. 서리풀공원은 서래마을에서 시작하는데, 서래마을 뒷산은 청룡산이라고 불렀다.

비가 내리는 산길을 걷는 기분이 괜찮다. 낙엽이 잔뜩 쌓여있다. 정래가 "지금 가을이냐"고 반문했을 정도다. 비가 내려 '사각사각' 부서지는 소리는 들을 수 없었지만 나름대로 운치가 있다. 산이 낮고 깊지 않아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길이다. 비가 오는데도 우산을 들고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동네와 가까운 산인데도 불구하고 산은 제 모양을 잘 갖추고 있다. 소나무도 예쁘게 자란 편이다. 예쁜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정래가 '필'이 꽂힌 모양이다. 한참을 기다려도 오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장면과 싸우고 있을 것이다.

서리풀공원에서 독특한 점은 산 절반을 군 부대인 정보사가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11년까지 이전한다고 하니 그 때쯤 되면 한적한 공원이 어떻게 바뀔지는 모를 일이다.

산길을 걸으니 몇 년 전 산길을 달리던 생각이 난다. 나름대로 오래달리기 연습한다고 여기서 땀을 흘리곤 했다. 산길 끝까지 가면 예전 살았던 방배1동이다. 마음이 살짝 설렌다.

방배1동 쪽 산에서 한 아저씨가 큰 소리를 지르며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 근처엔 '고성방가 금지'라고 돼 있다. 근처에 보이는 돌담은 청권사로 효령대군과 부인인 예성부부인 해주정씨의 위패를 모신 사당과 묘소가 있는 절이다. 서울시 유형문화제 제12호다.

돌담길을 따라서 자주 산책을 했는데 지금은 플래카드로 막혀 있다. 근처에 가서 보니 '2007년 3월 12일자로 폐쇄했다'고 적혀 있다. 이런. 무슨 일이 있었나 싶어 살펴보니 동네가 운석이라도 맞은 듯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대규모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렇게 또 한 동네가 사라졌구나 싶었다.

방배1동 아파트 공사장.
 방배1동 아파트 공사장.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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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 터닦기 공사장을 보고 있는데, 눈 앞에서 뭔가 어른거린다. 자세히 보니 꿩이다. 한 마리가 아닌 두 마리. 서울에서 보기론 처음이다. 얼마 전 북악산엔 멧돼지가 나타났다고 하는데, 서울 생태계가 많이 좋아졌다는 증거일까.

손바닥 사진기를 들고 열심히 찍어보는데 재빠른 꿩을 도저히 잡을 수가 없다. 나보다 좋은 사진기를 들고 있던 정래도 계속 셔터를 눌러보지만 결국 잡지 못하고 포기하고 만다. 정래는 망원 렌즈가 없음을 무척 아쉬워했다.

청권사 옆 서리풀공원에서 본 꿩.
 청권사 옆 서리풀공원에서 본 꿩.
ⓒ 조정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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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로 내려왔다. 길과 집이 사라진 대신 아파트 공사장 주변엔 가림막이 쳐져 있었다. 공사장 주변에 야생초를 키우는 밭이 보인다. 활짝 핀 꽃이 예뻐 보니 매화다. 표지판을 보니 쑥과 머위도 있는 모양이다. 야생초밭이 이렇게 대로변 가까이 있는 곳도 드물지 싶다.

살던 동네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길이나 집을 가늠할 여지가 없다. 산은 그대로지만 정보사가 이전하면 지금과 같은 모양은 아닐 것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변하는 것이야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빨리 변한다는 생각이 든다. 그것도 모든 흔적을 지우면서 말이다.


태그:#서리풀공원, #서래마을, #방배동, #골목,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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