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2시 서울 한남동 특검 빌딩 2층 로비. 13년 만에 수사기관의 포토라인 앞에 선 삼성 이건희 회장은 기자들에게 "(삼성이) 범죄집단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고, 그렇게 옮긴 여러분들이 문제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의혹이 불거진 후 반년 가까이 수사에 시달렸고, 한 꺼풀씩 실체가 드러날 때마다 호된 비판을 받았지만 이 회장은 끝내 고개를 숙이지 않았다. 이 말을 전해들은 김용철 변호사와 시민단체들은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용철 변호사 "이건희 회장 죄의식이 없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경제개혁연대 소장)는 4일 "결국 삼성이 스스로 변화할 의지가 없다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한탄했다.
김 교수는 "이미 대한민국의 모든 국민들이 삼성의 불법 부당한 행위를 알았는데도 여전히 그 사실을 부인한다는 것은 삼성이 사회가 정한 규칙을 따르기보다 자신들이 규칙을 만들어 가겠다는 오만함을 보인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더불어 "이 상황에서도 "특검이 '꼬리 자르기' 식 수사로 마무리 짓는다면 반성할 생각도 없는 삼성이 형사처벌을 통해 거듭날 수 있는 계기는 사라진다"며 "삼성이나 우리나라 전체의 불행이다"고 말했다.
김용철 변호사도 4일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이 회장을 향해 "죄의식이 없다"고 일침을 날렸다. 김 변호사는 "이건희 회장의 특검 출석으로 엄청난 규모의 '삼성비자금' 연극은 이제 마지막 무대를 연출하고 있는 게 아니겠냐"며 말끝을 흐리기도 했다.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예상했던 반응 아니냐"며 "밑에서 뒤집어쓰고 이 사건을 끝내려는 것"이라고 냉소했다. 그는 "삼성의 자정능력은 기대하기 힘들다"며 "이 회장을 구속 수사해야 제대로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사무처장도 특검이 수사의지가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미 참여연대 등 고발단체에서 특검에 면담을 요청했지만 특검 측에서 두 번이나 거절했다"며 "오는 7일에는 특검이 허락하지 않더라도 꼭 특검을 면담할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에 비우호적인 언론? 얼마나 더 유리한 보도를 원하나"
한편,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김인국 신부는 "이건희 회장의 말이 맞다"며 "우리는 이건희 일가가 범죄집단이라고 했지, 단 한 번도 삼성이 범죄집단이라고 한 적 없다"고 말했다.
또 김 신부는 "이 회장이 기자들에게 화살을 돌린 것은 아마도 기자들이 이 사회의 소금 역할을 못해서 그런 모양"이라며 "그런 면에서는 공감한다"고 반어적으로 말하기도 했다.
이 회장이 불현듯 기자들에게 '범죄집단' 주장 책임을 씌운 것과 관련해 김유진 민언련 사무처장도 "언론이 삼성 입장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뜻이라면 이건희 회장은 참 자기중심적 사고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며 "언론이 정치권력보다 더 두려워하는 게 삼성이고, 삼성은 광고를 무기로 매체의 생명까지 좌우하는 실질적 권력이 됐는데, 얼마나 더 유리한 보도를 원하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더불어 김 사무처장은 "많은 언론들이 삼성의 눈치를 보느라 우호적인 기사를 내보내려고 애쓰고 있다"며 "경제신문과 보수언론은 이미 삼성을 방어하기 위한 노력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그는 "이 회장이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온 세상을 정말 삼성 뜻대로만 하고 싶어 하는 오만함의 극치"라고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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