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치 좋은 주변환경, 쾌적한 기후, 호숫가에 점점이 있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마을, 훌륭한 낚시터…."'세계 최고의 사전이라더니 무슨 설명이 이리 빈약해?'브리태니커는 간과하고 있었다. 단 두 줄의 묘사로 이 호수를 평가하려고 하는 것은 2안타만 치고 야구경기를 이겨보려는 심보와 다를 바 없는, 참으로 못된 설명이었다.
과달라하라에서 반나절 페달을 밟아 달려 간 차팔라 호수. 멕시코에서 가장 크다는 차팔라 호수에 대한 명성은 비록 과달라하라에서 귀동냥으로 들었을 뿐이다. 가이드북에서도 토막 정보 정도로만 실린 이곳은, 그야말로 지나쳤다면 손해 볼 뻔한 미답지였다.
귀한 정보를 가지고 달려와 마지막 신나는 내리막길을 달리니 마치 두 팔을 벌려 반기는 듯한 호수로 첨벙 뛰어 들어가는 느낌. 정말이지 탁 트인 파아란 경치는 넓고 시원하고 깨끗해 보였다.
무엇보다 이렇게 큰 호수에 휴양시설이 들어차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게 아닌, 작은 마을로 고즈넉한 운치를 더해주고 있는 점이 마음에 꼭 들었다.
붉은 태양을 등진 새의 퍼덕거리는 날갯 짓 한 번에 작게 이는 물결이 정적을 흩트려 놓고, 고요한 물결 위로는 사그락 햇살이 내려앉는 소리가 다 들릴 정도다.
때론 부레옥잠 사이에서 꽥꽥거리는 오리들의 울음소리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정신없이 날아드는 모기들의 습격이 호젓한 차팔라 호수 감상을 방해하지만 괘념치 않을 만큼의 당겨끄는 매력이 있다.
작은 떨림이 시야에 선명하게 들어오는 곳. 그래서일까? 차팔라 호수는 차분함을 즐기는 미국 노인들에게도 인기 있는 황혼 휴양지이다.
해질녘 간이 부둣가에는 낚싯대를 드리운 한가로운 그림이 바삐 살아온 그리고 그만큼이나 바삐 달려온 내 숨결을 고르게 만들고, 아예 허리까지 차는 호수에 들어가 그물을 던지는 광경에는 얼마나 잡혔을까 궁금해 하며 어느 새 나도 모르게 응원하게 되는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
더욱이 과달라하라에서만 판다는 토르따스와 흡사한 오가다스(Ahogadas)와 튀긴 토르띠야 속에 감자가 들어간 타코 도라도(taco dorado)를 오물거리는 특전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여행의 궁극적 해탈은 식도락에서 기인하니 말이다.
사실 과달라하라에서 지도를 펴들고는 고민했었다.
온통 마게이(용설란) 밭으로 둘러싸여 데킬라를 만들어 내는 원산지 데킬라(Tequila)나 도기의 산지로 유명한 또날라(Tonala), 라 차빠리따(La Chaparita)라고 불리는 수많은 기적을 일으킨 성모상이 제단에 모셔진 순례지 사뽀빤(Zapopan) 등이 동서남북 주변에 위치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단언하건대 차팔라 호수로 방향을 튼 것은 무엇을 보러 가는 게 아닌 무엇을 느끼러 간 유일한 여행지였다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확신한다.
"아름다운 곳을 모두 갈 수는 없지만, 내가 간 곳은 모두 아름다웠다"는 여행 명제는 이곳에서도 어김이 없었다.
하룻밤 짧은 시간 마주한 풍경이었다. 물비늘에 튀기는 저녁 햇살은 황금보다도 눈부시게 빛났고 마치 거리의 화가가 열성을 다해 그린 명작을 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였다. 이런 장면을 조금 더 꾸밈이 없이 온당하니 잡아내지 못하는 카메라 렌즈를 탓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연장 탓하는 목수의 잘못인지 마음에 아쉬움만 가득하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부레옥잠에서 고래고래 목청을 드높이던 오리 소리 대신 잔잔한 물결 위를 타고 미끄러지는 새소리가 저만치 멀리 들려올 때쯤 바라본 호수에는 마치 얼음나라를 방불케 하는 회색빛 차가운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장면이 장관을 이루며 다시금 차팔라 호수를 선택한 스스로를 흡족히 여기게 만들었다. 귀찮아서 카메라를 꺼내진 않은 게 지금 와서 두고두고 후회가 될 정도로 말이다.
저녁에는 황금을 던져도 그리고 아침에는 다이아몬드를 빠뜨려도 결코 만들어 내지 못할 순수한 빛의 아름다움을 머금은 차팔라 호수. 그 매력을 뒤로 한 채 또 어딘가에 숨어 있을 보물섬을 찾아 안장 위에 오른다. 자전거 여행에는 행복의 브레이크가 없다.
덧붙이는 글 | 세계 자전거 비전트립 홈페이지는 http://www.vision-trip.net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