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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고용 의무제도에 대해 경제 5단체가 완화를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3일 전국경제인연합회·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5단체는 정부에 신규 과제 52건을 포함해 267개의 규제를 개편해 달라는 건의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그 건의서에서 경제 5단체는 '장애인 고용의무'와 '장애인 의무고용 적용제외율 폐지'의 '개선'을 주장했다.

 

자세한 내용을 살펴보자.

 

2% 장애인 의무고용은 선진국 추종정책?

 

건의서는 상시 50인 이상의 근로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이 2%에 해당하는 장애인을 고용하게 하고 그렇지 못할 때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납부하게 하는 현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무고용률 하향 조정 등 전반적인 제도 개선 논의가 필요하다는 것.

 

장애인 고용에 대한 인프라도 부족하고 국민의식 수준도 낮은 상태에서 국가의 책임을 기업에게 전가 시킨다는 것이다. 또 현실에 대한 치밀한 고려 없이 선진국의 정책을 추종했다며 우리의 의무고용률이 일본의 1.8%보다 높은 2%라고 지적했다.

 

또 의무고용 적용 제외율이 2010년 폐지됨에 따라 기업이 633억원을 추가 부담하게 된다며 적용제외율 폐지를 재고하라고 건의했다. 2010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되는 적용제외율을 업종별 특성에 맞게 재설정해야 한다는 것. 말이 '개선'이지 '완화' 혹은 '개악'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완화' 주장은 이번뿐만 아니라 이전에도 있었다.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에게 장애인 고용 의무제도가 큰 걸림돌이 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틈만 나면 이러한 주장을 되풀이 하고 있다.

 

나는 장애인 교육기관에 재직하고 있는 교사로, 이와 같은 기사를 접하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치고 지켜보면서 학교 졸업 후 가정을 꾸리고 바른 사회인으로서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이 나에겐 큰 보람이다. 사실 지금도 사회의 문이 좁은데 더 좁아지는 사회로 바꾸겠다고 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장애인들은 사회에서 약자다. 약자라 해서 소외되고 일할 수 있는 근로권마저 박탈할 수는 없다. 자격을 갖춘 장애인들에게 기회마저 주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서 그나마 사회에 발붙일 수 있도록 하는 최소한의 장치가 '장애인 고용 의무제'였다.

 

장애인의 취업문, 여전히 좁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교직에서 학생을 가르치고 있는 교사 민선숙(인천혜광학교)씨는 "장애인 고용 의무제가 있음에도 기업들은 법을 지키고 있지 않고 있다. 만약 법을 완화한다면 그나마 어려운 가운데 일하고 있는 장애인들이 쫒겨 나게 될 것이다. 이는 자라나고 있는 어린 장애 학생들의 미래에 대한 희망의 싹을 끊는 것이 된다"고 흥분한다.

 

역시 시각장애를 갖고 있는 박한욱씨는 "강자만 살 수 있는 사회는 잘못이다, 말로만 '어울려 산다'고 외쳐면서 정작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는 여건 마련은 등한히 한다"며 "장애인은 동정 받으며 거저 살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일하며 행복을 추구하며 함께 살기를 원한다, 함께 나누고 함께 일하면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워 나가야 한다, 이러한 장애인의 바람을 충족시키고 함께 하는 것은 기업의 사회적 책무"라고 주장했다.

 

시각장애인 모임인 '넓은마을' 게시판에는 "장애인을 짤라야 기업이 산다구요?"라며 "'함께가요, 사랑해요'라는 기업의 선전 문구는 단지 구호에 머물고 있다(ID hufs8637)"고 질타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장애인 버리고 자기들만 잘 살겠다고?

 

장애인은 함께 일하며 사회에서 함께 어울려 살고 싶다. 그런 최소한의 열망을 채워줄 수 있는 작은 발판이 장애인 고용 의무제다. 기업이 이윤 증대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를 들어 장애인에게 생명줄 같은 이 제도를 완화해 달라는 것은 갖고 있는 자들이 더 가지겠다는 것이며 자신들만이 잘 살겠다는 근시안적인 생각이다.

 

사실상 의무 고용제는 경증 장애인보다는 중증 장애인을 위한 법이다. 5, 6급의 경증 장애인들은 장애가 쉽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취업에서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때문에 장애인 의무 고용제는 장애인 중에서도 더 힘든 여건에 있는, 그래서 더 약한 입장에 있는 장애인을 위한 것이다.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들, 이를 테면 여성과 노약자들의 권리를 찾아주는 데서 시작됐다. 평범한 사람, 나아가 흑인과 여성, 그리고 장애인의 권리를 찾아주면서 민주주의는 발전해 왔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더 잘 사는 한 방법을 찾겠다며 기존에 이뤄 놓았던 인간다움의 권리를 하나 둘 빼앗고 있다.

 

사실 장애인을 2% 고용하는 장애인 의무고용제조차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그런 상태에서 더 완화해 달라고 주장하는 것은 장애인이 인간답게 살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또 소외되고 약한 이들에게 이 사회가 베풀어야 하는 최소한의 의무마저 버리는 행위인 것이다.


#장애인#장애인의무고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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