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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
18대 총선에서 서울 노원병 지역구에 출마해 당선된 홍정욱 한나라당 후보. ⓒ 유성호

<7막 7장>, 그리고 한나라당 후보

십 년도 넘은 옛날이야기다. 어느 배우의 아들이 공부를 잘해서 하버드대에 갔고, 수석 졸업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게다가 외모도 아버지를 닮아 아주 잘 생겼다고 했다. 방송사에서 하버드대 졸업식을 생중계하느니 마느니 하는 쇼를 했었고, 수석 졸업이 있느니 없느니 하는 논쟁도 잠시 있었다.

그 후 그 멋진 청년은 미국유학기를 담은 <7막 7장>이라는 책을 썼고, 나도 읽어 보았다. 똑똑한 청년의 글답게 재미있었지만, 다 읽고 난 나는 이런 생각을 했다. 혹시라도 이 사람이 한국의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나는 그에게 표를 주지 않으리라. 왜냐면… 그는 미국인이니까.

그 후 그가 어느 재벌가의 딸과 결혼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을 했다. 또 얼마간 시간이 흐른 뒤에는 신문사 하나를 인수하고 대표이사가 되었다고 들었다. 공룡을 집어삼킨 것이었다는 부정적 평가도 얼핏 스쳐가며 들었다.

그러던 그가 드디어 한나라당의 후보로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통합민주당도 아니고, 민주노동당도 아닌 한나라당의 후보로 말이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부디 같은 지역구에서 출마한 진보신당 노회찬 후보가 이겨주기를 바랐다.

미국 유학파 5촌 조카와 홍정욱

내게는 홍정욱 당선자처럼 중학교 때부터 대학까지 미국에서 교육을 받은 5촌 조카가 한 명 있다. 지금 그 애는 한국 사회를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곳이 군대라는 부모의 뜻에 따라 현역으로 군대에 가 있다.

그 애가 대학 시험에 합격하고 잠시 한국에 다니러 왔을 때였다. 그 애에게 맛있는 것을 사 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랜 기간 못 보았지만, 이 아이는 참 똑똑하게 잘 자라 있었다. 은근히 내 조카가 기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우연히 기여입학제로 화제가 옮아가자 뒤통수를 한 대 맞는 느낌이 들었다.

"고모, 기부금 입학제는 당연한 거야. 그게 없으면 대학이 뭘 먹고살라고? 부자들이 대학에 기부를 하고 그것으로 대학들이 시설 확충도 하고, 학생들 장학금도 주는 거거든."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기부금 입학제에 대한 거부감이 많아. 우리는 실력이 없어서 대학에 못 가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돈이 없어서 대학에 가지 못하는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못하는, 매우 평등을 좋아하는 사람들이거든."
"에이, 세상은 원래 불공평한 거잖아. 부자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기부도 많이 하고, 혜택도 많이 받는 거 아니야?"

이 날의 대화는 "서로 생각이 다르구나. 한국에는 고모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으니까 한 번 참고해 보렴"하는 정도로 마무리되었다. 지금도 나는 조카를 매우 사랑한다. 하지만, 이날의 서글픔은 잊을 수가 없다. 아! 내 조카는 미국인이 되었다.

"당신은 한국인 입니까?"

요즘은 세계화 시대라고 한다.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말이 자주 들리는 한편, 한국인의 정체성이니 민족이니 하는 말은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유행에 뒤진 단어가 되었다. 그러면 글로벌 스탠다드가 아닌 로컬 스탠다드는 현대 사회에서 전혀 쓸모 없는 것일까?(사실은 글로벌 스탠다드라기 보다는 아메리칸 스탠다드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세계화도 중요하고 외국인을 이해하는 열린 마음도 분명히 필요하다. 그러나 그런 것들만 강조하여 우리만의 독톡한 특성, 개성, 정체성을 잃어버린다면 그것만큼 어리석은 일도 없을 것이다.

홍정욱 당선자는 중학교 때 케네디 대통령을 매우 존경하여 그가 다니던 학교에 다니고 싶어 유학을 갔다고 했다. 그리고 대학까지 전형적인 미국식 교육을 받으며 성장했다. 미국이 좋아서 미국식 교육을 선택한 그의 정서는, 그의 머릿속은 과연 한국인의 것일까?

남보다 뒤떨어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고, 미국식 합리주의를 정이 없는 차가운 것이라 인식하고, 서로에게 참견하는 것을 사생활 침해가 아닌 당연한 공동체 생활이라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정서를 미국의 엘리트 코스를 밟은 그가 과연 그는 잘 알고 있을까?

물론 선진국의 정치 시스템을 보고 배운 사람이니 그의 능력을 잘 활용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니겠느냐는 반론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의 긍정적인 문화, 바른 기술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미국의 의료 시스템과 같이 후진적인 면도 미국의 것이기 때문에 받아들이려고 하는 작금의 현실을 보면 홍정욱 당선자와 같은 아메리칸 스탠다드를 익힌 정치인의 등장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홍정욱 당선자는 젊고, 18대 국회는 아직 개원도 하지 않았다. 따라서 나의 이러한 주장은 근거 없는 편견에 불과할 수도 있다. 홍 당선자가 18대 국회에서 훌륭히 의정 활동을 해 편견으로 가득 찬 나의 이런 우려를 보기 좋게 날려 주기를 기대해 본다.


#홍정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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