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고 있다. 여기도 같은 중국인가 싶을 정도다. 샹그릴라로 향해 가는 버스 안에서 내다본 사람들의 생김새도 다르고 풍광도 다르다. 티베트 문자도 심심찮게 눈에 띈다.
버스는 가파르고 험한 산 고개를 넘어간다. 점점 멀어지는 지나온 길들은 실낱처럼 가늘게 산허리를 가르고 있다. 그 옛날, 말과 야크 등에 차(茶)를 실은 마방(馬帮)들도 이 길을 넘었을까. 험준한 산길을 인생의 고비 넘듯 끄덕끄덕 넘어 갔을까.
차마고도의 흔적을 찾아
버스를 타기 전 시간이 남아 계획에 없던 속하고진(束河古鎭)을 돌아보았다. 종종 그렇듯이 기대하지 않은 곳은 뜻밖의 감동을 준다.
리장에 있는 또 하나의 고성, 속하는 조용하고도 맑은 곳이었다. 아직 햇살이, 부서지지 않은 유리알처럼 말간 아침, 우리는 산책하듯 어슬렁거렸다.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역참기지였다는 속하는 북적대는 리장 고성(대연전)과는 달리 차분하고도 조용한 곳이었다. 하늘빛 닮은 파란 두건을 단정하게 두른 나시족 할머니들, 발길에 툭툭 채이며 굴러다니는 말들의 배설물, 오래고 오랜 풍경을 품어온 잔잔한 물결….
굳이 찾아 간 건 아닌데 어찌어찌 걷다 보니 대석교 앞에 이르렀다. 800년의 역사를 가진 돌다리는 리장 전체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라고 한다. 중심부의 돌들은 주변의 것보다 수백 년은 더 오래된 것이라고 한다. 무수히 오고갔을 사람과 말들의 흔적들이 빛나고 있었다. 그 빛나는 흔적 위에 내 발자국을 포갠다고 생각하니 괜히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도 앞선 세계역사상 가장 오래된 무역로. 운남의 질 좋은 차(茶)를 티베트의 말(馬)과 맞바꾸는 길.
티베트에 처음으로 차를 알린 사람은 7세기 초 당나라 문성공주였다. 티베트 왕에게 시집을 가면서 가져간 차는, 육식을 주로 하는 티베트 유목민들에게 비타민을 보충해 줄 수 있었다. 그렇게 티베트에서는 차 열풍이 불기 시작했지만 척박한 티베트에서 차를 재배하기는 불가능한 일. 하여 차마무역이 촉진되고 차마고도가 다져진 것이다.
마방(말무리를 이끄는 사람들)들은 소금과 티베트 특산물을 싣고 와서 대리국(따리)의 차를 구했고, 중국은 국방과 운송에 필요한 말을 차마무역을 통해 구할 수 있었다.
당시 푸얼차(보이차)로 부유해진 윈난의 대리국이 멸망한 후에는 쓰촨성으로 그 무역지를 옮기게 되어 또 다른 차마고도가 만들어진다. 그리하여 차마고도는, 인도나 네팔로 이어지는 길, 라싸에서부터 구게왕국, 파미르 고원을 지나 카슈카르까지 이르는 길 등… 모두 여섯 가지라고 한다. 어쩌면 따리, 리장, 샹그릴라를 거쳐 티베트로 향하는 길이라면 모두 그 옛날의 차마고도였는지도 모르겠다.
삶에 대한 겸손함을 가르쳐준 '속하'
그까짓 차 하나 때문에 그렇게 험난하게 굽이굽이 산길을 헤쳐 간 것일까. 목숨 내놓고 칼날 같은 산길을 걷고 또 걸어야만 했을까.
하지만 나는 깨닫는다. 산다는 건 그토록이나 간절한 일. 먹고 살아가는 일상은 그렇게나 위대한 일. 삶은 화려한 궁궐에서만이 아니라 세상 구석구석 칼날 같은 길 위에서도 지속된다는 일. 어디 칼날 같은 게 길뿐이랴. 인생길만큼 날카롭고 위태로운 칼날이 또 있을까.
그리하여 살아간다는 일, 아니 살아낸다는 일만큼이나 기적적인 일이 이 세상에 또 있을까. 작두날을 타는 무당보다 더 놀라운 일인지도 모른다.
속하는 그렇게 조용하고도 나직하게, 삶에 대한 겸손함을 가르쳐 준 곳이다. 줄줄이 꿰어진 솔방울이 발처럼 드리워져 있고, 물길을 가로 지른 과일 바구니들이 꽃처럼 어여쁜 걸 보니, 속하 사람들은 아기자기하고 작은 걸 사랑하는 게 틀림없다. 강아지의 슬픈 눈망울 위에 까만 눈썹을 그려 놓은 걸 보니, 속하 사람들은 장난기 많고 능청스러울 게 틀림없다.
리장 고성의 흥청거림이 싫다면 속하에 가보면 좋을 것이다. 될 수 있으면 상점들이 끝나고 마을로 이어진 길 어귀쯤을 어슬렁거리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면 어느 골목길에서, 유니폼처럼 나시족 의상을 차려 입고 햇볕바라기를 하는 귀여운 할머니들을 만날 수 있고, 담요 같은 외투를 두르고 볼따귀가 발갛게 튼 꼬마를 만날 수 있으리라.
우리는 그곳에서 돌아나오는 길에 해바라기씨를 한줌 샀고, 바삭바삭한 감자튀김과 포근포근한 떡을 번갈아 먹으며 허기진 배와 아쉬움을 달랬다.
우리는 지금 샹그릴라로 간다
버스가 험준한 산고개를 돌아 넘자 하늘이 넓어지고 무덤 같은 구릉들이 몽글몽글 펼쳐진다. 버스가 서자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가 큰 바구니를 들고 올라탄다.
늙은 여자는 커다란 모자를 쓰고 있다. 아니 모자라기보다는 마치 커다란 천막을 두르고 있는 듯하다. 이족(彛族)이다. 자리에 앉은 늙은 여자가 검은 천막을 걷어 내리자 길게 땋은 머리가 드러났다.
늙은 여자와 젊은 여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두런두런 말을 나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같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척 보면 모녀간인지 고부간인지 짐작이 가니 말이다. 물론 확인해 본 건 아니지만.
늙은 여자는 내릴 때가 가까워서야 머리를 친친 감아올리고 천막을 다시 둘렀다.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도 끄떡없겠다. 두 여자가 버스에서 내리고 마주치는 마을사람들과 정겹게 인사를 나누는 모습이 차창으로 보인다.
버스는 다시 달리고, 간혹 창 밖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부터 달라지는 느낌이다. 태양빛에 그을린 이마는 보석처럼 반짝이고, 콧날은 훨씬 섬세하다. 가끔, 젊은 청년들의 말갈기 같은 뒷머리는 가슴 설레게 멋지다.
점점 더 넓어지는 하늘, 황톳빛 대지, 길을 가로막는 야크 떼들, 검은 테두리가 그려진 창문이 높다란 집들. 샹그릴라가 가까워진 게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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