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선가 보리밭~사잇길로.....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비온 뒤 더욱더 선명하고 푸른색 옷으로 갈아입은 보리밭 사이를 걸어가는 행인의 휘파람소리가 운치를 더한다. 복잡한 주말을 피해 한적한 주중을 이용하여 7일 전북 고창에 있는 청보리밭을 찾았다.
고창군 공음면에 자리 잡은 30만평의 드넓은 밭.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메밀을 재배하는데 봄에는 청보리축제와 가을에는 메밀꽃 축제가 열린다. 매년 찾아오는 곳이지만 보리의 크기가 찾아올 때 마다 다르기 때문에 늘 신선한 느낌이다. 탁 트인 푸르른 들판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시에서 찌들었던 온갖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 버리게 된다.
보리밭 가운데 노부부가 작품 사진을 카메라에 담고 있다. 남편이 아내에게 자상하게 가르쳐주는 노부부를 보면서 같은 곳을 바라보며 취미 생활을 한다는 것이 부럽기도 하고 참 보기도 좋다. 젊은 연인들끼리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행복한 한때를 보내는 모습 또한 사랑스럽다.
매년 이곳을 찾을 때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아 수박 겉핥기식으로 입구에서만 보고 갔던 기억을 되살리며 이번에는 기필코 30만평이 넘는 보리밭을 샅샅이 돌아보리라 맘먹고 간지라 구석구석 가는 곳마다 색다른 모습이 나를 반긴다.
보리밭 사이로 날아든 야생화 꽃씨가 떨어져 보리와 함께 엉켜 꽃을 피우니 장관이다. 내린 빗물을 머금은 때 이른 보리이삭이 고개를 들고 하늘을 향해 자태를 뽐낸다. 어렸을 적 오빠가 만들어준 보리피리를 불곤 했던 추억이 생각나서 보릿대를 하나 뽑아 보리피리를 만들어 봤으나 제대로 되지 않는다. 한참을 승강이 하다 포기하고 만다.
보리밭을 지나다 보니 엄마에게 들었던 보릿고개라는 말이 생각난다. 보릿고개는 겨울에 쌀이나 보리를 다 먹어 곡식이 떨어져 아직 보리가 여물지 않아 아주 먹기가 힘든 기간에 사람들이 살아남기 위하여 풀뿌리나 새로 나온 보리 잎을 뽑아 곡식이 부족했던 때라 가루를 내어 곡식으로 만든 가루는 조금 넣고 보리 잎과 함께 죽을 끓여먹거나 버무려 떡을 만들어 허기를 달랬다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생각난다.
지금에야 웰빙 식품으로 건강을 생각해서 먹지만 우리들의 어머니 시대에는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보리 잎이나 풀뿌리 나무껍질 등을 먹었다는 보릿고개가 생각난다.
보리는 보릿고개를 넘었다는 어르신들에게 그렇게 가슴 저린 추억을 만들기도 했지만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아이들의 키보다 훨씬 자라버린 보리밭 사이로 걸어가다 몰래 숨어 술래잡기를 했던 기억도 생각나게 한다.
보리이삭이 얼마정도 익어갈 무렵 아버지께서는 보리이삭을 잘라와 불에 구워 까칠한 부분을 모두 타게 되고 남은 보리를 손으로 비벼 주시곤 했는데 그 시절에는 그게 그렇게 맛이 있었다.
아마도 과자를 자주 사주시지 못했던 아버지가 우리에게 해 주실 수 있었던 최고의 간식이 아니었을까? 신나게 먹고 난 뒤 거울을 보면 입 주위가 새까맣게 변했던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지금은 추억속의 한 장면이 되어버렸지만 보리밭 사이를 지나다 보니 그때로 돌아가고 싶은 충동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보리이삭이 익을 때쯤이면 한 번 더 찾아가 추억을 만들어보리라.
보리밭 사이로 부지런한 농부들이 보리밭을 관리하기위해 부지런한 손놀림으로 뭔가를 하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들이 있기에 나는 이렇게 아름다운 보리밭 샛길을 행복해하며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12일부터 5월 12일까지 고창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 다채로운 행사로 찾아오는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가족이나 연인, 친구, 시간을 내어 고창 청보리밭 축제에 나들이 계획을 한번 세워봄은 어떨까?
덧붙이는 글 | 찾아오는길
서해안고속도로 고창IC로 나오셔서 무장면 방면(고창시가지 반대 방향)으로 오시면 됩니다.
모든 도로교통안내 표지판에 관광명소인 "고창 청보리밭"이 표기되어 손쉽게 오실 수 있습니다.
호남고속도로 정읍I.C에서 고창방면 22번 국도 이용
흥덕에서 23번 국도를 따라 고창도착
795번 지방도로를 따라 무장을 거쳐 공음쪽으로 4Km 진행
좌측으로 군도 4호선인 선동 방면의 도로를 따라가면 행사장 도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