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박으로 분류해주시면 행복하죠"(오마이뉴스)60송이 활짝 핀 '박꽃' 한나라엔 태풍경보(인터넷 한겨레)총선이 끝났다. 선거에는 승과 패가 분명히 나타난다. 이번 선거에서도 예외 없이 인상적인 승리자와 안타까운 패배자가 있었다. 또한 선거에서는 후보자 개인뿐 아니라 정치 세력별로 승패의 명암이 갈리기도 한다.
대부분 입을 모아 박근혜 전 대표가 승자라고 말한다. 어떤 신문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의 힘이 부쩍 커졌다고도 하고 다른 신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패배자라고도 했다. 그런데 정말 그런 것일까?
정말 박근혜가 최고 승자일까대부분 언론들이 '친박'으로 분류될 수 있는 당선자 수를 60명 내외로 보고 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이 중 반이 넘는 35명이 한나라당 공천자이다.
첫 번째 의문으로서 한나라당 공천으로 당선한 의원들이 차기 국회에서도 친박 기조를 변함없이 유지하겠느냐는 점을 제기할 수 있다. 그것은 권력의 속성상 낙관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이명박 쪽으로 다가갈 공산이 더 크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벌써부터 공천에 대해 입을 다물었고 선거 과정에서도 친박적(?) 행위에 소극적이었다. 이것은 지난 정권에서 정동영이나 김근태나 천정배 등이 노무현 쪽으로 다가서지 않을 수 없었던 이치와 흡사하다.
울며불며 소란을 피운 것은 수족을 잘린 박근혜 전 대표와 공천에서 탈락한 친박연대와 친박 무소속 연대 후보자들뿐이었다. 그들을 모두 합한 인원은 24명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공천 과정에서 무리를 감수한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아무튼 이명박 대통령은 적지 않은 파장은 있었지만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을 갈라치기하는 데 성공한 듯하다. 심지어 이명박 대통령은 선거 과정에서 혈육인 근혜·근령 자매까지 갈라놓지 않았는가?
그들이 일괄 복당하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 왜냐하면 한나라당은 그들이 없더라도 원내 과반수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만약 선별 복당을 한다면 그들의 결속력이 상당히 약화된다고 보아야 한다.
일괄 복당, 과연 가능할까이렇게 볼 때 이제 박근혜 전 대표 세력은 한나라당 내 친박 계열 중에서 권력으로부터 소외되는 몇 명과 당외의 24명 정도라고 보아야 한다. 게다가 그들의 성분도 건전한 편이 아니다. 우선 친박연대의 임원격인 서청원 의원과 홍사덕 의원은 구태 한나라당의 이미지를 짙게 가지고 있다. 좌장 격이라는 김무성 의원의 대중성은 거의 전무하다.
이런 마당에 '친박연대'의 김일윤 당선자(경주)는 금품살포 혐의로 자택 압수수색을 받았다. 물론 선거법 위반은 친박연대 당선자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1번 양정례 당선자는 학력위조, 대리출마 등의 구설수에 휘말리고 있다.
게다가 그들은 대부분 '박정희 향수' 또는 영남 지역주의의 힘으로 당선한 인물들이다. 지역구 당선자 중 영남 외 지역 인사는 3명뿐이다. 단적으로 말해 이 정도 세력과 성분으로는 대권의 교두보가 구축되기 힘들다.
만에 하나 한나라당 내 친박 의원이 모두 당을 뛰쳐나와 친박연대와 합쳐져 또 하나의 당을 만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럴 경우 이념이나 정책이 한나라당과 비슷한 박근혜당은 정체성의 혼돈을 겪어야 하고 따라서 한나라당을 비판, 견제하는 세력으로 자립하기가 더 어려워진다고 본다. 결국 이것은 박 전 대표의 대권가도를 더욱 어둡고 험난하게 만들 것이다.
이면을 들여다 볼 때, 박근혜 전 대표는 이번 총선을 통해 수도권과 충청권을 잃은 대신 영남권을 공고히 하는 고육지책을 강요당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대권을 위한 필수 요소인 '전국적 영향력'을 상실한 것으로서 박근혜 전 대표로서는 참으로 뼈아픈 현실이 되고 만 것이다.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의 허구성'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말은 '공천 전쟁'에서 진 박근혜 전 대표가 해서 세간에 회자된 말이다. 그런데 이것처럼 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말도 없다. 총선 결과 이 대통령은 박근혜 전 대표를 배제시키고도 과반을 얻었다.
언론들은 이재오 전 의원이나 이방호 사무총장의 패배를 역설적으로 박근혜 전 대표의 승리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기에도 논리적 비약이 있다. 이재오 전 의원은 대운하 때문에 진 것이다. 그리고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라는 녹록지 않은 상대가 있었다. 이방호 사무총장은 사무총장을 하느라 지역구 관리에 소홀했고 상대인 강기갑 의원의 개성과 이미지가 강렬했기 때문에 진 것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박사모의 강기갑 의원 지원이 이방호를 낙선시켰다고들 한다. 불과 182표밖에 안 되는 표차로 볼 때 그렇게 볼 수도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이 박근혜 전 대표의 승리일까? 이것은 차후 대권 경쟁에서 필경 박근혜 전 대표에게 불리한 추억(?)으로 작용할 터이다.
이것은 장기적으로 보아 박근혜 전 대표의 영향력 확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박사모는 살아남기 위해서라면 스스로 '좌익 빨갱이'라고 여기는 민노당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집단이라는 것을 보여주었을 따름이다. 개중에는 박근혜 전 대표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 역시 '좌와 우를 넘나들면서 동지를 죽이고 자기 생존을 도모한 인물'이라는 사실을 떠올리는 이도 더러 있을지 모른다.
따라서 '나도 속았고 국민도 속았다'라는 박근혜 전 대표의 말은 수정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말은 승리 이데올로기를 관철시키고자 하는 권력 지향의 정치인이 국민의 감정이나 군중심리에 호소한 '레토릭'에 불과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박근혜도 속았고 영남인도 속았다' 정도로 수정되어야 옳다.
박근혜 전 대표는 친박연대 당선자의 복당을 언급하며, '복당을 거부하는 것은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이것 역시 그의 말대로 '국민의 뜻'을 거스르는 일일까? <리얼리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복당에 찬성하는 비율이 37.5%, 반대하는 비율은 49%에 이른다. 심지어 한나라당 지지층에서도 복당에 반대하는 여론이 찬성하는 여론과 대등한 수준으로 나타난다.
이 대통령, 조용한 곳에서 웃는다주지하듯이 이 대통령은 의회 과반수를 얻는 데 성공했다. 그것도 박 전 대표를 배제하고 얻은 수확이다. 불과 6개월 전 경선 때만 하더라도 이 대통령은 당내 세력 구성에서 박 전 대표에게 밀렸다. 그가 후보가 된 것은 국민 여론 지지 덕분이었다.
그런데 이번 총선에서는 지난 대선과 달리 박 전 대표의 지원을 전혀 받지 않고도 원내 과반수를 달성했다. 원내 과반수 획득이란 쉬운 일이 아닐 뿐더러 그것도 당내 경쟁 계파를 빼고 얻는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이 대통령은 정권은 물론 당권까지 장악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그가 총선 결과에 조심스럽게 만족을 표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총선 다음 날 집무실에 들어서며 "굿모닝!"하고 인사하며 "방미를 앞두니 영어가 잘 나온다"고 말하는 그의 여유를 언론이라면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는 대운하를 언급하기도 하면서 신속한 정책 집행을 독려하기도 했다. 그가 당 대표를 불러 한마디 하니 전당대회 일정이 잡혀버릴 정도로 그는 당권까지 완전히 장악한 것으로 보인다.
언론이 선거 결과를 흥미롭게 부각해 보도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번 총선 결과를 보도하는 한국 언론들은 과학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도덕적이지도 않았다. 언론은 선거 결과를 냉철하게 분석하고 보도해야 한다. 출구조사를 기준으로 승패를 매기는 즉흥성과 근시안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양심적인 언론이라면 이제 박 전 대표를 이용하는 마케팅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 이제라도 이 대통령이 견제 받지 않고 질주하게끔 나타난 선거 결과를 분석하고 이에 따른 위험성을 경고할 수 있어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김갑수 기자는 작가로서 오마이뉴스에 소설 <제국과 인간>을 연재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