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타운 안 한다고? 배신당했다."
"매물이 다 들어갔다. 장사 못 하겠다.""집값 상승? 서민들만 죽는 거다."14일 오후,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서 만난 사람들의 얘기다. 이날 만난 대부분의 사람은 뉴타운 얘기를 꺼내자 한숨부터 쉬었다. 역정을 내기도 했다. 집 있는 사람·세입자·부동산 중개업자들 모두 불만이 가득했다.
최근 '도노강(도봉·노원·강북)'이라는 부동산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도노강의 맏형 격인 노원구를 비롯한 강북 지역은 최근 집값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이 지역에 집을 가진 사람들은 "우리가 강남보다 못한 게 뭐냐"며 집값 상승을 반겼다. 부동산 업자와 투기꾼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세입자들과 서민들은 치솟는 집값에 부들부들 떨었다.
이번 4·9 총선은 강북 지역의 집 있는 사람들에겐 집값 상승의 분위기를 이어갈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따라서 이들은 뉴타운·재개발·재건축 등 개발 심리를 자극하고 그에 대한 '실천의 힘'을 강조했던 한나라당 후보들에게 금배지를 달아줬다.
하지만 이들은 난데없는 날벼락을 맞았다. 총선 직후인 11일 정부는 강북 집값을 잡겠다고 나섰고, 오세훈 서울 시장은 14일 "뉴타운의 추가·확대 지정을 고려하지 않겠다"고 말해 뉴타운 공약을 내건 한나라당 후보들을 '거짓말쟁이'로 만들었다.
뉴타운 개발을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속았다, 당했다"라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집값 상승으로 매물이 쏙 들어간 부동산 업주들도 먹고 살기 힘들단다. 이미 집값·전세값 상승으로 내 집 마련을 포기한 세입자들과 서민들의 고통이 더욱 커진 터였다.
이날 찾은 서울 노원구 상계동에선 "뉴타운 공약은 결국 표를 얻기 위한 거짓말 아니었느냐"며 흥분된 목소리가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거리 한복판엔 '노원 발전으로 보답하겠다'는 이 지역 홍정욱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의 당선사례 펼침막이 곳곳에서 나부끼고 있었다.
폭등한 강북 집값에 실효성 없는 대책... 서민만 고통
"작년 말보다 40%는 올랐다, 두 배 오른 곳도 있다."서울 노원구 상계동 아파트 값에 대한 얘기다. 이날 낮 12시 서울 상계동 B 아파트 인근의 한 부동산 업자는 "작년 말 1억3000만~4000만원 하던 전용면적 59.5m²(18평) 아파트가 현재는 2억2000만원 한다, 2억6000만원도 부른다"고 전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전용면적 92.6m²(28평)의 경우, 작년 말 2억6000만원 하던 게 현재는 3억2000만~3000만원 정도다.
아파트를 가지고 있는 지역 주민들은 "저평가 돼 있던 게 오른 것"이라며 집값 상승을 내심 반겼다. 이 지역에 산다는 T공인중개사 김아무개 대표는 "학군도 좋고, 전철 다 들어오고,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도 개통돼 교통도 좋다, 여기가 강남보다 못한 게 뭐냐"고 반문했다.
지난 11일 정부는 이 지역의 집값을 잡겠다며 주택거래신고지역 지정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이에 대해 "효과가 없을 것"이란 게 이 지역 부동산 중개업자들의 생각이다. 김 대표는 "실거래 신고는 이미 해왔고, 집값이 6억 이상이면 자금 조달 계획을 내야 하지만, 여긴 6억 넘는 아파트가 없다"고 밝혔다.
그는 "근본 대책은 공급을 늘리는 건데, 이명박 정부는 잘못 짚었다"며 "대책 없이 뉴타운만 만들면 집값만 폭등한다, 그러면 이명박 대통령은 욕 바가지로 먹고 죽 쑤고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창동의 모 부동산 대표 역시 "이사철 때 다 올랐다, 뒷북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뒤늦게' 실효성이 의심스러운 대책을 내놓는 사이, 집값 폭동은 서민들의 삶을 옥좼다. 부동산 업자들은 한결같이 "신혼부부, 서민 등 실수요자들이 너무 오른 집값 때문에 집 못 사서 매우 안타깝다"고 말했다. 상계중앙시장에서 만난 윤아무개(70)씨는 "물가도 올랐는데, 집값까지 폭등해 너무 힘들다"고 전했다.
부동산업자들도 죽는 소리를 한다. D 부동산 중개업소의 김아무개 대표는 "대선과 총선 때 재개발·재건축·뉴타운 한다고 하니, 강남 여자들이 집값 상승 부추기고, 집 있는 사람들은 2배 줘도 안 내놓고, 거래가 전혀 안 된다, 우리도 죽을 판"이라고 말했다.
"뉴타운 때문에 찍었는데, 이제 와서 안 한다고? 꼴도 보기 싫다"
"주민들 우롱하는 거 아니냐."오세훈 서울시장이 이날 오전 "뉴타운 추가 지정은 없다"라고 말한 소식을 전하자, 상계 5동에서 만난 곽정옥(53)씨는 격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뱉었다. 곽씨는 "뉴타운 때문에 찍어줬는데, 이제 와서 안 한다고 하면 거짓말한 것 아니냐, 배신감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한나라당에서 거짓말한 것이면 이번에 민주당처럼, 다음 선거 때 (한나라당을) 제대로 심판하겠다"고 별렀다. 인근에서 만난 이아무개(54)씨 역시 "속았다, 신의가 없는 게 아니냐, 그런 선거 공약은 사라져야 한다"고 성토했다.
상계2·5동은 노원구에서 유일하게 노후 주택 밀집 지역이다. 당고개역 인근 상계3·4동은 뉴타운으로 지정된 지 오래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큰 것일까? 이들의 불만은 컸다.
상계2동에 사는 한 부동산중개업자 역시 "정치인들이 표 좀 얻으려고 그런 공약을 내세웠다"며 "투기만 조장한 그들이 꼴도 보기 싫다"고 말했다.
윤아무개(70)씨는 정치인들보다 주민들을 탓했다. 그는 "뉴타운 제대로 되려면 10년은 걸릴 텐데, 뉴타운·재개발 얘기로 집값이 갑자기 오르니 주민들이 표를 던졌다, 주민들이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약이) 너무 뻥튀기 된 건데, 주민들은 집값 상승을 부추겼다"고 개탄했다.
인근에서 야채 가게를 하는 윤종환(40)씨는 "집 있는 사람들이 뉴타운 분위기에 들떠서, 낙하산 후보를 당선시켰다"며 "내가 봐도 분명히 속는 것인데, 주민들이 뉴타운·경전철 이런 분위기에 휩쓸린 것 같다"는 '자체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속았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 창동지역도 마찬가지였다. 이곳은 신지호 한나라당 국회의원 당선자가 뉴타운 공약을 전면으로 내세운 곳이다. 도봉구는 노원구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집값 상승률을 보이고 있다.
창동시장에서 만난 50대 중반의 여성은 "지역 발전에 대한 기대감으로 신 후보가 당선됐다"고 전했다. 하지만 창동시장에서 과일가게를 하는 장아무개(41)씨는 "우리 집 주인은 뉴타운·재개발 보고 상가를 샀다가 망한 경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