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정선의 가리왕산 자락도 오늘은 화창한 봄날입니다. 새순을 밀어 올리는 나무들의 힘찬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새들은 짝을 찾기 위해 목청껏 노래를 부릅니다. 노랑나비가 꽃향기를 찾아 삐뚤빼뚤 하늘을 납니다. 발정 난 고라니의 외로운 외침도 들려옵니다.
바야흐로 봄은 사랑의 계절이자 짝짓기의 계절입니다. 여름이 오기도 전 가리왕산 자락은 무수한 새 생명으로 넘쳐 납니다. 사랑의 결실인 것이지요.
동물 몸에 기생하여 살아가는 진드기가 제철을 만났다개 한 마리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름은 '낑낑이'입니다. 주인에게 뭔가 요구할 일이 있을 때 새소리 비슷하게 내는데, 그 소리가 '낑낑'을 닮았다고 해서 낑낑이가 되었습니다. 진돗개라고는 하지만 진돗개 40촌은 되어 보입니다.
그렇다고 멍청하다는 얘긴 아닙니다. 아이큐 40은 거뜬히 되는 녀석입니다. 낑낑이는 자신이 절반은 인간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개입니다. 입 양쪽에 난 덧니가 매력인 녀석입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이는 덧니를 보이며 으르렁거리면 물까 봐 무섭다고 합니다.
그러나 무서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아직까지 사람을 문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요. 오히려 사람이 그리워 눈물 흘리는 녀석이 낑낑이입니다. 주인이 읍내라도 나가면 집 마당에 앉아 주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녀석입니다.
이해타산만 따지는 인간의 눈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개라는 동물입니다. 주인에게 충성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걸 먹여주지 못하는 것이 오히려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런 이유로 살아가면서 '개만도 못한 놈'이라는 말을 가끔 듣게 되는데 그 말이 맞는 듯도 싶습니다.
봄이 되어 좋기는 하지만 낑낑이에게 봄이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 이유는 진드기 때문입니다. 집에 기생하는 집먼지진드기가 아닙니다. 개나 토끼·고양이 등의 동물에 기생하는 진드기를 말하는 것이지요.
한 달 전쯤 되었을까요. 주변은 아직 겨울 풍경을 하고 있는데도 낑낑이의 몸에 진드기가 기생하기 시작했습니다. 동물의 몸에 기생하는 진드기는 사람으로 보면 '이'와 같습니다. 지금이야 '이'를 구경하기 힘들어졌지만 30년 전까지만 해도 아이들 몸엔 이가 스물스물 기어다녔습니다. 사람의 피를 먹고사는 기생충인 것이지요.
진드기를 처음 봤을 땐 충격으로 밥도 먹지 못했다진드기는 개의 피를 먹고사는 기생충입니다. 처음엔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다가 피를 먹게 되면 콩알보다도 더 커지는 게 진드기입니다. 낑낑이가 먹는 영양분을 진드기가 다 빨아먹는 셈이지요.
진드기를 처음 본 것은 낑낑이와 함께 살기 시작한 5년 전 봄입니다. 낑낑이가 생후 5개월 정도 되었을 때입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낑낑이 얼굴에 큼지막한 검은 점이 하나씩 생기더니 며칠이 지나자 얼굴은 점 투성이로 변했습니다.
한창 집수리를 하던 때라 낑낑이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볼 여유도 없던 때였습니다. 개를 직접 키워본 일이 그 때가 처음인지라 진드기가 뭔지 알 턱이 없었지요. 낑낑이가 가려웠던지 자꾸만 얼굴을 긁더군요. 무슨 일인가 싶어 얼굴을 만져 보았더니 콩알만 한 것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더군요.
'이게 뭐지?'뭔가 싶어 하나를 떼어냈더니 피를 가득 먹은 진드기가 살아 움직이고 있었습니다. 순간 손을 털어내며 '으악!'하고 비명을 질렀습니다. 징그럽기도 하고 흡혈귀 같은 것이 무섭기도 하더군요.
낑낑이는 주인이 왜 저렇게 놀라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뒷걸음질치는 주인을 향해 달려왔습니다. 서둘러 컴퓨터를 켜고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낑낑이의 몸에 붙어있는 것이 진드기라고 합니다.
갑자기 난감해졌습니다. 떼어내야 하지만 손을 대기도 싫었습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는데 속이 메슥거렸습니다. 남자가 입덧을 할 리도 없는데 공연히 헛구역질까지 나왔습니다. 담배를 몇 개비 태우고 나서야 수습을 해야겠다고 작심했습니다.
낑낑이 피를 빨아 먹고 사는 진드기, 하루에도 수십 마리 잡아진드기는 낑낑이 얼굴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귀와 목덜미를 비롯해 온몸에 붙어 피를 빨고 있었습니다. 그동안 털 때문에 보이지 않았을 뿐입니다. 첫날 잡은 진드기만 해도 몇 백 마리는 족히 됩니다. 진드기를 떼어낸 곳은 살점이 뜯겨나간 자국이 선명하게 남습니다.
진드기 몸을 터트리니 피가 멀리까지 튈 정도로 진드기의 몸은 탱탱합니다. 어떤 놈은 너무 많이 먹은 탓에 콩알처럼 굴러가기도 합니다. 그날 잡은 진드기 몸에 있던 피를 다 모으면 밥공기 하나는 채우고도 남을 양입니다.
진드기는 털 사이로 기어들어가 작지만 날카로운 이빨로 몸을 뭅니다. 그런 이후 피를 먹기 시작합니다. 이빨을 빨대 삼아 낑낑이 몸에 꽂고 있으니 어지간해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람이 떼어내도 겨우 떨어질 정도이니까요.
진드기를 처음 잡은 날엔 충격으로 밥을 먹지 못했습니다. 진드기가 떠올라 밥맛도 없었습니다. 진드기 몸 속에 있던 피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지기도 했습니다. 5년 전 있었던 일입니다.
요즘은 어떻냐고요? 진드기 잘 잡습니다. 낑낑이는 원숭이처럼 스스로 진드기를 잡지 못하니 주인이 잡아 주어야 합니다. 물론 진드기 예방약을 뿌리면 어느 정도 효과가 있다 싶지만, 그 또한 건강상 문제가 있을 듯싶어 그냥 둡니다.
요즘은 하루 한두 번은 진드기를 잡아 줍니다. 한 번 시각 하면 보통 20여 마리는 잡습니다. 작은 놈도 있고 피를 가득 먹은 놈도 있습니다. 진드기를 잡을 때면 낑낑이는 시원한지 가만히 있습니다. 가끔은 피 냄새를 맡기 위해 앞다리로 주인의 손을 끌어다 큼큼 거리기도 합니다.
동물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사람도 공격한다진드기는 나무나 풀에 기생하여 살다가 낑낑이의 몸으로 옮겨 붙습니다. 세계적으로 진드기의 종류는 2만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엔 몇 종류가 있는지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진드기는 겨울이 되어서야 사라집니다. 그러니까 봄부터 초겨울까지 낑낑이를 공격하는 것이지요. 그 기간에 잡는 진드기만 해도 몇만 마리는 될 겁니다. 진드기는 개만 공격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드기는 사람을 공격하기도 합니다. 등산로가 아닌 숲 사이를 헤치다 보면 진드기가 집까지 따라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린 피부를 지닌 사람일수록 피해를 많이 봅니다. 진드기가 숨어드는 곳은 털이 있는 두피나 겨드랑이, 생식기 주변이거든요. 산이나 들판에 다녀온 후 가렵다고 생각하면 진드기가 있다고 봐도 틀리지 않습니다.
진드기는 한 번 물면 누가 떼어내기 전까지는 상대를 결코 놓치지 않습니다. 그런 이유로 집요하게 따라붙은 사람을 일컬어 '저런 진드기 같은 놈'이라고 비유해 말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아침에도 낑낑이의 몸에서 진드기 30여 마리를 잡았습니다. 이젠 진드기를 잡는 일이 일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징그럽다는 생각이 들지만 낑낑이가 진드기로 인해 고생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그런 징그러움 정도는 참을 수 있습니다.
진드기를 잡아 주면 낑낑이는 좋아라 합니다. 고맙다는 표시로 주인에게 갖가지 애교를 떨기도 합니다. 문밖에서 주인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는 낑낑이에겐 따듯한 봄날이 사랑의 계절이 아니라 '수난의 계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