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란드 동부의 아우구스투프. 이 도시는 빙하기에 만들어진 수백 개의 그림 같은 호수로 이름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무엇보다 이 도시는 11개의 호수를 인공하천으로 연결한 101km의 운하가 시작되는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우구스투프 운하는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 이탈리아의 피렌체, 러시아의 상트페테르부르크처럼 습지에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생존을 위해 건설한 운하가 아니라, 바다와 내륙을 잇기 위해 자연호수와 강물을 연결한 운하다. 전체 구간 중 40%는 완전한 인공 수로, 36%는 강을 개조한 수로, 24%는 자연호수며 80% 정도는 폴란드, 20% 정도는 벨로루시 영내를 통과하고 있다.
아우구스투프 운하는 아름답다. 수면 위엔 백조가 떠다니고 맑은 물속에는 물고기가 노닐어 날씨 좋은 날이면 강태공들이 장사진을 이룬다.
또한 대부분의 구간을 카누를 타고 여행할 수 있어서, 5월이면 수상스포츠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기자가 이달 초 찾았을 때도 운하엔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는 선수들의 카누가 떠다니고 있었다.
폴란드 정부는 이 운하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시키는 작업을 추진 중이다.
아우구스투프시에서 운영하는 관광안내소 소장인 즈비그녜프 후스차씨는 눈에 띄는 공업 시설 등이 없는 아우구스투프에서 운하가 도시 홍보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한다.
"아우구스투프 운하는 요즘 같은 장비가 없던 19세기에 오롯이 사람의 힘으로 만들어졌다. 여기에다 미학적, 역사적 가치까지 있다. 이미 폴란드 국가유적으로 등록돼 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준비되고 있다. 폴란드의 유럽연합 가입 후 방문객이 계속 늘고 있다."
후스차씨는 매일 300여 명이 아우구스투프 관광안내소를 찾고 있으며, 그 중 대략 절반이 외국인이라고 전했다.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중... 애초 기대했던 경제성은 충족 못해그렇지만 이 운하를 긍정적으로만 평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의도치 않았던 관광 수입원이 되고는 있지만, 기획 당시 기대했던 경제성을 전혀 충족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우구스투프 운하 건설 과정엔 폴란드의 아픈 역사가 담겨 있다. 운하 건설이 시작된 것은 1823년.
당시 폴란드는 오스트리아, 프러시아(프로이센), 러시아 세 나라에 의해 분할 지배되고 있었다. 그런데 러시아가 통치하던 아우구스투프 지역은 북쪽 지역을 점령한 프러시아로 인해 바다의 항구에 접근할 통로가 차단됐다.
현재 폴란드 최대 항구인 그단스크 지역을 다스리던 프러시아는 그 항구를 이용하는 러시아 관할 지역의 폴란드인들에게 항구를 통해 들어오는 물품 가격의 30%에 이르는 높은 관세를 부과했다.
이 부담을 덜기 위해 역시 러시아가 관할하던 라트비아의 항구 벤츠필스에서 폴란드에 이르는 운하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 높은 산이 거의 없어 터널 등을 별도로 만들 필요가 없는 폴란드 지형도 운하에 적합한 것으로 간주됐다.
운하 건설을 진두지휘한 사람은 프롱진스키 장군이다. 운하는 러시아의 지배를 받던 폴란드왕국 군인들의 감독 아래 일용직 노동자들의 손으로 건설됐다. 급여는 하루에 빵 일곱 덩이 정도를 살 수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그리 많은 급여는 아니었지만, 많은 이들이 지원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부분 자신이 사용할 공구를 들고 현장에 출근했는데, 공사장에서 장비를 받아 사용할 경우 그만큼 일당이 줄어들기 때문이었다. 공사 기간 동안 건축 공구를 제작한 업종도 인근에서 호황을 누린 것으로 전해진다.
운하 사업은 초기에는 프러시아와 경쟁 관계에 있던 러시아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1831년 11월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일어난 반러시아 봉기 후 공사가 중지되고 이미 건설된 구간이 파괴됐다.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1839년 폴란드의 나레브강에서 벨로루시의 니에멘강을 연결하는 수준에서 공사는 마무리됐다.
애초 계획과 달리 바다에 닿지도 못하고 내륙의 호수 등만 연결한 애매한 상태였다. 공사 시작 2년 후 러시아와 프러시아가 그단스크의 관세를 낮추는 협정을 체결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라트비아까지 연결하려던 방안도 실행되지 못하고, 폴란드와 벨로루시 구간에서만 공사가 이뤄졌다.
그 결과 운하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직후부터, 본래 의도했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대규모 바지선은 운항되지 않았고, 화물 대량 운송은 실현되지 않았다.
공사 기간 16년... 그러나 바다에 닿지도, 화물선 다니지도 못한 말뿐인 운하경제적 목적으로 활용된 경우는 이따금 주변의 목재를 뗏목처럼 묶어 띄워 하류로 보내거나(1990년 이후엔 이마저도 사라졌다), 소규모 관광용 유람선 혹은 개인 소유 모터보트로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정도였다. 이곳 사람들은 여전히 운하라고 부르지만, 사실상 처음부터 물자를 실어 나르는 운하 본연의 기능과는 거리가 먼 셈이었다.
아우구스투프 운하엔 18개의 갑문이 있다(폴란드에 14개, 벨로루시에 4개). 폴란드의 14개 갑문(이 중 2개는 현재 사용되지 않는다) 중 11개는 19세기 모습을 거의 그대로 간직하고 있고, 현대화와 자동화를 위한 개조 없이 19세기 방식대로 운영되고 있다. 배가 지나갈 때마다, 갑문에 상주하는 사람이 일일이 손으로 갑문을 조정하는 방식이다. 나머지 3개는 2차 세계대전 때 소련군의 진입로를 차단하고자 한 독일군에게 파괴돼, 전후에 복원됐다.
유네스코에서 이 운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역사적 가치 때문이다. 운하박물관의 역사 연구원 보이체흐 바투라씨는 프랑스와 벨기에 운하에 이어 아우구스투프 운하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는 세 번째 운하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한 아우구스투프 운하의 장점으로 역사와 자연풍광이 조화를 이루고 있다는 점을 꼽았다.
최근엔 관광자원으로 활용되는 것 역시 제한적이다. 1차 세계대전 직후엔 운하의 명성이 유럽 전체로 퍼지면서, 운하를 따라 여행하는 크루즈 여행이 선보이기도 했다. 유람선을 타고 운하를 여행하면서 거의 24시간 동안 선상에서 즐기는 여행은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폴란드인들은 더 이상 24시간짜리 유람선 여행을 즐기지 않는다. 이와 관련해 1차 세계대전 직후 운하 유람선 여행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당시엔 텔레비전이나 영화 등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의도치 않았던 관광 효과 덕분에 천덕꾸러기 신세 면했지만...
물론 지금도 운하와 연결된 호수 주변엔 호텔들이 줄지어 있고, 관광객을 실어 나르는 유람선 사업을 하는 회사도 여럿 있긴 하다.
그렇지만 유람선은 갑문 몇 개 통과하며 호수를 관람하는 수준이며, 그나마 하절기에만 운행될 뿐이다. 요즘 아우구스투프 운하를 주로 이용하는 이들은 소규모의 카누 애호가다.
또한 갑문 통행세가 있긴 하지만 상징적인 수준이다. 아우구스투프 운하에서 19세기 방식으로 운영되는 갑문을 통과하려면 배 한 척당 1유로 정도의 요금을 내야 한다.
관광안내소 자료에 따르면, 아우구스투프 운하에서 2005년 한 해 동안 폴란드 구간에 있는 12개 갑문(14개 중 사용되지 않는 2개 제외)을 통과한 선박은 7735대, 승선 인원은 3만4195명이다.
한 척당 요금이 1유로 정도이니 2005년 한 해 동안 벌어들인 총 금액은 120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갑문 하나당 벌어들이는 1년 수입이 100만 원 정도인 셈이다.
한편 화물 운송 측면에서 경제성이 매우 낮다는 것이 긍정적으로 작용한 부분도 있다. 수질이 심하게 나빠지지 않은 것이 바로 그것. 아우구스투프 운하의 물은 폴란드 수질 관리 당국에서도 '양호하다'는 진단을 받았다(물론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정도는 아니다).
이는 바지선 등 동력을 이용한 대형 선박을 통한 화물 운송이 발달하지 않은 덕분이다. 게다가 이 운하는 뱃길을 유지하기 위해 물의 흐름을 인공적으로 차단한 '갇힌 운하'라기보다는 이와 연결된 11개 호수의 일부라고 할 수 있다. 폴란드가 강수량이 많지 않은 나라임에도 운하에는 깨끗한 물이 공급될 수 있던 것도 한몫했다.
이와 관련, 바투라씨는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바지선이 지속적으로 다녔다면, 운하의 수질을 보장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전했다.
"대형 화물선 다니지 않아 수질 유지"... 다른 운하 계획도 실행 안 돼그러나 아우구스투프 운하로 인해 환경 문제가 발생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는 징후도 나타나고 있다. 운하 주변 지역의 토양이 건조해지는 한편, 주변 생태계의 변화도 점차 잦아지고 있는 게 그 징후다. 사막화로 규정해야 할 만큼 정도가 심하지는 않지만, 운하 때문에 생긴 생태계 변화를 주시할 필요성을 느끼게 할 정도는 된다는 지적이다.
아우구스투프 운하 이후에도 폴란드에서는 새 운하 건설 주장이 나온 적이 있다. 1970~1980년대 말에 집권한 브로니스와브 게레멕이 주창한 비스와강 운하화 사업이 바로 그것. 그렇지만 이 계획은 긍정적인 반응을 얻지 못하면서 사장됐다.
기자가 보기에 이는 폴란드의 열악한 도로 교통 사정과도 연관돼 있다. 폴란드는 도로 상태가 좋지 않기로 유럽에서 꽤 악명 높다. 남부에 고속도로가 약간 있지만 나라 전체적으로 볼 때 고속도로 시설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기본 인프라인 고속도로를 후순위로 미루고, 경제성 등이 불확실한 운하에 우선적으로 투자를 해야 할까. 어떤 답이 나올지는 분명해 보인다.
물자를 대량으로 운반하는 통로로 기획됐으나, 완공 시점부터 이미 운하 본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아우구스투프 운하. 다행히도 요즘엔 관광 자원으로 부분적으로 활용되며 면피를 하고 있지만, 용으로 승천하지 못한 이무기 같은 이 운하는 거대 토목 공사 착수를 결정할 때는 신중하고 또 신중해야 함을 말없이 전하고 있다.
경제성도 의심스럽고 식수 안전을 위협할 것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를 강행하기 전에, 이러한 점부터 생각해볼 수는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