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교육과학기술부가 '학교자율화 추진계획'을 발표했습니다. 탈규제 바람을 타고 시시각각 이어지는 정부의 발표를 생각한다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인지도요.
학원운영시간을 건드리지 않고 대학 자율화를 도입하겠다고 했을 때 '그래도 공교육은 다르겠지'라는 믿음이 있었지만, 이런 추세 속에서 큰 기대가 어려웠던 건 사실입니다.
우등생반과 열등생반이 아무 제재 없이 나눠지고, 0교시와 야간자율학습은 당연한 것이 되고, 방과 후 수업은 사설학원에서 파견된 '국영수' 강사의 수업이 되고…. '몰입교육' 참 열심히 할 수 있겠네요.
도대체 정부는 '공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걸까요. 이런 현실이 초등학생들에게도 벌어진다니 아득하기만 합니다.
우리 학교 친구들은 '서울학원' 학생들
저는 소도시의 작은 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그 당시에 법적 규제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심화반도 있고 사설모의고사도 있고 수준별 이동학습도 있고 야간자율학습이며 0교시까지 다 있었지요.
우리는 모의고사 답안지에 'OO여고'가 아닌 '서울학원'이라고 써서 내는 법을 배웠습니다.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은 '심화반'이라 불리는 교실에 따로 들어가 특별대접을 받고 그 무리에 끼지 못한 평범한 아이들은 뒤숭숭한 교실에 남아 '난 뭘까'를 곱씹었지요.
'심화반' 담임이었던 선생님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도 심화반 없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을 공평하게 가르치지 못하고 '수월성 교육'을 빌미로 잘 되는 아이만 보듬는 교육. 성적 말고는 그 아이를 평가하고 키워줄 아무런 지표를 지니지 못한 학교. 그래서 일단 '공부'를 잘해야 하고, 그렇게 눈에 띄어야 하고, 상위권 대학에 가야만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학교.
우리가 성적으로만 가치 매겨지듯, 선생님들도 실적으로 가치가 매겨졌기 때문에 그랬다는 거 잘 압니다.
그래도 그런 공부기계 속에서도 우리 학교는 인간적인 교육을 위해 많이 노력했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교사와 학생의 유대감, 친구나 선후배간의 우애, 자신에 대한 존중감, 3년 동안 제가 배운 교육은 어렵게라도 그 목표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번에 20대 투표율이 20%를 밑돌았다지요. '공부만 잘 하면 되는'줄 알았던 우리가 '취직만 잘 하면 되는' 줄 아는 20대가 되었는데 정치에 관심이 없는 게 놀라운 일도 아닙니다. 경제가 살아서 안정적인 직장만 가면 되는 줄 아는 20대가 되었다 이 말입니다. 제가 부재자투표를 했다고 하자 신기하다는 표정을 짓는 제 친구들이 바로 이 20대입니다.
3살 차이가 날지 10살 차이가 날지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대한민국 교육제도의 제 후배 여러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합니다('지못미')'. 어려우시겠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부디 '공허한 공부기계'가, 또 '무관심한 어른'이 되지 않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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