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승갈 날이 바쁜데 얼마나 잘 먹고 잘 살려고 욕심을 부리겠나. 그저 찾아오는 길손(손님)들이 오색수제비 맛있게 먹고 잘 쉬었다 가면 고마울 따름이지."경남 거제시 동부면 구천리 연담삼거리 한켠에서 '길손'이라는 아담한 식당을 운영하는 부영애(62)씨는 맛과 멋을 곁들인 토속별미 오색수제비로 유명 음식점 못지않은 단골고객을 확보하고 있다. 비록 혼자서(최근에는 도우미도 생겼슴) 음식도 만들고 손님을 맞는 음식점이지만 1년 열두달 문을 닫지 않는 식당으로도 유명하다.
혹시 개인적인 일이 생겨도 음식점 문에 자신의 전화번호만 남겨놓고 하루고 이틀이고 다녀온다. 행여나 길손들이 '길손'을 찾았다가 헛걸음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세심한 배려다. 어떤 길손들은 커피를 끓여 먹고 가고 어떤 길손들은 냉장고 문까지 열어 동동주도 한사발 들이켜고 떠난다. 값은 뒤에 주거나 적당히 알아서 셈하면 그만이다. 바쁠 땐 고객들이 알아서 청소도 해주고 설거지도 거들어 준다. 그만큼 편안하고 거리낌이 없다.
손님들이 언제나 찾을 수 있는 음식점, 나그네들이 언제나 발걸음을 멈출 수 있는 주막집같은 음식점이란 의미로 상호도 '길손'으로 지었다는 것이 부씨의 설명이다.
그러나 저녁 7시가 지나면 이곳을 찾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이 시간이면 손님은 받지 않고 사물놀이나 천연염색 등 자신의 취미생활을 시작한다. 환갑이 지난 나이지만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자신의 일에 매진한다.
이 같은 열정과 긍지, 자부심이 있었기에 '길손'의 대표음식 오색수제비도 탄생됐다. 우리밀로 가루를 만들어 반죽해 하루 동안 숙성시켜 갖가지 재료를 첨가해 다섯가지 색깔을 낸다.
검은색은 적채와 흑미로, 초록색은 제철 채소로, 노랑색은 단호박으로, 빨간색은 비트나 선인장 가루 등을 이용해 오방색 만든다. 수제비 색깔도 맛깔스럽지만 거제에서 나는 각종 해산물로 우려낸 국물 맛도 일품이다. 조미료는 당연히 쓰지 않고, 버섯 다시마 새우 등으로 우려낸 천연조미료와 모두 우리땅에서 나는 제철 식재료만을 유독 고집한다.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오색수제비는 이곳 '길손'의 별미가 됐고 거제시의 전통향토음식으로도 선정, 손님들의 입맛과 눈길을 사로잡는다. 한 입 가득 떠 넣으면 입속에서 오색향기가 묻어난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TV에도 출연했고 유명 음식대회에서도 호평을 받기도 했다.
음식도 궁합이 잘 맞아야 제맛을 낸다는 부씨는 정성들여 음식을 만들어 길손들에게 팔고 밥값은 양심에 꺼리기지 않을 만큼 받는단다.
언뜻보기에는 다소 엉성한 인테리어로 보이지만 식당 안을 가득 채운 각종 소품들이 옛맛을 더한다. 현대식 기타에서부터 손으로 직접 빚은 질그릇까지 옛향기 물씬 풍기는 악세서리들 모두가 자신이 직접 하나둘씩 모은 손떼 묻은 소품들이다.
식당 옆으로 흐르는 구천천 맑은 물과 시냇물 비춰지는 노송, 그 밑에 널찍하게 깔린 바위는 구름도 쉬어갈만한 운치 있는 곳으로 자연을 즐기는 길손들이 자주 찾는 야외식당이나 마찬가지다.
'길손' 주인 부씨는 "지난해에는 냇가에 오리를 키웠더니 주변 경치와 어우러져 한폭의 풍경화 같았는데 수달이 다 잡아먹어 이제는 키우지 않는다"며 "서울 친구가 한번 놀러와 풍경을 보고 '자네는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수십억원대의 조경을 가지고 있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