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지끈거립니다. 사진기를 챙겨 밖으로 나옵니다. 집 앞에 있는 할아버지 헌책방에 들를 참입니다. 그러나 할아버지 헌책방 문이 닫혀 있습니다. 시계를 보니 저녁 여덟 시 반. 닫을 때가 가까웁긴 했지만 아쉽네. 다시 집으로 들어가기 멋쩍어서 동인천 나들이를 하기로.
확 풀렸다가 다시 쌀쌀해진 날씨입니다. 옆지기와 어깨동무를 하며 걷습니다. 대한서림 둘레로 학교옷 입은 아이들이 많이 보입니다. 옛 축현초등학교 자리에 선 학생교육문화회관 건물 옆을 지납니다. 흙과 풀이 없이 오로지 시멘트와 대리석으로 세운 이곳은 계단만 많이 보이고 너른터나 걸상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둘레로 초중고등학교가 많이 있으나 이곳에서 숨을 돌리거나 쉬는 아이들은 얼마 없습니다.
인천에 있는 중고등학교 아이들이 보충수업과 자율학습 때문에 저녁 늦게 학교를 마치는 형편을 헤아린다면, 늦은 때까지 문을 열어놓으면 좋을 텐데. 아니, 이보다 우람한 건물이 아닌 누구나 다가가기 수월하도록 건물을 지었으면 좋을 텐데. 아니, 옛 초등학교 건물을 그대로 살리면서 교실을 고쳐서 쓸 수 있었을 텐데. 그러면 너른 운동장은 놀이터로 가꾸거나 도심텃밭으로 일굴 수 있었을 텐데.
대동화방에서 아크릴물감을 삽니다. 빵집에 들러 롤빵 하나 삽니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구멍가게에 들러서 막걸리 한 병 삽니다. 처음 꺼낸 막걸리 유통기한은 3월 10일까지. 헉! 냉장고를 다시 열고 집어넣으니, “왜요? 유통기한 지났어요?” 하고 묻는 할머니. “네, 좀 지났네요.” 다른 막걸리병을 살피니 모두 유통기한이 지났고, 3월 20일까지가 가장 요새 것. 이 가게 할머니는 유통기한을 안 살펴보고 그냥 파시나? 이 둘레 다른 구멍가게에서는 이렇게 하는 곳이 없는데.
집으로 돌아와서 남은 밥을 먹고 막걸리를 땁니다. 쉰 냄새는 나지 않습니다. 배탈은 안 날 듯합니다. 잠들기 앞서 책을 펼칩니다. 옆지기도 읽어 보라고 건넨 <린하르트와 겔트루드>(페스탈로찌 씀,광개토 펴냄,1987)를 들춥니다.
“물론 그러시겠지만, 백성의 집에 오셨으니 백성들의 풍습을 존중하셔야 합니다 … 결국 다음 시대에는 현재의 학교가 베풀고 있는 것보다 질적으로 다른 교육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학교는 현재와 같이 가정생활과 크게 동떨어진 곳이 아니라, 참으로 밀접한 관계에 서는 곳이어야 합니다.(140∼141쪽)”
지지난달 끝무렵부터 천막농성을 하고 있습니다. 조용한 동네 한복판을 꿰뚫으려는 ‘산업도로 공사’를 막아서려는 동네사람들이 모여서 애씁니다.
인천시 토목 부서 공무원은, “케이티엑스가 나면, 시골 농사꾼들은 지게 지고 구경만 하지 타지는 못하지만, 빨리 달릴 수 있는 철길은 놓여야 합니다” 하는 이야기를 꺼내며, 동네사람들이 먼지와 소음에 시달리고, 아이들은 학교 가는 길에 위험에 드러나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니 시 정책을 따라야 하지 않느냐고 합니다. 경부운하와 경인운하가 놓이지 않더라도 우리 동네는 두 동강이 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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