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진짜 고속도로다. 붐비지도 않다. 추월하려고 액셀을 밟을 필요도 없다. 이렇게 달리기를 한 시간 정도. 붐비지 않으니 지나가는 풍경을 마음껏 감상할 수도 있었고, 중간 중간 눈에 띄는 시골 마을의 정겨움을 눈에 담을 수도 있다.
뿐만 아니다. 고속도로 위에서 아무런 표식도 없이 중앙분리대 근처에서 쓰레기를 줍는 사람도 눈에 들어온다. 지인에게 물어보니 괜찮다고 말한다. 이것이 중국에서 처음 본 고속도로 광경이다.
돌고 돌아서간 북녘 하늘. 순천에서 인천. 인천에서 연길. 연길에서 도문까지. 이미 마음은 도문의 건너편 북녘 하늘에 먼저 가 있었다. 이곳이 그리도 가고 싶었던 우리 동포가 사는 북녘 하늘이라고 생각하니 한동안 공허한 외침이 마음속을 울렁거리게 한다.
이곳 도문은 길림성(吉林省) 연변(延邊) 조선족자치주 중동부에 있는 중소도시란다. 북쪽으로 흐르는 두만강(豆滿江)과 남동쪽으로 흐르는 가야강이 합류한 서쪽에 위치한 곳. 한 때는 중국과 북한을 연결하는 유일한 무역통로로서 북⋅중무역의 중심지였다고 자랑한다.
1910년대까지만 해도 도문은 중국 연길현에 속한 아주 작은 자연마을에 불과했다. 심지어 1925년까지도 20여 호가 살아가는 작은 마을이었을 뿐. 그러나 1931년에 100여 호 규모로 커졌고, 1934년에는 연길현 도문시로 승격.
두만강 건너 북한의 남양(南陽)과는 철교로 연결되어서 장춘(長春)∼도문(圖們)뿐 아니라 목단강(牧丹江)∼도문(圖們) 등을 연결하는 중국내외의 교통 중심지였다고 한 마디 더 자랑.
도문시의 유례와는 상관없이 이미 마음이 가 있는 곳은 북녘 땅. 그러나 먼발치에서 철교를 바라보며 씁쓸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는 가혹한 현실이 누 앞에 버티고 있다. 저기 보이는 곳이 바로 돌고 돌아서 온 북녘 하늘, 남양시(南陽市)란다.
철교의 중간에 색깔이 다른 것이 국경선. 황토색으로 칠해진 곳이 중국이고 하늘색으로 칠해진 곳이 북한이라 한다. 하지만 색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중국인은 마음 놓고 갈수 있는 곳이지만 같은 민족인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들의 뒷모습만 바라보고 돌아서야 한다는 사실이 현실이 되어버린 것을.
도문에서 바라본 북한의 들판은 회색빛으로 변해 있었다. 산의 팔부능선까지 개간의 흔적이 목격됐고, 60년대에 건축된 5∼6층 규모의 아파트는 보수를 하지 않아 폐허처럼 너덜거렸다.
같이 간 초등학생 조카의 물음에 시원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왜 북쪽에 있는 아파트 창문 유리창은 비닐로 되어있냐는 물음에 먼 산만 쳐다 보기를 한참. 그리고 말없이 돌아서 왔다. 다음에는 현대식 건물이 들어서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허무한 꿈이 아니기를 바라면서.
내일은 연길시를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한국인이 세운 연변과학기술대학을 방문할 계획이다. 그곳은 1992년 설립된 중국 최초의 중외합작대학이라고 지인은 살짝 귀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