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일 오전에 네덜란드 시절 무역의 중심지였던 타이난의 안핑(安平) 항구를 돌아본 후 17번 도로를 타고 50km 정도 내려가니 타이완 제2의 도시 까오슝이 나온다. 여행책자에서 찾은 호텔에 들린 후 매우 아름다운 경치를 지녔다는 인공호수 렌츠탄(蓮池潭)으로 갔다. 그러나 불행히도 호수는 준설공사를 하고 있어 아름다운 경치대신 퀴퀴한 냄새만 맡았다. 호수에는 정자와 탑이 떠 있고 그 앞에는 거대한 호랑이와 용이 입을 벌리고 있다. 사람들은 용의 입으로 들어가 호랑이 입으로 나오는데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초상이 그려져 있다.
호텔 근처에는 류허(六合) 야시장이 있다. 야시장은 일정한 시간이 되면 몇 구간의 도로를 막아 차량통행을 금지하고 그 안에 임시시장이 들어서는데 많은 사람들로 매우 활기찼다. 우리도 이런 것을 일부 구간에 시행하면 관광명소도 되고 시장상인에게 도움도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14일은 자전거를 타고 까오슝 시내 관광을 하였다. 해발 355m의 서우산(壽山) 공원에 올라갔다. 들려오는 노래 소리에 이끌려 가보니 아침임에도 야외노래방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타이완 사람들도 우리 못지않게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우리는 주로 폐쇄된 노래방에서 하는데 이들은 야외의 개방된 곳에서 노래를 하고 있는 것을 많이 보았다. 정상에 오르니 까오슝 시내의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올라가는 것이 힘들면 그만큼 내려가는 것은 더욱 즐겁다. 항구로 내려가 중산대학교에 들어서니 검은색의 모래가 펼쳐진 해수욕장이 입구에 나타난다. 아무도 없는 한적한 그곳에 개 두 마리가 서로 희롱하고 있다. 입구에는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치진(旗津)반도로 건너가기 위해 페리를 탔다. 건너는 시간이 짧아서인지 페리에 승선한 스쿠터들은 시동도 끄지 않은 채 매연과 소음을 발산하며 서 있다. 정말이지 타이완의 스쿠터는 그 편리함에 반하여 엄청난 매연과 소음을 발생하고 있다. 게다가 1회 용품 사용에는 규제가 없는지 호텔, 식당 가릴 것 없이 엄청나게 사용한다. 환경보호라는 측면에서 보며 매우 잘못되어 있다. 남북이 394km이고 동서가 144km로 면적 3만6천 입방미터의 좁은 영토에 2300만명이나 되는 사람이 사는데 이렇게 환경을 무시하고 자원을 낭비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지 걱정스럽다.
자전거의 모범 마을 치진반도선착장 앞에는 해산물을 맛볼 수 있는 식당들로 가득 차 있다. 선착장 근처 언덕 위에 있는 하얀 색의 등대인 치허우덩타(旗後燈塔)로 올라갔다. 까오슝의 전경이 아름답게 펼쳐지고, 치진반도 해안가에 자전거 전용도로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 보였다. 치진에서는 책자를 통해서 이 도로를 매우 홍보하고 있는데 충분히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도로이다. 이 도로의 이름은 기진환도해경관광자행차도(旗津環島海景觀光自行車道)이며, 해안을 따라 총 길이 15.5 km로 곳곳에는 볼거리가 많았다. 도로포장은 아스팔트, 시멘트, 나무, 보도블록 등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오토바이는 전혀 들어올 수 없고 오직 보행자와 지전거만 이용할 수 있으며 근사한 조명을 한 터널도 있다. 산책길만의 역할 뿐 아니고 레저로서 자전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인공 언덕도 만들어 놓았다.
15일 갈 길이 멀어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17번 도로는 공항과 항구로 이어져 출근하는 스쿠터와 함께 매우 많은 차량으로 뒤덮였다. 스쿠터의 소음은 너무 시끄러웠다. 도로는 매우 넓었으며 빠른 속도로 가는 차와 느린 속도로 가는 차의 길은 나무숲으로 완벽하게 분리되어 있을 뿐 아니라 분리된 길마저도 작은 분리대를 놓아 자전거를 타기에는 매우 안전하였다. 그러나 20여 km 떨어진 린유웬(林園)까지 중화학공장들이 이어져 공해가 매우 심하였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시골 인심바다와 이어지는 큰 강을 지나자 비로소 공해에서 해방되는 느낌이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이미 논에는 모내기가 끝나있었다. 길가에는 이곳의 특산물인지 마치 석류 같은 빨간 과일을 팔고 있었다. 과일 이름을 물으니 렌우(蓮霧)라고 한다. 처음 보는 것이라 맛만 보고 싶어 두 개만 달라했더니 그냥 준다. 옆에 있는 수돗가에서 씻어서 껍질을 깎아 먹으라고 하는 것 같았다. 과일을 갈라보니 맨 속은 푸석하여 버리고 겉을 먹어보니 아주 맛있었다. 50위엔(元)어치만 사고, 갖고 있던 쵸코파이를 고마운 뜻으로 맛보라고 주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렌우를 한 바구니 담아 주는 것이 아닌가. 지고 가는 것이 부담스러워 괜찮다고 했으나 막무가내로 주는 바람에 받아와 그 다음 다음날까지 간식으로 먹었다. 시골 인심은 우리와 다를 바 없었다.
풍강(楓港)에서 26번 도로를 타면서 바다가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그동안 전혀 볼 수 없었던 도로가의 휴게소가 켄딩국립공원에 들어서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처청(車城)에서 153번 지방도를 타고 바이싸(白砂)를 지나 마오비터우(猫鼻頭)에 들어섰다. 바람은 매우 강하게 불었고 파란 바시해협이 눈앞에 펼쳐있다. 왼쪽에는 그동안 보이지 않던 산이 줄지어 우뚝 서있고 오늘 우리가 묵을 켄딩이 보인다.
마오비터우를 빠져나와 26번을 따라 남쪽으로 달리니 넓은 모래사장이 있는 난완(南灣)해수욕장이 시원하게 맞아주고 이어 켄딩에 도착하니 오후 5시이다. 마을 도심에서 바다를 마주 볼 수 있는 곳에서 마치 우리나라의 러브호텔같은 모텔을 잡았다. 더블베드가 두 개이고 아주 깨끗하며 시설이 좋았다. 통하지 않는 언어로 가격을 흥정하느라 힘들었지만 결국은 합의를 보았다. 이곳에서 이틀을 묵었다.
그동안 계속 흐리다가 이날 맑게 갠 날씨에 얼굴을 내놓고 하루를 보내니 안경 자국만 남기고 얼굴이 모두 탔다. 남쪽의 햇살이 이렇게 센 줄 미처 몰랐다. 다음 날부터 계속 얼굴을 가리고 다녔으나 한 번 탄 얼굴은 되돌아오지 않았다.
비수기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야시장은 사람들로 붐볐다. 이날 밤에도 바람은 엄청나게 불었고, 그 다음날까지 이어졌다. 타이완 최남단이라서 그런지 바람이 몹시 거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