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사그라지는 듯했던 '서울시 뉴타운' 문제가 다시 한나라당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여당의 차기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21일 "이제 소모적인 논쟁을 끝내자"며 진화 모드에 들어갔지만, 서울 강북 지역의 18대 총선 당선자·의원들이 이튿날 강력 반발하는 등 여당과 서울시가 정면 충돌하는 양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오 시장은 21일 대시민 발표문을 통해 "뉴타운 사업 과정에서 다가구 다세대 주택과 소형주택이 줄고 중대형 위주의 아파트가 들어서 집 없는 서민들의 주거난이 더 심각해졌다"며 "원주민의 재정착률이 30%에 머무르고 있으나 뉴타운 사업의 혜택은 집 없는 서민과 실소유자에게 돌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게 내 신념이며 책임감"이라고 말했다.
특히 오 시장은 "협소한 이해관계에 사로잡힌 일부 정치권의 왈가왈부에 좌고우면 하지 않겠다, 역사와 시민고객의 평가만을 염두에 두고 뚜벅뚜벅 나가겠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자신을 연일 공격하는 민주당은 물론, 지역구의 뉴타운 사업을 확대·발전시키려는 서울의 여당 당선자들까지 염두에 둔 발언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오 시장의 발언은 한나라당에 평지풍파를 몰고 왔다. 한나라당이 이번 총선에서 서울지역 48개 지역구 중 40곳을 휩쓰는 등 '수도권당'으로 거듭나려는 참에 오 시장의 발언은 표와 직결되는 뉴타운 사업에 찬물을 끼얹는 것으로 비쳐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당이 '뉴타운 공약(空約)'과 관련해 오 시장과 서울지역 당선자 4명을 검찰에 고발한 상황에서 오 시장의 '당분간 뉴타운 불가' 발언은 향후 검찰 수사에서 한나라당에 한층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
홍준표 "오 시장도 시장 선거 때 허위공약 한 거다"
"집값이 오르지 않으면 뉴타운을 뭐하러 하느냐"고 했던 홍준표 의원(서울 동대문을)은 22일 서울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나라당 당선자 워크숍에서도 '오 시장 성토'에 앞장섰다. 홍 의원은 행사장 바깥에 주로 머물며 기자들에게 뉴타운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오 시장이 서울시장 선거할 때, (이명박 시절까지 포함해) 50개의 뉴타운을 하겠다고 공약했고, 나나 다른 후보들도 그걸 믿고 이번에 뉴타운 공약을 했는데, 이제 와서 뉴타운을 추가지정하지 않으면 우린 뭐가 되냐? 그런 식으로 나오면 오 시장도 서울시장 선거에서 강북 주민들에게 허위 공약을 한 거다."
홍 의원은 "뉴타운을 하든 재개발·재건축을 하든 부동산 값은 오를 수밖에 없다"며 "강남은 계속 규제를 하고 강북은 뉴타운을 해야 강남북 균형발전이 된다"고 주장했다.
정몽준 의원(동작을)도 "뉴타운은 강북지역 다세대주택의 집값을 현실화시키는 측면이 있고, 강남집값을 떨어뜨리는 효과도 있다"고 주장했고, 정양석 당선자(강북갑)도 "강북·도봉 지역에서 20년 만에 한나라당 당선자가 처음 배출된 것은 지역 개발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 심리가 크게 반영된 것이니 당에서도 지원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서울의 여당 의원들과 오 시장의 견해가 계속 엇갈리면 당 지도부가 오 시장을 압박해달라는 뜻으로 해석됐다.
서울지역 당선자들끼리 삼삼오모 모여 "시장될 때 허위공약 내걸었으니 주민소환이라도 하자고 하면 어쩌려고 그러냐", "(차기 시장선거에서) 공천을 못 받을 수도 있다"며 위험수위를 넘는 발언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서울은 물론 비수도권 지역 당선자까지 '오세훈 때리기'에 가세했다.
송광호 당선자(충북 제천단양)는 24석이 걸린 충청권 총선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인물. 송 당선자는 당선자 워크숍에서 인사말 시간을 빌려 오 시장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요즘 어느 시장께서, 어느 당 소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후보들의 공약을 번복하는 사례가 있는데, 앞으로는 그 사람의 소속이 어디인지 이제 정체성을 분명히 할 때가 왔다. 언제까지 뉴타운 건설을 안 해서 서울시민들의 주거복지를 외면할 것인지 시장에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것은 지도부에서 강력히 항의해 주시고 앞으로는 이런 발언들이 함부로 나오지 않게 해주길 바란다. 그래야 뭉칠 수 있다."
서울지역 당선자들 긴급 회동, '뉴타운 대표단' 구성키로
서울지역 당선자 20여명은 이날 정오경 긴급 회동을 한 뒤 서울시와 뉴타운 문제를 협의할 서울시당 차원의 대표단을 구성하기로 했다.
정태근 당선자(성북갑)는 "뉴타운 지정권자를 변경하는 문제까지 충분히 얘기된 것은 아니다"며 "정책에 대해 오해가 있었던 것 같은데, 만나서 해결하면 얘기가 잘 되리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서울의 한 당선자는 "이명박 대통령이 먼저 시작한 뉴타운을 계속 해봐야 어차피 빛도 안 나니 오 시장이 뉴타운 대신 '디자인 서울'로 재선시장에 도전할 생각인 것 같다"며 "이 때문에 특히 MB직계 당선자들이 정오 회동에서 직설적인 말들을 많이 하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서울시당은 다음달 6일로 예정된 서울시와의 당정협의회까지 이 문제를 매듭지을 방침이다. 그러나 오 시장이 뉴타운 추가지정에 부정적인 입장을 여러 차례 천명한 상황에서 서울시당과의 협의 과정에서 기존의 생각을 바꿀 지는 미지수다.
한편, 이 대통령은 같은 날 국무회의에 참석한 오 시장에게 "서울시에는 이미 원칙이 있기 때문에 원칙대로 하면 된다"며 "서울시는 (뉴타운 지정에 대해) 정치적으로 말려들 필요가 없다"고 격려했다.
오 시장과 여당 의원들이 대립하는 상황에서 전자의 손을 들어준 듯한 대통령의 발언 배경을 놓고 당내에서는 구구한 억측들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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