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틀 포탈라궁 송찬림사그것은 마치 성 같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파란하늘을 배경으로 실루엣이 그대로 드러나는. 사원의 실루엣이 바로 능선이 되어 버리는. 라싸의 포탈라 궁에 이어 두 번째로 규모가 큰 티베트 사원, 송찬림사(松贊林寺). 멀리에서 보면 조금은 황폐한 듯 모래바람에 휩싸인 듯 우중충해 보였던 사원은 단순하고도 절제된 색채와 빛나는 황금빛의 장식들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지붕으로는 더없이 맑은 하늘을 이고 있으면서도, 발 밑으로는 승려들이 기거하는 낡은 건물들을 거느린 모습이 묘하게 운치를 더해 준다.
300년 전통의 이 겔룩파 사원은 '간덴 쑴첼링 곰파'라는 티베트 이름이 본래 명칭이었다. '간덴'은 겔룩파를 상징하는 것으로 겔룩파 최초의 사원이 바로 간덴 곰파였고, '쑴첼링'은 3명의 신이 사는 천상의 공간을 뜻한다고 한다. 지금, 그 이름은 점령당하고 중국식 발음인 '쑹찬린스'만이 남아 있다.
사원으로 오르는 길은 제법 숨이 차다. 숨이 찰수록 고개를 숙이게 마련. 그렇게 나를 낮추면서 이르는 길 끝에 구원의 손길이 기다리고 있을까.
사원 건물에서는, 티베탄들이 신성시 여긴다는 사슴과 윤회사상을 상징하는 문양과 조각들을 볼 수 있었다. 700여명이나 된다는 승려들은 모두 어디로 갔는지 보이질 않는다.
어느 법당에선가 불상을 재건축하는 일꾼들의 노랫가락이 고음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티베트 노래는 왜 이리도 애절하게 가슴을 후벼 파는 건지. 마치 신산한 인생의 굽이굽이를 따라가듯 음도 그렇게 굽이굽이 오르내린다.
송찬림사를 돌아 나오면서 아까는 보지 못했던 소녀를 만났다. 화려한 전통의상을 갖춰 입은 소녀의 사진을 찍으려면 5위안을 내야 한다. 아이는 마치 인형처럼 화장을 하고 인형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인형처럼 감정 없는 말을 주절주절 내뱉는다.
더욱 놀랍게도, 태양을 마주하며 사진을 찍는데도 전혀 눈부시지 않는 듯 눈을 빠짝 뜨고 있다. 작은 얼굴은 고산지대의 햇빛에 그을려 제법 까맣다. 가여운 생각이 들지만 어쩔 수 없다. 그 또한 아이의 살아가는 방법인 것을. 마음을 놓아 버리기로 한다. 사원은 높은 하늘을 떠받들고도 있지만 가난한 땅을 내려다보며 넉넉한 가슴으로 품을 것이라 믿고 싶다.
달 하나쯤은 남겨 두기로 하자고성 근처로 돌아와서 티베트 음악 CD 두 개를 샀다. 어떤 게 좋을지 몰라 파는 아가씨에게, 아가씨가 좋아하는 걸로 골라 달라고 했다. 아가씨가 좋아하는 거라면 나도 좋아질 것 같다. 길거리 수레에서 오렌지도 몇 알 샀다. 저울에 다는 걸 보면서, 깎아달라고도 하나 더 달라고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저울 눈금은 한참 넘어갔을 게 분명하니까. 어느새 나도 순해진 것 같다.
저녁도 먹고 CD도 사고 오렌지도 사고, 더 이상 할 일이 없는데 우리는 머무적거리며 숙소 를 지척에 두고도 들어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샹그릴라에서는 추운 바깥이 추운 실내보다 견디기 낫다는 걸 벌써부터 느끼고 있었다.
고단함에 밀려 숙소로 들어오긴 했는데, 우리 셋 다 외투도 안 벗고 털모자까지 쓴 채로 돈 계산을 하네, 일기를 쓰네, 난리다. 남편과 아이는 오늘도 역시 샤워는 그냥 통과. 내 잔소리도 그냥 통과. 어느새 나도 여유가 생긴 걸까. 거울을 보니, 거기, 이 곳 사람들처럼 이마가 반질반질해진 내가 서 있다.
샹그릴라의 마지막 밤은 쉬이 잠이 오지 않을 것 같다. 이곳에서 조금만 더 가면 티베트에 닿을 수 있을 텐데, 해발 6000m가 넘는 매리설산과 장족마을 위뻥촌을 거쳐 티베트에 이를 수 있을 텐데….
하지만 '내 마음속의 달' 하나쯤은 남겨두기로 하자. 그곳은 두고두고 간직해야 할 내 마음속의 달. 그 달은 쉽게 떠오르지도 쉽게 지지도 않을 달. 어쩌면 내가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은 달. 그렇다면 티베트는 내 마지막 여행지가 될지도 모르겠다.
행복 주머니는 작을수록 더 좋다샹그릴라에서 비행기로 날아온 쿤밍. 쿤밍이 이렇게 따뜻한 곳이었나? 새삼스러웠다. 이제쯤 길거리 음식에 기웃거리게 되고, 지저분하고 비위생적이어도 군침부터 도는 식욕체계가 정상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는데, 떠나야 할 시간이라니.
인천으로 향하는 비행기 시각은 새벽 2시 30분. 게스트 하우스에서 눈이나 좀 붙이려고 했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하나하나 되짚어 보는 지난 여행길이 꿈결처럼 아득하다.
바람을 거스르며 쏘다니고 싶은 따리의 거리, 어스름 녘 하늘보다 물 위에 먼저 등불이 노을처럼 피어나던 리장, 진주처럼 내 가슴에 단단하게 돋아난 샹그릴라…. 만일 윈난을 다시 찾게 된다면 그 시작은 샹그릴라가 될 것이다. 샹그릴라의 초원을 하염없이 달려 티베트에 이르고 싶다. 내 눈이 기억을 잃어버린 멀고먼 지평선을 따라서.
무엇보다도 윈난 여행은, 내 행복 주머니를 작게 만들어 주었다. 행복 주머니가 작으면 작을수록 행복해지기는 쉽다. 가지면 가질수록 행복 주머니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게 마련. 잔뜩 부푼 행복 주머니를 채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쉽게 행복해지지 않는다. 웬만한 걸로 행복해지지 않는다.
윈난을 여행하면서, 내 행복 주머니의 바람은 많이 빠졌고 그 행복 주머니를 채울 작은 것들을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식탁 위의 깨끗한 숟가락이 그리웠고, 맛이 밴 김장김치가 그리웠고, 내 머리카락이 떨어진 베개, 샤워기의 온수, 맨발로 돌아다닐 수 있는 마룻바닥, 난방이 잘 되는 우리 집이 많이 그리웠다.
집으로 돌아가면 얼마간은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을 것만 같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는지, 가지고 있는지를 가르쳐 준 여행. 그래서 여행은 즐겁다.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는 건 더 즐겁다.
서울에서독립을 위해 몸부림치는 티베트인들을 중국이 총칼로 짓밟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작은 티베트'라고 알려진 샹그릴라까지 중국 군대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검문검색이 강화되고, 송찬림사는 군인들이 통제하며 일반인들은 출입금지란다.
그곳은 싸움과 갈등이 없는 곳이라고 했는데. 지금, 세계 어느 곳보다 위태롭고 외롭게 피를 흘리고 있나 보다. 역시 인간세계에서 이상향은 존재하지 않는 걸까. 고요하기만 해 보이던 그 곳에서 "갈등이 없으면 뭔 재미로 살아"했던 말은 입방정이었다. 멀리 떨어진 곳에서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샹그릴라…. 제발 내 마음속의 해와 달을 부탁해!
덧붙이는 글 | 중국 윈난 여행기를 마칩니다. 그동안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