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녀·총각이 시집 장가가는 일이 뭐 그리 놀라운 일일까? 그러나 '돌'하고 '돌'하고 혼인을 했다면?
네. 맞아요. 돌로 사람 모양을 만들어 서로 혼인을 시켰대요. 오늘은 경북 구미시 산동면 '도중리'라는 마을에 오랜 옛날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돌상(동신상)'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저기다!"
"응? 어디?…. 어디?"
"저기 개울 옆에 있잖아!"
"아, 맞다. 와! 여기 있었는데 지난번에는 왜 몰랐을까?"
"그러게 말이야. 어쨌거나 우린 뭐 찾는 데는 귀신이다. 하하하!"
"하하하! 맞아 맞아!"
도중리(지난날에는 도리미 마을이라고도 하였음) 마을에 돌상 두 개가 서로 마주보고 있다고 하여 구경하러 왔는데, 뜻밖에도 마을 들머리에서 아주 쉽게 찾았답니다.
구미에서 자전거로 가면 한 시간 남짓 될까? 그리 멀지않은 곳인데, 이 마을에는 우리가 지난해에 한 번 와본 곳이었어요. 그땐 마을 뒤쪽으로 난 '임도'를 자전거 타고 넘어가보려고 왔던 게지요. 그때 마을 들머리에 있는 문 닫은 학교인 '산동 도중분교' 앞에서 밭일을 하시던 할머니 한 분을 만나 이런저런 학교에 얽힌 이야기를 듣기도 했었지요.
지난날 이 학교를 다녔던 아이들 이야기와 비가 많이 오면 개울물이 불어나서 오도 가도 못했던 얘기를 하면서 무척 재미나게 들려주었지요. 지금까지 '도중리'라고 하면 이 할머니 생각만 날 뿐이었는데, 뜻밖에 이 마을에 아주 재미난 얘깃거리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요.
떠돌이 사내 '조도래' 마을 수호신이 되다
마을 앞으로 졸졸졸 맑은 소리를 내며 작은 개울이 흐르고 그 곁에 '돌상'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바로 우리가 찾던 '조도래 상'이었어요. 지난해에 왔을 땐 왜 이걸 못 봤는지 몰라요. 하기야 그땐 오로지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어갈 생각만 했기 때문에 길만 찾으면서 갔었지요.
야트막한 언덕 위에 낮은 울타리를 쳐놓고 금줄까지 둘러놓은걸 보니, 마을 사람들이 이 '돌상'에 꽤나 마음을 쓰는 듯했어요. 모양을 보아하니, 눈은 위로 번쩍 치켜뜬 모습이고 뭐가 그리 좋은지 입이 귀에 걸릴 만큼 헤벌쭉 웃고 있는데, 눈매나 입 모양이 매우 재미있게 생겼어요. 또 조선시대에 세운 돌상인데도 조금 거뭇하기만 할 뿐 윤곽이 매우 또렷했답니다.
그 옛날 '조도래'라는 떠돌이 사내가 이 마을에 들어와 살았는데, 인심 좋고 산세까지 좋다 하여 나중에 죽으면서 "내가 이 마을에 은혜 갚을 길이 없으니, 죽으면 이 마을에 수호신이 되겠다"고 다짐을 했대요. 그 뒤 마을 사람들이 돌로 '조도래 상'을 만들어주고 해마다 '동제'를 지냈다고 합니다. 또 조도래가 혼인을 하지 못하고 죽었다고 마주 보이는 건너편 남쪽 언덕에다가 '처녀상'을 하나 더 만들어 서로 혼인을 시켜주었다는 얘기가 이어져 내려온답니다.
처녀 총각 마주보며 못 다한 사랑 나눌까?
총각상을 둘러보면서 '처녀상'은 또 어디에 있을까? 하고 찾았는데, 저 건너 언덕 위에 새로 지은 듯한 작은 기와집이 눈에 띄었어요. 이번에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처녀상'을 찾아갑니다. 죽은 조도래와 혼인시키려고 만들었다는 처녀 돌상은 이렇게 따로 집까지 지어준 걸 보니 퍽 남달랐어요. 아뿔싸! 그런데 문이 잠겼네요. 이걸 어쩌지?
"이 마을 이장님 댁을 찾아가보자!"
"그래야겠네. 저기 사람들한테 가서 물어보자."마을 사람한테 물어 찾아간 집에서 도중리 이장님(최형우씨(57))을 만났지요. 우리가 '처녀상'을 보고 싶다고 하니까 열쇠 꾸러미를 가지고 와서 문을 열어주었어요. 수줍은 듯 다소곳하게 서 있는 모습인데, 한눈에 봐도 '처녀'라는 걸 알 수 있겠어요. 그런데 누군가 개구쟁이 녀석들 짓인 듯 고운 처녀의 코와 턱밑에 듬성듬성 수염을 그려놨네요.
마을 사람들은 처녀상이 있는 이 집을 '동신각'이라고 한대요. 지난해에 본디 옛날부터 있던 낡은 보호각을 허물고 새로 반듯하게 지었다고 하는데 한낱 돌상이지만, 처녀 총각이 서로 마주보며 있는 걸 보니, 이승에서 못 다한 사랑이라도 나누는 듯 보이기도 했어요.
"이장님, 이 마을에서 돌상에다가 제사를 지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요."
"네. 맞아요. 정월 대보름에 하지요. 그러니까 음력 정월 14일 밤 12시에 동제를 지냅니다."
"우와! 그때 왔더라면 더욱 멋진 구경을 했겠네요."
"그렇지요. 해마다 대보름에 지냅니다."
옛 절터엔 잡풀만 우거지고"참, 이장님 이 마을에 절터가 있다고 하던데요?"
"거 뭐 지금은 대나무 숲밖에 없는데…."
"아 그래요? 어디로 가야하지요?"
"저짝에 저 위에 보면 철탑 보이죠? 그 밑에 움푹 들어간 데 거가 긴데. 근데 거 가봐야 대숲밖에 없는데 뭐할라고…."
"그래도 한 번 가보게요. 여기까지 왔는데…."이장님께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다시 자전거를 타고 일러준 데로 산으로 올라갔어요. 너른 논과 밭 사이로 난 좁은 길인데 울퉁불퉁 자전거 타는 기분도 꽤 재미있네요.
"어! 끊겼다. 길이 없네? 여기가 끝인가?"산골짜기 안까지 들어왔는데 눈앞에 보이는 건 일부러 흙을 잔뜩 파내고 골을 내놨는데 그 사이로 물이 졸졸 흘렀어요. 그리고 그 앞에는 또 다시 산꼭대기로 가는 길을 만들어놨는데, 길가 양쪽에다가 어린 소나무를 심어놓은 걸 보니 아마 새로 길을 내놓은 듯했어요.
"여긴가 보다!"남편이 가리키는 곳을 보니, 왼쪽 곁으로 넓고 평평한 터가 보였어요. 이장님이 말한 대로 대나무 숲이 우거진 곳이에요. 그런데 잡풀이 얼마나 많은지 그 안으로는 들어갈 수가 없었어요. 그저 둘레와는 달리 평평한 땅 모양만으로 옛 절터라는 걸 알 수 있었어요.
아쉬움 하나이 마을에 오기에 앞서 자료를 찾아봤을 때, 도중리 절터에는 오래된 돌탑 하나가 있다고 했는데, 워낙 풀이 많이 자란데다가 안으로 들어가지 못해서 탑은 볼 수가 없었어요.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산에서 내려와 다시 마을 어귀에 다다를 쯤, 어르신 한 분이 계시기에 물었어요.
"어르신 저기 위에 절터에 탑이 하나 있다고 하던데요…."
"그 탑 여기 없어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어디 절에서 보관한다고 보냈다고 하던데…. 그라고 나머지 부서진 탑은 저짝 동신각 뒤에 가보믄 있어요."엥? 이게 무슨 소리? 탑은 어떤 절로 보냈다고 하고, 나머지 부서진 것들은 동신각 뒤에 있다니요? 우리는 다시 아까 둘러봤던 동신각으로 가봤어요. 아까도 사진을 찍는다고 그 뒤쪽도 살펴봤는데 그런 건 못 봤거든요. 가서 보니, 한쪽 곁에다가 탑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버려진 듯 널브러져 있었어요.
매우 안타까웠어요. 부서진 채로 있는 탑 조각들을 보니, 탑신, 몸돌, 기단(탑 구조나 명칭을 자세하게는 모르지만) 따위로 보이는 것들이었어요. 이것들이 얼마나 값어치가 있는 것이고, 또 언제쯤 만든 것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든 좀 더 잘 보존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무척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답니다.
봄 햇살을 맞아 따사롭고 매우 아름답던 도중리 마을을 벗어나면서 또 다시 '조도래 상'을 눈여겨보며 내려왔어요.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이 되겠다던 조도래의 넋을 기리며 오랫동안 동제를 지내는 그 마음처럼 옛 절터도, 거기에 있던 탑이나 다른 유물들도 조금 더 잘 보존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