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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춤바람, 주식, 노름에 빠지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문학에 빠졌으니 이 얼마나 건전한 놀음입니까.”

 

  문학 강의라면 기를 쓰고 쫓아다니는 우리(강의 마니아들)를 보고 한 강사가 한 말이다. 최근에 들은 강의만 하더라도 아이들은 놀기 위해 이 세상에 왔다고 외치는  아동문학가 편해문, 수필의 전범이라 불리는 수필가 손광성, 상담전문가로도 이름난 소설가 우애령 등 이다.

 

강의 들으러 다닌다고 꽃구경 갈 겨를이 없다. 식탁은 초라하다. 가족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그들이 들려주는 문학세계를 통해 내 안에는 나도 모르게 시심이 꿈틀거린다. 언젠가는 무르익어 박차고 나올 것 같은 예감이 든다. 강의를 듣는 횟수가 거듭, 거듭될수록.

 

  내 문학의 싹을 틔워준 고마운 강좌가 있었다. 2000년부터 부천시여성회관이 매월 마지막주 목요일에 열었던 문학나들이다. 신경림, 박완서, 김 훈, 문태준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70여명의 문인이 초대되어 문학의 향기를 듬뿍 뿌리고 갔다. <칼의 노래>를 쓰느라 치아 7개가 빠졌다는 소설가 김훈, “묘사는 문장의 기본이다. 시위 현장을 묘사하느라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을 정도로 치열하게 묘사했다”고 고백한 문태준 시인 등 작가들이 남기고 간 한마디 한마디는 내 어설픈 글을 다듬는데 요긴하게 활용되고 있다.

 

  7년 동안 이어져왔던 소중한 나들이 손님이 올해부터 찾아오지 않았다. 강연 때마다 200여명이 몰려와 문학의 갈증을 풀고 갔는데. 이유는 예산 문제였다. 여성회관의 주 사업은 일자리 창출 등 경제활동이 우선이고 문학 활동은 그 다음이기 때문에 부족한 예산으로  문학 강연에 지출할 수가 없다는 것.

 

  정들었던 문학나들이와의 이별에 가슴앓이를 하고 있던 중 살랑살랑  봄바람을 타고 날아온 반가운 소식, 문학나들이가 부활된다는 것이었다. 이 나들이를 살려달라는 주부들의 성화에 한국작가회의 부천지부(지부장 강정규)가 발 벗고 나선 결과 다시 문이 열렸다.

 

조연호 시인  부천 복사골 문화센터 문화사랑방에서 열린 목요문학나들이 4월 초대손님으로 나온 조연호 시인은 현대시를 읽는 방법을 주제로  2시간 동안 강의했다.
조연호 시인 부천 복사골 문화센터 문화사랑방에서 열린 목요문학나들이 4월 초대손님으로 나온 조연호 시인은 현대시를 읽는 방법을 주제로 2시간 동안 강의했다. ⓒ 최정애

4월의 초대 손님으로 음악과 소리에 관한 에세이 ‘행복한 난청’을 펴내 제4의 문학 장르라 평가받고 있는 조연호(39) 시인이 나왔다. 한 갈래로 묶은 긴 머리를 모자로 감싸고  등산화에다 배낭을 메고 등장한 그를 여자냐고 묻는 사람도 있었다. 조 시인은 남자다.

 

  199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화려하게 등단한  그의 첫 시집은 <죽음에 이르는 계절>(천년의 시작)이었다. 제목부터가 범상치 않다. 문단에서는 그를 난해한 시를 생산하는 대표주자로 꼽고 있다. 10년간 공무원 생활을 하다 최초 문학 전문 인터넷 라디오 방송  ‘문장의 소리’(www.munjang.or.kr)에서 작가 겸 프로듀스로 변신한 그가 말문을 열었다. 감독, 작곡, 배우로도 활동했다는 조 시인은 현대시를 읽는 방법과 시 작법에 대한 견해를  2시간 동안 털어놨다.

 

  “시인은 오로지 시집으로 모든 것을 말합니다. 시집이라는 규명된 시스템을 통해  가치와 명분을 나타내지요. 저의 경우 첫 시집에서 가족, 애증 같은 것들을 너무 많이 드러냈어요. 틀이 안 잡혔다고 할까요. 이제는 아픔의 편린에서 벗어나 좀 더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시를 쓰고 싶습니다.”

 

  시는 어느 순간에 딱 써 지는 장르가 아니라 영감과 시상이 중요하다는 그는 불교에서  말하는 수행의 자세를 주문했다. 끊임없이 갈고 닦는 수행의 길이 문학의 왕도란다. 소설은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어느 정도 결과물이 나오지만 시는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있어도 입가에 맴돌기만 할뿐 적확한 시어가 떠오르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것. 모든 문학이 다 그렇겠지만 시는 유독 목숨을 걸고 매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젊은 시인들의 시를 보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모르는 예가 많습니다. 너와 나가 어우러지기도 하고 주체가 객체가 되었다가 객체가 주체로 바뀌고 modernity(현대성)와  reality(사실성)가 혼재된 장르가 쏟아집니다. 이처럼 현대시가 객관적인 패턴이 없어 이해하기가 힘들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시는 의미 자체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뉘앙스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있는데  정답은 없는 것 같아요. 의미를 따지지 말고 시를 느끼고 즐기고 음미하는 정도로 해석했으면 합니다.”

 

  한국근대문학사가 낳은 불세출의 작가로 불리는 이상은 1934년에 오감도라는 파격적인 시를 발표했다. 19세기 후반의 프랑스 작가 보들레르 또한 악의 꽃이란 시를 내놓자 퇴폐적이고 난해하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러나 요즘은 그 시를 두고 초현실주의, 현대시의 지평을 연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렇듯 시는 의미를 떠나 독자가 읽고 아름다움을 느끼고 행복해지면 된다고 풀이했다. 또 초대된  작가들에게 영감을 얻고  내 것으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과거 시인들은 넓이를 생각한다면 요즘 시인들은 깊이 속으로 들어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타인의 영향을 받지 않고 튼실한 싹을 틔우고 있지요. 심지가 장난이 아닙니다. 걷잡을 수 없습니다. 타협하지 않은 굳은 심지가 깊이 있는 시를 낳는 것 같습니다."

 

  심지에 불을 붙이지 않으면 시를 쓸 수 없다는 조 시인 또한 그런 시인임에 틀림없다. 중앙일보 손민호 기자는 “조연호를 읽다보면 시인 황병승이 떠오른다. 한 편의 시에서 시적 주체가 ‘나’에서 ‘너’또는 ‘그’로 수시로 변하는, 그로 인한 서사의 혼란을 도발하는 황병승의 작업과 하나의 완결된 서사가 축출되지 않는 조연호의 작품세계는 비슷한 구석이 있다”고  그가 연재하는 문학터치 지면에서  밝혔다.

 

  차림새가 연기자 풍을 풍기는 그는  “공직을 떠나 연기도 해보았습니다. 걸음걸이 연습만 한 달 넘게 했지요. 연극영화과는 괜히 있는 게 아니더라구요. 정석대로 배워야겠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연기는 다시 안 할 겁니다”라며 죽기 전에 제임스 조이스(아일랜드 소설가)의<율리시스>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자연과학, 철학, 인문학, 음악, 종교 등 다방면의 책을 섭렵하는 작가로 알려진 그가 품은 꿈이 꼭 이루어지기 바란다. 문학에 빠진 사람들의 꿈이기도 하다.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부천 복사골문화센터  2층 문화 사랑방에서 열리는 문학나들이  5월의 초대 손님은  변해명 수필가다. 


#조연호 시인#행복한 난청#목요문학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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