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 신문에서 새 정부의 교육정책에 발맞춰 '지방 교육특구'랍시고 여러 지역을 발표해 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교육 '특구'라는 곳의 기준이 학생의 수업 만족도나 교사 수업의 질이 아니고 '서울대 합격자 수'와 '주변 학원가의 규모'였습니다(J일보 3월 4일자).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언론은 연일 특목고를 '명문대 입시 기관으로 전락' '사교육 광풍의 진원지'라 비판하지만, 그 전에 학교를 명문대 합격생 수로 평가하는 언론과 사회가 비판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일선 학교에서는 학생의 목표를 밀어주기 보다는 서울대 낮은 학과라도 지원시켜 '서울대 합격자 수'를 늘리는 일도 종종 있습니다. 독일어 시간에 선생님께서 독일은 우리나라와 같이 대학에 서열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각 분야별로 최고의 대학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대학 이름 자체가 '모든 분야'에서의 최고를 상징하는 현실이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최근 0교시, 우열반 편성, 야자 보충 자율화라는 이른바 4·15교육정책으로 전국이 들썩입니다. 이는 매우 파격적인 정책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정책입니다. 전국 대부분의 학교가 이미 이 정책을 따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동안 중앙 정부의 규제로 조금은 통제해 왔던 규제를 완전히 풀어버린다면 어떻게 될까요?
0교시나 야자 보충은 수업의 효과보다는 학생들을 점점 더 옭아매어 힘들게 할 뿐입니다. 수면 시간이 부족해 아침 자습이나 수업시간에 조는 학생이 교실의 절반을 차지할 겁니다. 아침밥도 못 먹는 날이 허다할 것이며, 하루 종일 학교에서 지내며 많은 학생들이 지칠 것입니다.
또 효과가 없으면 우수한 학생들만, 직접적으로 말하면 '좋은 대학 보낼 만한' 학생들만 0교시나 야자 보충에 동참시킬 것이 뻔합니다. 그것은 평등한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기본법에 위배되며 우리 헌법에서 명시한 교육권과 학생들의 학습권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보충수업에 학원 강사를 동참시키는 것은 학교 안에서부터 공교육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에 목적을 둔 공교육마저도 단지 입시를 위한 수단에 그치게 될 것이 분명합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보충수업 역시 우등반이냐 열등반이냐에 따라 다르지만 결코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이루어집니다. 여기에 학원 강사까지 투입되면 오르는 사교육비와 더불어 비싸지는 공교육비 걱정까지 해야 할 것입니다. 정부는 공교육의 본 목적을 살려 정책을 추진했으면 합니다.
또 우열반 편성은 수준별 이동수업을 넘어 학생들에게 너는 상, 너는 중, 너는 하 이렇게 이름을 매기게 됩니다. 인격을 형성하는 학창시절부터 철수는 열등반, 영희는 우등반으로 나뉘게 되면 사회에 나가서의 그 격차가 더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합니다. 학교는 대학 합격자들을 자랑스럽게 펼침막에 내걸 수 있을 것이고, 사회는 어릴 적부터 '길러진' 핵심인재 소수의 손에 의해 아주 효율적으로 굴러갈 것입니다. 하지만 그 길의 끝에는 20 대 80을 지나 1 대 99로 달리는 대한민국 사회가 자리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기업인 출신 대통령'이셔서 인지 모든 정책에 '경쟁'을 중시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학교는 기업과 다릅니다. 교육 특구를 지정하고 학교에 자율화를 준다고 해서 학교 교육이 발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남보다 더'라는 심리가 발동해 학생들은 점점 '시험 보는 기계'가 되어갈 겁니다. 사교육은 더욱 활개를 칠 것이며, 학교 선생님들의 교권은 갈수록 땅에 떨어질 것입니다. 차라리, 학교에 효율적인 경제논리를 대입하기 전에 교육 선진국이라 이르는 여러 나라들의 교육제도를 우리나라에 부분적으로 적용해 보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정부는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 교육정책을 추진하기 전에 잠깐 뒤를 돌아보며 학교 교육이 안에서부터 발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모든 것이 자진모리장단을 타고 흘러가는 21세기에 백년지대계라는 교육 정책은 진양조에 맞추어 점진적이고도 균형적인 발전을 이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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