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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에서의 세 오누이 작년 5월 가족여행시 순천만에서 찍은 세오누이(막내, 첫째, 둘째)
▲ 순천만에서의 세 오누이 작년 5월 가족여행시 순천만에서 찍은 세오누이(막내, 첫째, 둘째)
ⓒ 강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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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아빠, 있잖아요!"

그러니까 지난주 어느 저녁, 초등학교 4학년인 큰 녀석이 어렵사리 말을 꺼냈습니다. 무슨 얘기인데 이렇게 조심스럽게 말을 꺼낼까 의아스러웠습니다.

"아마 엄마, 아빠가 들으면 안 된다고 할 것 같은데, 여름방학 때 체육관에서 미국에 간대요. 저도 갈 수 있어요?"

녀석이 다니는 태권도 체육관에서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미국으로 연수를 가는 모양이었습니다. 여기에 자기도 갈 수 있게 엄마, 아빠가 비용을 부담해 줄 수 있는지를 물어보는 것이었습니다.

첫째와 둘째 모두 "미국 연수 가고 싶어요"

솔직히 요즘 애들 셋의 육아비용이 너무나 부담스러운 상황입니다. 그래서 몇 번 녀석들에게 우리가 경제적으로 그리 여유롭지 않음을 솔직하게 얘기해 줬는데, 녀석도 아마 그런 것이 마음에 걸렸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그런 사정을 생각해서 막무가내로 보내달라고 떼를 쓰지 않는 녀석이 너무나 대견스럽고 고마웠습니다.

그 얘기를 듣고는 '분명 비용이 만만치 않을 텐데'라는 생각과 함께 가슴이 턱 막혀왔습니다. 하지만 녀석의 기대를 단번에 꺾어 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라 선뜻 안 된다는 대답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초등학교 2학년인 둘째 녀석도 그 얘기를 듣고는 자신도 그 대상이라는 것을 넌지시 알려왔습니다. 이번 미국 연수 대상이 품띠 이상인데, 이번달 초에 국기원에 가서 품띠 승급심사를 받았던 둘째 녀석 자신도 그 대상에 포함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어쨌든 겉으로는 웃으면서 가능 여부를 명확하게 대답하지 않은 채 그렇게 흐지부지 지나갔습니다.

15박 16일에 317만원, 제 한달 월급입니다

그리고는 다음날 저녁. 퇴근해서 집으로 갔더니 아내가 체육관에서 미국 연수 안내문이 왔다고, 그것을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우선 무엇보다 비용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15박 16일 일정에 비용이 자그만치 317만원. 물론 여권과 비자 발급 비용은 제외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세부 프로그램을 보니, 그곳 아이들과 함께 하는 태권도 프로그램, 며칠간의 골프 연수, 그리고 디즈니랜드 등 관광지 방문을 한다고 합니다. 둘째는 별다른 말이 없고, 큰 녀석이 다시 재차 물어왔습니다.

"아빠, 저 갈 수 있어요?"

무척이나 가고 싶어하는 눈치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당연히 불가능한 얘기인데 이를 어떻게 얘기해 줘야 하나 고민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녀석이 얘기하자마자 바로 안 된다고 대답하기가 그럴 것 같아 녀석에게 대충의 분위기를 물어 보았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많이 간대?"
"아직 모르겠어요."

그러나 녀석의 기대를 꺾어 버리는 것은 안 좋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가능 여부를 빨리 알려줄 필요도 있겠다는 생각에 녀석에게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했습니다.

"현아, 이 만큼의 돈이면 아빠가 회사에서 한달 동안 열심히 일해서 받는 월급이야. 그러니 만약 네가 간다면 한 달 동안 우리 식구는 아무 것도 먹을 수도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되거든."

여기까지 얘기하고, 녀석을 살펴보니 분명 실망의 표정이 역력했습니다. 심지어는 눈까지 약간 충혈되더군요.

"그래서 아빠 생각에는 우리 현이가 어른이 되어서 돈을 많이 번 다음에 엄마, 아빠랑 같이 가면 더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약간은 장난 섞인 분위기로 말했지만, 아마도 녀석에게는 가혹한 대답임이 분명했습니다. 녀석은 '그래도 가고 싶은데'라고 나즈막이 혼자말을 하면서 마지못해 쓴웃음을 지었습니다.

아, 그 때 아빠로서의 심정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습니다. 자식이 그토록 하고 싶어하는 것을, 다른 것도 아닌 바로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안 된다고 해야 하니….

아들아 미안하다

강원도 남애항에서의 세 오누이 작년 12월 남애항. 뒤로 마징가Z 모양의 바위가 인상적입니다.
▲ 강원도 남애항에서의 세 오누이 작년 12월 남애항. 뒤로 마징가Z 모양의 바위가 인상적입니다.
ⓒ 강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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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을 이해했는지 녀석은 더 이상 얘기를 꺼내거나 막무가내로 조르지 않았습니다. 둘째 녀석도 애초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해서 였는지 얘기를 꺼내지 않았습니다. 이런 녀석들이 어찌나 고마운지 몰랐습니다. 나중에 여름방학이 되어서 주위 친구들은 미국 간다고 자랑하고 실제로 그들이 떠나는 모습을 보게 되면 분명 녀석들은 한번 더 크게 실망하게 되겠죠?

원하는 모든 것을 얻으면서 부족함 없이 자라는 것보다 조금은 부족한 듯해야 바람직한 어른으로 자라날 수 있다는 게 제 기본 생각이고, 이 생각으로 제 자신을 달래도 보았지만 그래도 녀석들에게 미안한 감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덧붙이는 글 | 정말 애들 사교육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너무나 큽니다. 정부 당국자들이 이런 서민들의 심정을 잘 헤아려 올바른 정책을 시행해 주면 좋으련만, 지금 하는 꼬라지를 보면 영 아니니 정말 걱정입니다.



#세오누이#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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