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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네티즌이 중심이 된 '이명박 탄핵을 위한 범국민운동본부' 주최로 2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한-미 쇠고기 협상을 규탄하는 촛불문화제에 참가자들이 이명박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우리 때보다 훨씬 재밌네요. 즐기면서 할 말 다 하잖아요."

지난 3일 밤 서울 청계천에서 열린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에 참석한 김경민(44)씨의 소감이다. 이른바 '386세대'에 속하는 김씨는 두 딸 연재(8)·연수(6), 그리고 부인과 함께 밤 9시까지 현장을 지켰다. 김씨의 얼굴에는 흐뭇한 미소가 퍼졌다.

이날 촛불집회는 김씨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의 집회·시위와는 확연히 달랐다. 굳이 멀리 80년대까지 갈 필요도 없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불러온 촛불집회는 우리가 그동안 봐왔고, 참석해왔던 집회·시위와는 여러 면에서 달랐다.

우선 2만여 집회 참석자 중 70%가 중고등학교 학생이었고, 또 이 중 70% 이상이 여학생이었다. 이들은 '단결' '투쟁'이라 적힌 조끼나 머리띠를 두르지 않았다. 역시 "단결!" "투쟁!" 같은 집회의 공식적인 구호도 외치지 않았다. 그래서 심각하고 비장한 표정으로 주먹 불끈 쥐고 하늘로 팔을 쭉쭉 뻗을 필요도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어른들의 집회에서 "사천만 민중의 영원한 애국가"라는 수식어로 소개되고 일제히 합창되는 <임을 위한 행진곡>도 울려 퍼지지 않았다.

대신 이들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은 각기 다른 모양의 교복을 입고 나왔다. 머리 모양도 제각각이었다. 심각한 표정으로 두 주먹 불끈 쥐고 "투쟁"을 외치지 않는 대신, 한 손엔 촛불을 들고 청와대를 향해 유쾌하게 웃으며 "미친 소 너나 먹어!"라고 외쳤다.

<임을 위한 행진곡>이 사라진 자리는 윤도현이 록 버전으로 부른 <애국가>와 크라잉넛의 <오 필승 코리아>가 차지했다. 연단에 오른 학생은 랩을 불렀고, 많은 학생들은 그 리듬에 맞춰 촛불을 흔들었다. 목소리 우렁찬 사회자가 없어도 2만 명은 질서정연하게 자리를 지켰고, 자유발언을 하는 또래의 주장을 즐겁고 진지하게 경청했다.

여기서 의문이 하나 생긴다. 20대의 보수화가 심심치 않게 논의되는 요즘, 어떻게 10대들은 광장과 거리에 나서게 된 것일까.

"우린 이명박 대통령 뽑지도 않았는데, 최대 피해자"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우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을 가득 메우고 저마다 촛불을 들고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정책 철회를 촉구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유성호
아직 속시원한 진단은 나오지 않고 있다. 몇몇 전문가들은 "좀 더 지켜보자"는 견해다. 당일 촛불집회를 진행한 백성균 '미친소닷넷' 운영자는 "나도 중고교 여학생들이 많이 참석해 놀랐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의문의 실마리는 학생들 입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 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시달렸나. 영어몰입교육이 나오더니, 입시 자율화가 나오고, 0교시 부활에 우열반 편성, 일제고사 부활···. 현재 이명박 정부의 최대 피해자는 우리 학생들이다."

경복여고 3학년에 다니는 김아무개양의 말이다. 김양의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김양은 "어른들은 자기 먹고 싶은 것 선택해서 먹을 수 있지만, 우리 학생에게 급식 선택권이 없다"며 "투표권이 없는 우리들은 이명박 대통령을 뽑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가장 큰 피해를 입어야 하느냐"고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인 서수정양도 "수능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명박 대통령으로 인한 나라 걱정 때문에 공부가 안 된다"며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나라 걱정 때문에 밤을 잠을 못 잔다"고 말했다.

이어 서양은 "오늘은 또 이명박 대통령이 무슨 정책을 들고 나올 지 하루하루가 조마조마하다"고 밝혔다.

이와 같이 많은 학생들은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이 학생들의 불만을 증폭시켰다고 밝히고 있다. 그동안 누적된 불만과 피곤함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으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또 많은 여학생들은 자신들이 남성들보다 먹을거리에 민감하기 때문에 더 많이 분노하는 것 같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10대의 걱정 "내일은 이명박 대통령이 무얼 발표할지..."

부천에서 올라온 중학교 3학년 최선화양은 "학교에서 보면 여학생들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많이 분노하고 걱정하고 있다"며 "부모님과 학교 눈치가 아니라면 더 많은 학생들이 촛불집회에 참석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예술고교에 다닌다는 1학년 남학생 3명은 "문제의 쇠고기 성분이 화장품, 생리대에도 들어 있다는 말 때문에, 여학생들의 분노가 훨씬 큰 것 같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 방원중학교 1학년 김소연·김희지·문채영·신가영양은 첫 집회 참석에 대한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이들은 "다른 많은 학생들과 함께 소리 지르고 노래 부르니까 신난다"며 "거리에서 이렇게 외치니 시원하고 통쾌한 느낌이 든다"고 밝혔다.

이렇게 학생들은 거리의 외침이 주는 쾌감과 생애 첫 연대감에 가슴 벅차했다. 이런 학생들을 지켜보는 20대 이상의 어른들도 흡족해 했다.

대학교 3학년 여승주(22)씨는 "20대의 투표율이 낮고, 현실 문제에 관심이 없는 탓에 '20대의 보수화'를 많이 이야기하는 상황인데, 10대들이 나서주니 기특하다"며 "이번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가 다시 젊은층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이찬형(40)씨도 "학생들이 뭘 알겠나 싶었는데, 우리와 달리 이렇게 자유롭게 자기 의사를 당당하게 밝히는 걸 보니 기분이 좋기도 하고 어른인 내가 부끄럽기도 하다"고 밝혔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전면 개방을 반대하는 학생과 시민들이 3일 저녁 서울 청계광장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고 있다. ⓒ 권우성

"왜 우리만 고생하나, 이제 어른들도 참여하라"

3일 촛불집회를 마친 많은 학생들은 "우리가 먼저 판을 깔았으니 이제 어른들도 참여해 달라"고 당부했다. 촛불집회는 6일 저녁은 물론이고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진희 서울지방경찰청장은 5일 기자간담회에서 "만약 촛불문화제 주최 측이 정치적 구호나 발언을 하거나, 참가자들이 이에 동조해서 구호를 외치거나 피켓을 흔들거나 하면 불법 정치집회로 규정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 경찰은 3일 집회에서도 "학생들은 지금 밤늦은 시간에 불법 집회를 하고 있으니 집으로 돌아가라"고 몇 차례 경고 방송을 했다.

이에 여학생들은 야유를 던지며 "경찰 아저씨, 우리 학교에서 만날 밤 10시·11시에 집에 가거든요!"라며 "0교시 부활하고 심야자율학습을 허용한 게 누군데 이제 와서 밤늦은 시간 운운 하냐"고 어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경찰의 대응과 압박은 더욱 강해질 것이다. 조중동 등 보수신문은 벌써 사설 등을 동원해 좌파세력 배후 조종설을 유포하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한 학생은 이런 말을 했다. 

"우리는 투표권도 없어서 누구를 선택한 적도 없는데, 왜 우리만 고생해야 하죠?"


#미국산 쇠고기#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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