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젤름 키퍼(Anselm Kiefer 1945~)는 신표현주의의 거장으로 독일현대미술에서 게르하르트 리히터(1932~)와 함께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스타급 현존작가다. 그의 '양치식물의 비밀'전이 국내에서 유일하게 두 번이나 그의 전시를 기획했던 국제갤러리에서 오는 5월 24일까지 열린다.
일단 그의 작품을 보면 기존그림에 대한 생각이나 고정관념을 확 바꾼다. 먼저 그림의 장대한 스케일에서 압도당하고 미술이 가지고 있는 보이지 않는 힘에 전율하게 된다. 하지만 유럽에서 주로 활동해서 그런지 우리에게는 덜 알려진 편이다.
신(神)을 버리고 숲으로 가다
그는 1945년 독일 도나우슁겐(Donauschingen)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는 성당에 다녔고 가톨릭교회의 영향을 상당히 받았다. 그래서 성직자의 길도 생각할 수 있었지만, 결국 예술가의 길로 들어선다.
화가가 되는데 굳이 미술공부가 필요없다고 생각했는지 처음엔 프라이부르크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20대 중반부터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 등에서 미술을 전공한다. 이 길을 택했다는 것은 우상화된 신(神)을 버리고 자연의 숲으로 들어간 셈이라 할 수 있다.
독일통일 후인 1993년부터는 독일을 떠나 프랑스의 작은 마을 바르자크(Barjac)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매년 여러 나라에서 수차례의 개인전을 열고 있다. 조국을 떠나 산다는 건 마음에 고민이 많다는 증거다. 이는 조국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거리를 두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한 것이리라. 그의 미술은 그래서 더욱 독일적이다.
철학과 사상이 풍부한 나라의 후예답게 그는 조형예술의 요소와 함께 역사와 신화, 철학과 종교 등 인문학의 전통에 서 있다. 위 '무제'에서 볼 수 있는 납으로 된 책은 바로 그런 문명사회의 상징이다. 그러기에 사물의 본질과 역사의 진실을 제대로 꿰뚫어보려고 한다.
'발더의 노래', 평화를 염원하는 시
'발더의 노래(2007)'는 구성은 듬성듬성 되어 있고 흙과 풀과 점토가 아무렇게나 뒤범벅이 된 작품으로 황무지에 핀 들꽃 같은 평화에 대한 염원과 갈구를 노래한 것 같다. 하긴 북유럽신화에서 '발더'는 빛, 순수, 기쁨, 미(美), 순결, 화해를 뜻하는 신이기도 하다.
표면은 황토처럼 누렇고 일부 회백색의 재가 뿌려져 있다. 그림 아래에는 아예 소녀에게 키스를 해도 좋다는 전설이 담긴 겨우살이 나뭇가지를 통째로 붙인 것을 보면 신화 속에 담긴 의미가 고스란히 옮겼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의 작품은 전반적으로 이렇게 황량하고 거친 가운데 수수께끼 같은 형상과 기호와 상징물로 그득하다. 재료는 사진, 점토, 납, 재, 셸락(shellac 나무를 칠을 때 그 표면을 더 번쩍거리게 하기 위해서 바르는 천연니스), 지푸라기, 헝겊, 고사리, 해바라기, 건조시킨 식물 등이 쓰여 회화과 조각의 경계를 넘어 그런 물성이 주는 향연이 이채롭다.
전쟁의 공포가 남긴 상흔
그의 작품은 다채롭다. 최근에는 대형콘크리트 작품도 많다. 2006년 미국 LA 가고시언 갤러리 전시회에서 보듯 이불처럼 널브려져 있다. 도시가 폭격을 받은 후 폐허화된 모습이 연상된다. 이는 또한 나치정권에 의해 난도질당한 유럽을 가시화하고 이 망각된 전쟁을 고발하는 것일 수도 있다.
이런 낯설고 황당한 설치미술의 근저에는 패전, 분단, 재통일 등 독일역사에서 겪은 작가의 격렬한 공포와 불안이 무의식적으로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에게 이는 오히려 기존개념을 넘어서는 예술적 상상의 폭을 넓히는 촉매제가 되나 보다. 이런 콘크리트도 기적 같이 경이로운 풍경이 된다.
생명의 기원을 떠올리는 양치식물
위 작품의 제목은 그가 좋아하는 첼란(Paul Chelan)의 시에서 따온 것이다. 가장 오래된 식물인 양치식물을 20개의 패널로 만든 것은 생명의 순환을 뜻한다. 키퍼는 실제로 19세기 식물학에 심취하기도 했다. 약초일 수도 독초일 수도 있는 풀과 꽃에 대한 연구와 관찰이 이런 대작을 낳는 원동력이 아닌가 싶다.
1970년대 대표작 '숲속의 인간(Mann im Wald)'도 그렇지만 이 작품은 생명의 기원을 생각하게 한다. 또한 독일의 숲에서 자라는 고사리 등 여러 종류의 야치식물을 연상시킨다. 기존의 틀을 거부하는 이런 남다른 발상은 일종의 해체작업으로 서구의 이원론과 20세기 현대미술을 완전히 뒤집었다.
이런 생각은 그의 스승인 독일의 뒤샹이라고도 불리는 요셉 보이스(1921~1986)의 영향이 클 것이다. 그는 스승을 "나를 맨 처음으로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격려해준 사람"이라고 회고한다. 스승과 제자의 어이지는 두 거장이 극적 만남이 핵분열을 일으켜 독일미술을 단번에 세계 미술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전쟁의 아픔을 씻어내는 진혼가
위와는 다른 이 '발더의 노래'는 부식된 전쟁의 아픔을 씻어내려는 진혼가를 시적으로 표현한 추상화 같다. 양끝에 나무를 파멸과 창조의 양면성을 가진 불로 본다면 인간을 멸망으로도 부흥으로도 이끌 수 있다는 뜻이 된다. 키퍼의 주제는 이렇게 천당과 지옥을 오간다.
이 그림은 연금술사가 자연의 원소에서 금을 제련하듯 작가는 이 메마른 땅에 불을 넣어 치유와 평화의 기운을 일으키려는 폐허의 미학이 아닌가 싶다. 그의 작품에서 흔히 회색이 주조를 이루는데, 이는 삶에 대한 비극미의 상징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이 알 수 없는 애매모호함이 농후한 것도 또한 사실이다.
하긴 그는 작년 영국 <타임스>지와 인터뷰에서 "나는 맨 끝자리에 있는 걸 좋아한다. 예술이란 언제나 낭떠러지에 놓여있다. 그리기에 내게 예술은 장식이 아니다"라고 말했지만, 위작품은 바로 그렇게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는 곳에서 시도한 모험의 결과물인지 모른다.
황량한 들판에서 건져 올린 황홀함
'땅위에 하늘'은 이번 전에서 가장 큰 감동을 주고 가슴을 울리게 하는 작품이다. 안젤름 키퍼가 왜 세계적 스타작가인지 알 듯하다. 도무지 도록으로는 맛볼 수 없는 작품의 웅장함과 숭고함, 그리고 거칠지만 폭발적인 미술의 힘을 맛보게 한다.
강렬한 표현주의 기법이 황량한 들판과 삭막한 길 위에 이렇게 황홀한 분위기를 연출할 수 있다니 실로 놀랍다. 쓰레기 잔해 같이 더덕더덕 붙은 하찮은 가지가 가슴에 닿는 순간 관객들은 전체가 하나의 천체로 보이고, 대지로 뻗은 길이 하늘에 핀 은하수처럼 훤히 열리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든다.
예언자의 묵시록 같은 별자리
이제 끝으로 '태어나지 않은 자들'을 보자. 제목이 묵시문학의 한 구절 같아 흥미롭다. 한 시대의 예언자가 받은 영감을 캔버스에 고스란히 옮긴 것 같다. 이런 광활함 속에서 엄숙하면서도 명상적은 분위기를 주는 것은 독일의 낭만주의 미술의 영향인 듯싶다.
하여간 안젤름 키퍼는 이 연작을 계속 발표하고 있다. 제목처럼 화산과 같은 표면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들'이 아우성치는 것 같다. 신령한 기운이 화면 주변을 맴돌면서 바다의 모래처럼 하늘의 별처럼 반짝인다. 그의 그림은 이렇게 어떤 대상만이 아닌 작가가 선망하는 자유로운 이상세계를 거침없이 펼쳐 보인다.
덧붙이는 글 | 국제갤러리 종로구 소격동 62. 경복궁 건너편 www.kukjegallery.com 02)733-8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