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 기자 간담회에 임하고 있는 고고학회 회원들의 모습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 기자 간담회에 임하고 있는 고고학회 회원들의 모습 ⓒ 송주민

"(국토해양부) 그 사람들 보고 해보라고 해. 불가능한 것 뻔히 알면서 왜 묻나."

한국고고학회에서 처음으로 정부의 '한반도 대운하' 추진계획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운하사업에 따른 정부의 문화재 조사와 발굴 방안은 한마디로 황당하다는 것.

8일 오전, 서울 정동 세실 레스토랑에서 열린 '문화재 제도개선 방안에 대한 기자 간담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고고학회 회원들은 지난 4월 30일 문화재청이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보고한 '문화재조사제도 개선방안'이 "문화재가 개발의 걸림돌이라는 잘못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한 문화재 파괴행위"라며 목소리를 높이던 중이었다.

올해 안에 GIS 구축 마무리?... "대통령은 GIS가 건설회사인 줄 착각한 것 같다"

규탄 성명을 듣던 황평우 '문화연대' 문화유산위원장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졌다.

"문화재청이 2009년까지 매장문화재 지리정보시스템(GIS) 구축을 마무리 짓겠다고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회의에서 보고했다.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건데 정부 기관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이 잡부를 써서라도 올해 안에 끝내라고 지시했다'고 한다. 그래서 GIS 구축을 올해 안에 마무리하기로 결정했다는데 이게 가능한 것인가?"

황 위원장은 "30년이 걸려도 모자랄 일을 올해 안에 마무리 짓고 지표조사를 생략한다는 것은 나로서는 납득이 안 간다"면서 "운하 추진을 위해 계획된 일 아니냐"며 이 같은 질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청규 한국청동기학회 회장은 "대통령이 설마 그런 말을 했겠는가"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한 뒤, "만약 그런 말을 했다고 한다면 대통령으로서의 상식과 양식을 의심할 만한 수준의 발언"이라며 혀를 찼다.

최병현 숭실대 교수(전 한국고고학회장)도 "대통령의 말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며 "만약 그런 말을 했다면 GIS가 건설회사인 줄 알고 착각했던 것 같다"고 꼬집었다.

"국토해양부의 운하 건설 계획은 어불성설"

 문화재청의 '문화재조사제도 개선방안'을 규탄하며 성명서를 낭독 중인 한국고고학회 이강승 회장
문화재청의 '문화재조사제도 개선방안'을 규탄하며 성명서를 낭독 중인 한국고고학회 이강승 회장 ⓒ 송주민

이어 황 위원장은 두 번째 질문을 던졌다.  

"국토해양부의 한반도 운하 건설 계획을 보면 지표조사 8개월, 발굴조사 3개월이라고 돼 있는데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고고학회 회원들은 한 목소리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냐"라며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못을 박았다.

이청규 회장은 "같은 고고학자라도 다른 전공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며 "청동기시대를 전공한 학자들은 구석기·신석기시대에 대해 잘 모르는 것이 현실인데 하물며 단기간에 교육된 인부들이 몇 개월 만에 조사를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잘라 말했다. 

한편 이날 있었던 고고학회 회원들의 기자간담회에서는 문화재청이 발표한 '문화재조사제도 개선방안'에 대한 강한 성토가 이어졌다. 지난 4월 30일 발표된 정부안에 따르면 ▲문화재조사 지리정보시스템(GIS) 조기 구축 ▲문화재 조사능력 확충 ▲행정처리 절차의 개선 ▲문화재조사관련 규정의 투명·객관화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정부의 '문화재조사제도 개선방안'은 문화재 파괴 행위"

한국고고학회 등 10여개의 고고학회는 성명을 통해 "건설업계의 부담완화와 사회적 비용의 절감이라는 목표에는 우리도 동의하나 이를 빌미로 유적조사를 소홀히 하겠다는 것은 문화재 파괴나 다름없는 야만적인 발상"이라며 "무분별하게 개발만 앞세우는 이명박 정부는 우리 문화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정책을 세워라"고 일갈했다.

문화연대와 운하백지화국민행동도 8일 성명을 통해 "우리는 운하를 추진하려면 철저한 문화재 조사가 전제돼야 하며, 현재 한국은 조사를 책임질 수 있는 인력·예산·시간 모두 턱없이 부족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고 전제한 뒤, "이명박 정부는 제대로 된 정책은커녕 오히려 문화재 파괴를 조장하는 방안을 일방적으로 내놓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의 방침은 운하 개발을 위해 문화재의 희생을 강요하는 역사적 범죄행위"라고 꼬집었다.

'문화재조사제도 개선방안'은 문화재 파괴행위이다!
-한국고고학회 규탄 성명 전문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와 문화재청은 지난 4월 30일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에게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을 보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보고내용은 개선방안이라 하였지만 그 내용을 보면 문화재가 개발의 걸림돌이라는 잘못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 결과적으로 문화재의 파괴를 초래하는 방안과 다름없다.

건설업계의 부담 완화와 사회적 비용의 절감이라는 목표에는 우리 학회도 동의한다. 그러나 그를 빌미로 유적조사를 소홀히 하겠다는 것은 문화재의 파괴나 다름없는 야만적인 발상이다. 매장문화재조사는 개발에 따른 행정 절차이지, 개발을 방해하는 규제사항은 결코 아니다. 매장문화재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문화콘텐츠의 소재가 되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가벼이 다룰 수 없는 절대절명의 자산이다. 행정절차의 미비로 개발공사가 늦어지는 사례도 적지 않은 현실을 도외시하고, 공사가 지연되는 모든 사유를 문화재조사 탓으로 돌리는 것은 바른 시각이 아니다. 매장문화재의 체계적인 조사를 토대로 개발과 문화재보존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진 우리 학회로서는 이를 크게 우려하여, 그 정책기조를 전적으로 수정하기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바이다

개선방안의 하나로 제시한 지리정보시스템의 조기구축은 학회도 환영하는 바이나,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방법은 옳지 않다는 점을 지적하고자 한다. GIS는 그 지역에 소재하고 있는 유적에 관한 정보를 입력하여 개발의 방향을 결정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시스템이지만,  해당지역에 유적이 있는지 없는지를 판단하는 예측시스템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충분한 자료를 바탕으로 GIS가 구축된 지역에 대해서 지표조사를 생략한다는 방안은, 현 시점에서 조사되지 않은 매장문화재는 깡그리 없애도 좋다는 위험한 발상이다. 입회조사라는 궁색한 조치가 매장문화재 보존에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정책을 마련한 이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매장문화재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도 중요한 과정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마치 GIS가 구축되면 매장문화재 분포가 저절로 확인되는 것처럼 인식하고 정책을 결정하는 것은 행정당국의 안일한 자세에서 나온 조치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조사인력의 확충은 학회에서도 매우 심각한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조사인력의 학력·경력과 법인설립의 요건을 완화하는 것은 결코 올바른 방법이 아니다. 매장문화재 발굴은 1회밖에 조사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제시된 대로 자격없는 이들을 보조원으로 대거 활용하여 발굴조사를 실시한다면 유적조사를 포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지금 법인에 소속된 조사원들이 법인을 새로 만들면 그만큼 조사인력이 늘어나는 것처럼 판단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조사원들의 외형적 지위상승만 가져올 뿐, 오히려 현장에서 실제로 일 할 수 있는 유능한 조사원을 잃는 결과를 가져온다. 마치 환자가 갑자기 늘어난다 해서 자격없는 초보자에게 메스를 맡길 수 없는 것과 같이, 무자격 조사원에게 귀중한 문화재발굴조사를 맡길 수 없다. 혹시 경제적인 이익을 염두에 두고 발굴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한다면 이는 졸속한 발굴조사를 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문화재를 제대로 조사하지 못하고 유물캐기 수준의 영리사업으로 전락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최근 당진에서 일어난 유적파괴는 한 개인의 행위로 보기에는 너무 충격적인 사건인 바, 그 배후에는 국가에서 매장문화재를 마치 개발의 걸림돌처럼 경시하는 행정당국의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개발을 앞세워 매장문화재를 경시하는 최근의 일부 행위에 대하여 매우 깊은 우려를 표하는 바이다.

이번에 제시된 매장문화재 조사제도 개선안은 개발중심의 사고방식에 바탕을 두고 있어, 이대로 정책이 시행된다면 매장문화재를 대규모로 파괴하는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매장문화재는 현재를 사는 우리만의 것이 아닌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우리 후손들이 지키고 소중히 해야 할 자산이다. 정부는 전문가집단의 의견을 존중하고 수렴하여 정책을 펴, 개발과 문화재보존을 동시에 이룩하는 품격있는 정부가 되기를 바라면서 우리 학회는 다음과 같이 요구한다.

첫째, 정부는 문화재 조사제도 개선방안을 재검토하여 매장문화재를 파괴하는 비합리적인 독소조항을 폐기하고, 매장문화재보존을 전제로 하는 합리적인 개선방안을 제시하라.

둘째, 현실과 동떨어진 파괴 지향적 정책을 개발하여 국민을 속이고 대통령을 기만한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 위원장과 문화재청장, 그리고 관계 공무원들을 엄중히 문책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무분별하게 개발만 앞세우는 이명박 정부는 우리 문화재를 소중하게 여기는 정책을 세워라.

                                                2008. 5. 8.

전 한국고고학회장  정 징 원    전 한국고고학회장  이 백 규 
전 한국고고학회장  최 병 현    한국고고학회장     이 강 승
강원고고학회장     지 현 병   서울경기고고학회장  이 남 규
영남고고학회장     김 세 기   호남고고학회장      조 현 종
호서고고학회장     차 용 걸
한국신석기학회장   신 숙 정    한국청동기학회장   이 청 규
한국구석기학회장/한국문화재조사연구기관협회장     한 창 균


#문화재조사#한반도 대운하#한국고고학회#GIS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