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이맘 때면 밭을 일구고, 여기저기 씨 뿌리고 모종내느라 바쁠 때입니다. 밭 두럭에 쑥이며, 망초가 수북하게 웃자라는데, 아직 밭고랑도 일구지 못한 채 바라보고만 있자니 지나가는 이웃들 보기가 부끄럽습니다.
'큰집 잔치에 작은 집 돼지 죽는다'고, 옆 산 주인이 큰 공사를 벌이는 바람에 겨우내 어수선했습니다. 골짜기를 메우고 남은 흙을 비탈 밭에 거저 덮어주었습니다. 비탈이 평평해진 것은 고마운데 일을 하기보다 쉬기를 더 자주하니 언제 마무리가 될지 몰라 밭을 일굴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엉거주춤 바라볼 뿐입니다.
몇 해째 일궈온 밭에선 도라지며, 취 싹들이 이제 막 돋으려는데, 난데없이 흙더미에 깔려 생매장을 하게 되니, 그것도 보기 안쓰러운 일입니다. 비탈밭이라 트랙터나 경운기도 들어오지 못해 삽 하나로 일구다가 힘에 붙이면 이내 풀밭이 되던 애물단지라, 평평하게 고르기는 해야 했습니다. 거저 메워 주는 것이니 독촉을 할 수도 없어 그저 처분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언제 다시 흙더미가 덮일지 몰라 풀이 무성해지는 밭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지요.
만약에 제 밭에 난 것만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면, 이렇게 여유롭게 '그렁저렁' 바라보고만 있지는 못할 것입니다. 마을에도 오로지 농사만을 전업으로 하는 이는 한 사람 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파트 경비며, 석축 인부며, 식당 점원에 석재상에 이르기까지 안팎으로 맞벌이를 하느라 농사는 완전히 부업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나마 남아 있는 농토도 사겠다는 이만 나서면 팔아 치우고, 읍내로 나가 노래방이든, 호프집이든 가게를 얻어 장사를 할 생각들입니다. 벌써 마을에선 서너 집이 읍내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러니 내가 농사만 짓고 살고 싶다면 숫제 대꾸도 않습니다. 어이가 없다는 것이지요. 그나마 땅금이라도 좀 세게 받는 수도권이야 땅 팔아 다른 길을 찾아 나선다지만, 내놓는 땅은 많아도 사겠다는 이는 없는 저 남녘의 농촌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짓는 농사가 많다고 하더군요. 논밭을 놀릴 수 없어 기운이 있는 한 농사를 짓는다는 노인들마저 세상 등지고 나면 누가 저 농사를 지을까 벌써부터 걱정이 앞섭니다.
나라라는 것이 자동차 몇 대 팔아먹겠다고 남의 나라 포도며, 쌀이며 사들이다가 급기야 병든 쇠고기까지 사들이지 못해 안달을 부리니 거기에 기댈 엄두도 내지 못합니다. 멀쩡히 지어 오던 과수 농사꾼에게 과일 나무를 베어내면 보상금을 주겠다는 나라입니다. 어려워지는 농사를 일으킬 생각은 꿈에도 없고, 그저 갈아엎으라는 소리나 하고 있으니 누가 농촌에 남아 농사를 지으려 하겠습니까.
세상 물정 모르고 아침이면 논에 나가 허리가 굽어지도록 땡볕에 그을리다가 해 저물면 논도랑에 삽을 씻으며 세월을 보내다 보니, 나이 마흔이 넘어도 장가도 못 든 채 노총각이 되는 게 농촌입니다. 어디에다 하소연을 해 봐야 제 못난 자랑만 하는 셈이니 소주병이나 비우다가 그렇게 날 저물 듯 인생이 저물어 가는 거지요.
물골도 한 해가 다르게 변합니다. 서울에서 멀지 않은 이곳에 그나마 논들이 남아 있는 게 신기합니다. 모내기를 앞두고 물을 가둬 놓은 논에서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바람에 찰랑거립니다. 그런 논을 바라볼 때면 안도의 한숨이 나옵니다. 모를 내던 논이 어느 날 갑자기 흙에 메워져 밭이 됩니다. 밭이 되었다가 집이 들어서고, 공장이 들어섭니다. 고춧대라도 꽂힌 밭은 반갑습니다. 요즘 들어 여기저기 소나무 묘목을 심는 밭이 늘어갑니다. 쌀 대신 솔잎을 갉아 먹고 살 셈인지….
솔잎이 쌓이면 풀들도 자라지 못하여 손이 가질 않는데다 몇 해만 기르면 조경수로 팔 수 있어 농사보다 낫다고 합니다. 아무리 우리나라 사람들이 소나무를 좋아한다지만 이렇게 너나없이 심은 소나무들을 누가 다 사 갈 것인지 벌써 걱정이 됩니다.
원두막 아래 밭 자락을 몇 고랑 파서 급한 대로 우선 고추모부터 심어 봅니다. 심는 김에 참외와 토마토도 심어보고. 남는 자리에는 흙더미에 묻힐지 모를 도라지와 취를 옮겨 심습니다. 또 상추나 아욱을 심어 먹을 텃밭이나 몇 고랑 일구어 둘 참입니다. 아무래도 새로 덮은 흙에서 돌을 고르고, 거름을 내어 새 밭을 만들려면 올 농사는 이렇게 푸성귀나 심어 먹어야 할까 봅니다.
고랑마다 웃자란 풀들을 매어 주노라니, 멀찌감치 뻐꾸기 우는 소리에 먼 산이 아련해집니다. 임금이 손수 모를 내며 권농의 본을 뵈더니, 이제는 농사를 쉬라고 보상금을 내어 주는 시절이 되었습니다. 당장 나라마다 밀이며, 옥수수며, 쌀이 모자라다는 아우성 소리가 들려오는데도 제 나라 농사 일으킬 생각은 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남의 나라 '싸고 질 좋은 쇠고기' 들여올까만 궁리하는 이들이 걱정스럽습니다.
비록 풀투성이 비탈밭일망정 내 가족이 먹을 만큼의 농사를 제 손으로 지을 수 있으니 엉뚱한 일로 걱정거리를 만드는 이가 부럽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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