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 쇠고기 파동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 나이 어린 중학생들부터 고등학생과 주부들에 이르기까지, 광우병 논란은 이제 우리 국민의 화두가 되어버렸다. '광우병'이 생활 속으로 들어와 버린 지금의 상황은 이명박 정부가 한-미 쇠고기 협정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제 곧 30개월 이상의 미국산 소가 쏟아져 들어온다고 한다. 그것도 갈비, 뼈와 내장을 중심으로. 미국 축산당국의 도도한 위세와, 미국에는 말 한마디 못하면서 국민만 단속하려는 정부를 보면 우리 국민은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되었나'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며 청와대에 입성한 이명박 '한국 CEO'의 주장을 보면 한-미 쇠고기 협정도 한국경제 성장을 위한 이명박의 결단인 듯 보인다. 그러나 이번 쇠고기 협정은 원래 수입하지 않기로 한 뼛조각이 발견되어 수입이 전면 중단되었던 미국산 쇠고기의 금수조치를 해제하는 성격이었다.
다만 그 해제가 상식을 뛰어넘는 너무나 전면적이어서 국민이 놀라고 나라가 놀란 것이다. 미국산 쇠고기 개방은 산업 측면에서 보더라도 미국 축산업에는 축복이지만 한국 축산업에는 사형선고라고 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는 어찌하여 망국적 쇠고기 협정에 신들린 듯 서명하였을까? 그것은 바로 이명박 정부가 애타게 기다리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 때문이다.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라는 구호로 집약되는 이명박호의 경제성장 작전은 크게 두 가지인데 그 하나는 '한반도 운하사업'이고 두 번째 큰 작전이 바로 '한-미 FTA'이다.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의 미국 비준을 위해 쇠고기 협정을 체결한 것이니 지금의 광우병 파동도 따지고 보면 한-미 FTA 비준 노력의 결과물이다.
한-미 FTA에 올인하는 이명박
이명박호의 첫 번째 작전인 '한반도 운하사업'은 대선이 한창이던 2007년 내내 이명박 후보를 괴롭혀왔다. 이번 4·9총선에서는 '운하 전도사'라는 이재오 최고위원이 문국현을 상대로 자기 안방인 '은평을'에서 충격의 낙선을 당하고 말았다. 국민의 '운하사업 반대'가 70%를 넘어가는 현 시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운하사업에서 잠시 손을 뗄 수밖에 없다.
결국 '한국 CEO' 이명박에게 남은 것은 한-미 FTA밖에 없다. 민생경제난으로 나라가 휘청이는 지금 신자유주의를 전면화하는 이명박 정부로써는 한-미 FTA 외에 대안을 찾을 수가 없다. 이미 한나라당은 한-미 FTA 비준을 위해 전방위 공세를 펴고 있으며 17대는 힘들어도 18대 국회에서는 국회비준이 관측되는 상황이다.
한-미 FTA는 한국과 미국 간에 맺는 지역적인 특혜무역이다. 협정을 체결하는 대상국들끼리만 서로에게 무관세를 적용하는 경제협정인 것이다. FTA 협정은 WTO에서 추진하던 도하개발어젠다(DDA)가 난관에 봉착하자 그 미봉책으로 추진해 온 경제협정이다. 다시 말해 다자간 통상개방이 어려움을 겪자 양자 간 개방이라도 해보자는 것이 FTA의 취지이다.
정부는 그동안 양자 간 회담이라는 FTA의 성격을 활용하여 '우리가 다른 나라보다 빨리 미국으로 진출해서 세계최대 소비시장인 미국을 장악해야 한국경제가 발전한다'는 논리로 한-미 FTA를 정당화해왔다. 아직 미국의 통상이 세계 각국에 개방되지 않았으므로 한-미 FTA로 미국 정부의 관세를 뚫고 들어가 미국시장을 공략한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작전개요다.
이를 위해 이명박 정부는 농업을 포기하였으며 보건의료 등 공공 서비스 부문의 손해도 감수하고 있다. 오로지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 한국주력산업의 미국시장 점유율을 1%라도 높이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을 보고 있노라면 본선대결격인 한-미 FTA는 쇠고기 협상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심각한 문제점이 있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다윗이 골리앗에게 이길 수 있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국제경제 무대는 나라와 나라의 총체적 역량이 대결하는 장이란 점이다. 한국은 세계 교역규모 10위권의 국가라 하더라도 세계 최대의 경제규모를 갖는 미국에 비한다면 상당히 왜소한 경제규모일 수밖에 없다. 2007년 미국의 국내총생산(GDP)은 1245만5825달러인데 반해 한국은 그 6.3%인 78만7567달러에 불과하였다.
자본주의에서는 규제가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자본이 강한 세력이 경쟁에서 이기게 되어 있다. 자본주의에 대한 '약육강식'이라는 조소 섞인 표현은 그래서 광범위하게 인용되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이라는 이름에서 보듯 FTA는 자유로운 통상 교역을 의미한다. 이 경우 협정체결 초기에는 특정 산업품목에서 한국이 일시적으로 미국에 대해 상대적인 우위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협정체결이 장기화되면 될수록 한국경제는 그 규모가 20배에 달하는 미국경제에 대해 점차로 종속될 수밖에 없다. 그러한 예는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멕시코를 들 수 있다. 게다가 전통적으로 한국정부는 대미협상력이 극히 취약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한-미 FTA는 협상과정에서부터 한국정부의 일방적인 패배로 진행되었다. <한겨레> 2006년 6월 12일 자 기사를 보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FTA 1차 본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는 철저히 관철된 반면 개성공단 제품의 국내산 인정 등 한국 측의 요구는 철저히 외면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규칙없는 싸움에서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기란 하늘의 별 따기보다 어렵다. 더구나 지금의 이명박은 스스로 미국이라는 '골리앗'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하수인'을 자처하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가 한-미 FTA 비준에 나선다면 이는 한국경제의 대미의존적 체질만 크게 높여 놓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심판없는 FTA에서 경제가 살아나나
흔히 협정이란 쌍방이 평등한 조건에서 맺어지는 것이 가장 합리적이다. 제도적으로 보더라도 FTA는 한국과 미국 양자가 체결하는 것인데 이명박 정부의 친미적 성향을 고려하면 과연 FTA를 통해 미국에 한국의 권리를 인정받을 수 있을 지 걱정이다. 최근 이명박 정부의 '쇠고기 협상' 태도를 보면 이 정부가 과연 FTA 체제하에서 한-미 통상무역도 떳떳하게 할 수 있을지 심각한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WTO 체제 하의 도하개발어젠다(DDA)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적 중재라도 요청할 수 있었지만 한-미 FTA는 한-미간 직접 협상이므로 1차적으로 미국 측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에 이명박 정부가 과연 미국을 상대로 적절한 문제제기를 해서 한국의 경제주권을 지킬 수 있겠는가? 국민을 대상으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홍보하느라 목이 쉬어버릴 이명박 정부를 보면 답변은 '매우 부정적'이다.
물론 이러한 한국정부의 대미 무력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있었던 사안이다. 2005년 한-미 FTA 논의가 시작된 시점은 2005년 2월이었다. 당시 미국의 로버트 포트먼 대표는 6월 20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18차 한미재계회의에서 스크린 쿼터 폐지, 미국산 쇠고기 금수 해제, 배기가스 규제완화, 의약품 가격 재조정 금지 등 4가지 선결조건을 제시하였다.
미국은 자신의 요구조건을 일관되게 관철하였다. 2006년 1월 13일에는 농림부 협의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위생조건을 합의 발표하여 사실상 미국산 쇠고기 금수조치를 해제하였으며 1월 16일에는 스크린 쿼터를 종래의 146일에서 73일로 축소 발표하였다. 이 중에서 중요한 사안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한 양보이다.
2006년 1월 19일 반기문 외교통상부 장관과 라이스 미 국무장관은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에 대해 합의하였다. 결국 2007년 4월 2일 타결된 한-미 FTA는 양자 간 협정이라는 약점에 한국정부의 대미의존성이 더해진 결과 누가 보더라도 명백하게 미국 측에 유리한 협정으로 귀결되고 말았다.
하지만 문제는 노무현 정부에 더하여 한미동맹 강화에 올인하며 "협상을 개시하기도 전에 쇠고기를 열어주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성장 중심주의, 대기업 중심주의로 자기 입지를 구축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는 한-미 FTA를 마지막 기회로 보고 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국민을 섬기겠습니다"와 "경제를 살리겠습니다"로 청와대 진출에 성공하였지만 이들이 말 그대로 한-미 FTA과정에서 미국에 맞서 경제주권을 지키기 위해 싸울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한다.
몰락하는 미국경제와 동침하려는 이명박
이명박 정부의 대미의존성이 모두 해결되는 경우라 하더라도 한-미 FTA는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팍스 아메리카나의 퇴조이다. 세계최대의 소비시장이라던 미국경제에 금융시장 위축이라는 설한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2008년 들면서 미국경제가 심상치 않다. 미국의 주택가격 하락과 대출금리상승으로 인해 미국금융계는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대한 부담이 늘어나고 경제의 자금순환은 심각한 경색국면을 맞고 있다. 자금순환 정체가 빚어낸 미국금융계의 부실화는 미국경제를 현재 새로운 국면으로 끌어가고 있다.
미국금융계가 들여온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그 총액이 2006년 말에 1조4000억달러로 전체 모기지 대출(10조4000억달러)의 13.5%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는 미국 증시 시가총액의 7.1%, 전체 개인신용의 11.0%에 해당하는 실로 큰 비중이다. 주택담보대출의 상환이 어려워지자 미국 금융계가 휘청거리기 시작하였다. 부시 행정부의 1000억 달러 경기부양책은 아무런 효과도 없었고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는 미국 내 금리를 5.25%에서 2.0%까지 내렸다.
물론 최근 미국경제가 살아난다는 주장도 없지 않다. 그러나 10% 량 상승하였다는 뉴욕증시는 5월 7일 다시금 1.6%가량 급락하고 말았으며 블룸버그 통신은 서브프라임 주택담보대출을 받은 미국 내 가구 중 절반 정도가 사실상의 파산상태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였다.
시티은행, 메릴린치 등 미국의 유력 투자기관들이 막대한 손실을 당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 베어스턴스가 파산하는 등 소비경제 위주의 미국경제는 현재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그 여파로 세계는 고유가, 곡물가격 상승, 원자재 가격 상승이라는 악재를 연달아 맞고 있어 경제위기는 세계적 차원으로 확산되는 추세이다.
미국 내 투자의 귀재라는 조지 소로스는 <파이낸셜 타임즈>에 낸 기고문에서 "현재의 금융위기는 미 주택시장의 거품으로 촉발됐으며 (미 경제는) 지난 60여 년간 지속해온 슈퍼 호황(super - boom)의 끝점에 와 있다"고 진단하였다.
미국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이명박, 경제대통령 맞나
문제는 미국경제의 심각한 상황을 애써 외면하며 여전히 한-미 FTA만을 외치는 이명박 정부이다. 백번을 양보해서 한국산업의 특정분야가 미국시장을 장악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것도 미국경제가 날로 발전할 경우에나 한국경제에 도움이 될 일이지 지금처럼 금융부실화에 타격을 받는 미국경제라면 시장점유율이 증가하더라도 앞날은 예측할 수 없다.
자기 나라 경제가 어려워진 미국은 한-미 FTA의 문안을 미국에게 가장 유리한 조건으로 전환하기 위해 여러 각도로 방법론을 타산할 것이다. 쇠고기 수입요건이 대폭 완화된 '쇠고기 협정'이 그 대표적 사례이다.
하지만 여전히 이명박은 '한미동맹'을 외치며 신자유주의 경제를 추진하고 있으며 여타의 경제 활로 가능성을 스스로 배제하고 있다. 단적으로 이명박 정부는 북한과 대결구도를 내세우면서 남북관계를 경색시켜 남북협력의 가능성을 스스로 배제시키고 있으며 남북관계 개선을 통한 대륙으로의 진출, 유라시아 횡단철도와 시베리아 자원개발 가능성을 스스로 치단하고 있다.
미국에 할 말도 못해서는 경제대통령이라 할 수 없다. 신자유주의를 전면적으로 수용하여 미국과 재벌들에게만 의존하는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껏 그래 왔듯이 앞으로도 더욱 강한 국민의 저항에 맞닥뜨릴 수밖에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