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전면개방' 협상에 대한 국민적인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가운데 지식인 사회의 반대 움직임도 본격화되고 있다.
'민주화를 위한 전국 교수협의회', '전국교수노동조합', '학술단체협의회' 등 3개 교수단체는 13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가 위기를 극복하고 신뢰를 회복하는 유일한 길은 현재의 미국 쇠고기 수입 협정을 파기하고 재협상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교수 3단체는 의학, 수의학, 생물학, 경제학, 법학 등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정과 관련된 모든 전문분야를 포괄하는 긴 기자회견문을 통해 정부의 협상 태도를 맹비난했다.
이들은 "이번 협상의 가장 큰 문제점은 정부가 경제 발전이라는 논리를 앞세워 과학적 사실까지 왜곡하면서 국민의 생명과 안전에 대한 보장을 미국에 맡겼다는 데 있다"며 "학계·전문가 단체로서 전 국민적인 공황상태를 야기할 정부의 협상을 좌시하고 있을 순 없다"고 밝혔다.
"재벌 CEO식 방식으로 국민·전문가 의견 무시"
서울대 의대 황상익 교수는 "20세기 들어와서 위생상태가 개선되고 항생제가 개발되면서 전염병의 시대는 거의 끝났다고 미국 방역 책임자 등이 장담했지만 이를 비웃듯 전염병은 엄청나게 증가했다"며 "무서운 것은 20세기 들어 발생한 에이즈, 사스 등은 세균성이 아니라 바이러스성이 주를 이룬다는 것인데 광우병은 바이러스보다 더 정체를 모르는 질병"이라고 밝혔다.
황 교수는 "광우병은 자연발생적인 질병이 아니라 인간의 과욕과 욕심으로 인해 생긴 병이고, 어떻게 번지게 될지 도무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정부는 검소한 자세로 임해야 한다"며 "정부가 취해야 할 자세는 '안심해도 된다'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여 제반 조치를 취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학술단체 상임대표 서유석 교수는 "대다수의 국민들, 심지어 한나라당 이한구 정책위의장까지 쇠고기 협상이 문제가 있다고 여기는데 유일하게 대통령과 정부만 끝까지 아니라고 우기고 있다"며 "이는 과거 개발독재시대에나 있었던 재벌 기업의 CEO식 운영 방식으로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밀어붙이는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일갈했다.
한신대 김상곤 교수(경영학)는 지난 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해 검찰이 '성공한 쿠데타'론을 말하며 불기소 처분을 했던 것을 언급하며 "당시 국민적인 분노가 들불처럼 일어났는데 그때 교수들도 국민들과 함께 쿠데타 주역의 처분에 일정정도 기여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이어 김 교수는 "지금 상황은 그때보다 미래지향적이며 생활 정치적인 공간이 확대되는 지점에서 이뤄지고 있고, 결코 정부가 미봉책으로 얼버무릴 수 없는 상황"이라며 "탄핵서명 등의 움직임도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현실화될 수도 있다는 것을 정부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편 교수 3단체는 향후 일정과 관련 "국민적인 분노에도 정부의 장관고시에 대한 입장이 바뀌지 않으면 '전국교수 서명운동'을 전면적으로 시작할 예정"이라며 "정부의 기만행위를 명확하게 밝히기 위해 관련 분야에 대한 과학자 토론 등을 꾸준히 준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교수 3단체가 밝힌 쇠고기 협상과 관련한 정부 주장의 오류를 정리한 것이다.
"문서 해독도 못 하는데 구두약속 믿을 수 있나"
[정부주장] 13일 오전 국무회의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광우병 발병 시 쇠고기 수입을 즉각 중단할 것을 미국으로부터 구두로 약속을 받았다"고 말했다.
[교수단체] 매우 의심스럽다. 문서 하나도 제대로 해독을 못하는 정부 아닌가. 이 상황에서 구두만으로 한 약속을 신뢰할 수 있는지 의문이다. 사실 구두로 하는 것은 법적 구속력이 없다. 미국 축산업계의 막강한 로비력을 볼 때 원천적인 재협상을 하지 않는다면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정부의 의지가 진실이라면 기존의 협약을 파기하고 내용을 문서화하는 재협상에 들어가야 한다.
[정부주장] 국제수역사무국의 기준은 국제적으로 인정된 공정하고 과학적인 기준이다.
[교수단체] 우리는 국제수역사무국은 미국의 실질적 영향력 하에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국은 자기 입맛대로 국제수역사무국의 준수 사항을 적용하고 있고, 그 기구의 핵심 보직은 미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국제수역사무국에 맡긴 것은 국민들의 생명과 안전을 미국의 쇠고기 자본에 맡긴 것과 다름이 없다고 판단한다. 더욱이 미국의 특정위험부위(SRM) 규정은 유럽연합의 기준에 비교하면 너무도 허술한 기준임에도 불구하고 30세 미만에서의 SRM도 수입될 예정이다.
[정부주장] 미국산 소가 광우병으로부터 안전하고 '1억 마리의 소중에서 광우병 소는 3마리만이 발견되었다'는 것이 이를 입증한다.
[교수단체] 이는 신뢰할 수 없는 비과학적 언술이다. "2000마리 중에서 1마리 꼴로 검사해서 광우병 소가 3마리 발견되었다면, 1억마리 소 중에서는 6000마리의 광우병 소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어야 한다. 또한 최소한 30개월 이상의 소에 대해 전수 검사를 실시하지 않는 미국의 상황과 더불어 미국 도축장에서 광우병 의심 소를 검사도 하지 않고 그냥 죽여버리는 경우가 있었다는 보도도 있다. 어떻게 이런 경우가 앞으로는 결코 없을 것이라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또한 정부는 한국 땅에 앉아서 어떻게 미국 축산업자들이 광우병 의심 소를 보고하지 않은 채 죽여서 산에 묻어버리는 경우가 없다고 보장할 수 있겠는가?
[정부주장] 광우병에 걸릴 확률이 벼락 맞을 확률보다 적다.
[교수단체] 이는 국민을 호도하는 비과학적인 주장이다.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광우병 의심 사망자의 뇌를 부검하는 것이 의무화되어 있지 않으므로, 실제의 광우병 환자 수는 현재까지 드러난 것 이상으로 많을 것이라는 것이 의학계의 보편적인 의견이며, 또한 임상증상이 없지만 감염되어 있는 사례도 보고되어 있다. 지역과 시간에 따라 발병 확률이 달라지는 것이 전염성 질병이다. 즉 어떤 나라에서 광우병 환자가 발생하는 특정 조건에서는 그 나라 사람들이 광우병에 걸릴 조건부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바로 이렇게 발병확률이 급격하게 높아지는 것을 막기 위하여 광우병 위험 지역으로부터 쇠고기 수입을 철저하게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모든 식당 원산지 추적하려면 공무원 수만명 신규 채용해야"
[정부주장] 미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오는 소의 검역을 철저하게 하고, 확실하게 표시하고 단속을 통하여 완벽하게 관리하겠다.
[교수단체] 정부는 모든 식당에 원산지 표기를 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정부는 불량 제조식품 유통조차도 근절시키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철저하게 검역하고 완벽하게 원산지를 추적하려면 수 만명의 공무원을 새로 채용하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이런 조치를 수행할 예산을 가지고 있나? 그리고 왜 미국 소 수입 때문에 필요하게 된 조사와 검역 때문에 귀중한 우리 국민들의 혈세를 낭비하여야 하나? 자기 국민의 세금으로 남의 나라 쇠고기 수출업자를 보조하는 나라는 주권국가라 할 수 없다.
소와 쇠고기의 이력을 완벽하게 추적할 수 있다는 기술은 고도의 테크닉을 요구하기 때문에 모든 소와 쇠고기에 대하여 추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 비용도 엄청나다.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비용 편익을 계산해 보더라도 철저하게 검역하고 완벽하게 관리하는 비용을 포함시키면 미국산 소는 결코 싼 소가 될 수 없고, 미국 위험소의 수입은 편익보다 비용이 훨씬 크다.
[정부주장] 미국 사람들도 대부분 미국소를 먹는다.
[교수단체] 미국과 한국의 상황은 매우 다르다. 한국에서는 쇠고기 표시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미국이 한국 소비자들을 위한 쇠고기를 미국 소비자들을 위한 것처럼 관리해 줄 것이라고 신뢰할 수 없다. 자본주의 역사를 통틀어서 선진국이 자국민에게는 안전제품을 제공하고 후진국에는 위험제품을 수출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아편을 수출하기 위해 전쟁까지 일으킨 역사도 있다. 미국에서는 비싼 쇠고기가 미국산이지만 한국에서는 비싼 쇠고기가 한국산이다. 이로 인해서 한국에서는 원산지나 나이를 속이면 막대한 이득을 보게 되는 유인체계가 작동하고 있다.
미국 쇠고기 자본의 입장에서 보면 한국에 미국민이 먹는 것과 다른 나이의 부위와 소를 수출할 수 있다면 폐기처리 비용도 들지 않고 엄청난 추가 이윤이 보장된다. 한국정부는 엄청난 돈이 되면서, 협정문에 보장된 합법적인 장사를 어떻게 막겠다는 것인가. 또한 수출할 때 연령표시 의무를 빼버린 것은 미국내 시장과는 달리 한국시장에서는 30개월 이상 소를 많이 수출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 표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미국 정부는 미국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소의 도축과정에 대해 조사권을 가지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한국 소비자들이 소비하는 소의 도축과정에 대한 조사권이 없는 비대칭적인 상황에 있다는 것이다.
[정부주장] 광우병이 발생하면 수입을 중단하고 조사단을 파견하고 전수검사를 하는 추가조치를 하겠다.
[교수단체] 쇠고기 협정문에는 우리 정부의 수입 중단권, 미국 내 도축장에 대한 조사권, 우리나라에서의 전수검사권이 없다. 권한이 없는데 조치하겠다는 약속을 누가 믿을 수 있나. 15일로 예정된 고시를 연기하고 재협상을 통해 그렇게 조치할 수 있는 권한부터 확보해야 한다. 나중에 협정이 발효된 후에 정부가 그런 조치를 한다면 투자자 국가 소송제도 같은 것들로 인해서 수입 예상 물량 전체를 수입도 안하면서 돈으로 배상해 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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