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산 쇠고기 전면 개방과 한반도 대운하의 공통점
비오는 날 우비를 쓰고 비를 맞으며, 영상촬영을 하는 슬비(18)와 걷다가 이런 저런 얘기를 하게 되었다. 아마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막 이슈가 되려던 때였던 것 같다. 슬비가 많이 흥분해서 이야기하기에 그 속마음이 궁금했는데 너무나 정확한 대답이 돌아왔다.
"미국산 쇠고기 들어오면 그거 우리 같은 애들이 먹는 거예요. 돈많은 사람들이 수입고기 먹겠어요? 어른들만 해도 그런 거 안먹죠. 고기 뷔페나 찾아다니고, 패스트푸드점 햄버거 사먹는 사람들이 다 십대들인데, 십대들이 그거 먹는 거예요." 흥분하는 이유는 확실했다. 미국산 쇠고기를 먹을 사람들은 경제적 여유가 없는 사람들일테고, 청소년은 그 중 가장 큰 사회 집단이다. 청소년, 특히 여중고생들이 청계광장에 촛불을 들고 모이는 이유는 '내 먹을거리'에 대한 협박에 흥분해서다.
사교육비 내느라 빠듯한 살림살이에, 눈치보며 조금씩 받아든 용돈으로 어렵게 날잡아 사먹는 '고기'가 광우병에 걸릴지도 모르는 소라니, 흥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무엇이 들어가는지 알 수 없는 채로 매일 먹어야 하는 급식도 있다.
"미친 거 아니에요?" 30일여 한강과 낙동강을 따라 걷고 있는 '강강수월래단' 청소년들이 운하를 만들면 어떨 것 같으냐는 질문에 공통되게 하는 말이다. 그 아름다운 환경을 파괴하고, 생명을 살지 못하게 하고, 먹을 물에 배를 띄우는 일을 왜 하려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그리고 그 잘못이 고스란히 자신들의 몫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기에 하는 말이다.
미국산 쇠고기 전면수입과 한반도 대운하 건설의 공통점은 둘 다 청소년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사건이라는 점이다. 그럼에도 청소년은 그 결정 과정에 빠진 채 바라보고만 있어야 한다. 그리고 어떤 결정이건 그 피해만 고스란히 받게 된다. 처지를 바꿔 생각하면 화가 나는 것이 마땅하다. 왜 내가 결정하지도 않은 일에 내가 피해를 입는가. 혹은 내가 피해 입을 일을 왜 당신들이 결정하는가. 그런 분노가 두 사안의 공통분모다.
인간이 초래한 재앙들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광우병도, 수백만 마리의 생명을 '살처분'이란 이름으로 학살하고 있는 조류인플루엔자(AI)도 모두 인간이 스스로 자초한 재앙의 일부 목록이다.
광우병은 소에게 동물성 사료를 먹이면서 시작된 병이고 AI는 인간이 직접 자초한 질병은 아니지만 지구 온난화가 배경으로 꼽히며, 특히 한 번에 수백만에 달하는 대규모 학살이 벌어지는 이유는 닭이나 오리를 수십만 마리씩 집단 사육하는 과정에서 벌어진다.
연일 이 두가지 질병이 온통 한국사회를 뒤덮고 있는데, "부처님 오신 날에도 '살처분'"이라는 기사의 제목을 보며 우울하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1971년 레이첼 카슨은 <침묵의 봄>이라는 의미심장하면서도 우울한 환경 역사의 고전에서 새들의 죽음을 이야기했다. 그 때 새들이 죽는 이유는 내가 초등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도 이를 잡겠다고 머리에 뿌려대곤 했던 DDT와 같은 농약 때문이었다.
인체에 무해하다며 뿌려댄 농약이 생물학적으로 '농축'된 결과 새들은 죽거나 알을 낳지 못했고, 그것이 새소리 들리지 않는 "침묵의 봄"을 만들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다행히 재앙의 직전에 인간들은 독성물질을 줄여나가서 레이텔 카슨의 우려가 현실이 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직접 인간들이 동물을 학살하고 있다.
이 정도의 학살은 전지구적 규모로 보면 아주 일부일 뿐인데, 인간이 지난 수백년 동안 저지른 환경 파괴와 대기온실가스 배출로 인하여 2050년이면 전체 생물의 1/4이 멸종할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까지 나오는 중이다. 생태학자들은 이를 두고 지구상의 여섯 번째 대량 멸종이 시작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공룡이 모두 죽었던 그 멸종과 맞먹는 이 멸종사태는 인간이 자초한 것이다.
길을 걷다가 강강수월래단 아이들은 한창 피어있는 아카시아꽃을 따서 먹곤 했는데, 그 순간에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아카시아 나무가 인간에게 조금이라도 해를 줄 수 있게 된다면 인간은 아카시아나무를 모두 죽일 수 있는 농약을 만들거나, 온 산을 뒤져 뿌리째 뽑아내는 한이 있더라도 아카시아를 멸종시키고 말 것이라는 생각.
그것이 '인간적'인 방식일 것이라는 우울한 생각이 이어졌다. 아카시아가 멸종되고 나면 벌어질 더 큰 재앙에 대해서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을 것이고, 그 결과는 후대의 비극으로 이어질 것이다.
10대 소녀들의 등장에 당황하는 한국사회이제까지 인간과 사회는 당대의 삶에만 집중해왔다. 몇 가지 존재하는 장기적인 정책은 당대의 삶에 희망을 주기 위한 개발의 지표로서만 의미가 있었다. 우리는 공존하는 삶에 대해서 고민하지 못했으며 특히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역사적 공존에 대해서는 아무런 감각도 발달해 있지 않았다.
20세 이전의 청소년들은 학교에 몰아넣어 시선에서 제거했고, 마찬가지로 '노인'은 '문제'로만 다루었다. 실제로 다양한 역사적 세대가 공존하고 있음에도 사회는 모른 척 했다. 이 사회는 20세에서 60세까지의 사람들만이 살고 있는 사회인 것처럼 행동했다. 더 심하게는 아직 취직도 못한 20대와 이미 퇴직한 50대를 제외한, 30세에서 50세까지 사람들만의 사회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정도다. 그 곳에는 과거도 미래도 없다.
촛불을 들고 나선 10대 소녀들에게 이 사회가 과잉반응을 하는 이유는, 바로 그 '실존하는 미래'가 '현실'에 등장한 충격 때문이다. 언제까지고 자신들이 가두어 놓은 울타리 안에 있을 것만 같았던, 그래서 자신들의 기준에 합당한 어느 시점(20세?)에 자기편이 되어 나타날 것으로 예상했던 그들이, "미친 소, 너나 먹어"라는 구호와 함께 현실에 귀환한 것이다.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 반응은 '경악'에 가까웠다.
그러나 사실 10대 소녀들에게 경악하는 이 사회가 우스운 사회다. 성춘향과 이몽룡이 낯뜨거운 '운우지정'을 나누던 나이가 16세였다. 흔한 말로, 이팔청춘이란 28세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2*8=16세를 말한다. 아직도 선거권 연령 만 19세를 유지하고 있는 몇 되지 않는 나라 한국이 문제지 85% 이상의 국가는 선거권 연령이 18세이며, 북한과 필리핀, 인도네시아는 17세이고, 오스트리아, 브라질은 16세이다.
피선거권(입후보자격)은 한국에서 25세인데, 많은 국가들이 선거권과 피선거권 연령을 동일하게 하고 있어 독일의 안나 뤼어만과 같은 10대 국회의원이 나오기도 했다. 연령별로 인지발달 수준의 체계를 세웠던 장 피아제의 보수적인 견해에 따르더라도 15세 정도면 성인과 같은 수준의 인식틀을 형성한다고 했다.
십대들이 현실에서 보이지 않았던 이유는 성인들이 그들을 학교에 가두어놓은 탓이었지 그들의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촛불집회를 계기로 많은 지면에 오르내리는 십대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어떤 모자람도 찾아볼 수 없다. 지적인 측면에서도, 내가 경험적으로 파악한 바로, 중학교 과학교과서보다 나은 수준의 과학적 지식을 갖춘 성인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보다 훨씬 형편없었다는 것이 맞다.
"오늘부터 강강수월래단 운영은 청소년이 합니다"
강강수월래단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불고(한석주)가 서울에 잠시 올라온 내게 보낸 메일 속에 들어있는 말. "오늘부터 강강수월래단 운영은 청소년이 합니다."
<청소년, 강을 노래하다>의 중요한 목적은 청소년들이 '스스로'하는 데에 있다. 경험도, 판단도, 결정도 스스로 해야한다는 것은 대안교육의 철칙에 가까운 철학이다. '자기주도학습'이라 표현하기도 하는 그것은 스스로 경험하고 느끼며 판단하는 것만이 실질적인 삶의 지혜가 된다는 아주 평범한 상식에서 출발한다.
물론 직접 실행하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다. 아이들을 십여 년에 걸쳐, 주는 것만 받아먹는 바보로 만들어놓았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싶다고 해서 막상 그럼 마음대로 해보라고하면 아무것도 못하는 이들이 공교육 안에서 살아온 청소년들이다. 대안학교 교사로서 가장 안타까울 때가 그런 때다.
강강수월래단도 출발은 교사들을 비롯한 '어른'들이 중심이었다. 청소년들이 사람을 모으고 돈을 모으고 수많은 자원을 연결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내내 그 '어른'들의 마음은 청소년들이 직접 그것을 하기 바랐다. 그래서 많은 역할을 맡기기도 했지만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디딤돌과 징검다리라는 책임과 역할들을 주었지만 첫날부터 진행이 이상했다. 자전거를 타고 출발하기로 해서 조를 나누어 놓자고 했는데 출발하는 순간까지 우왕좌왕이었고 결국 자원봉사로 와주신 선생님의 도움으로 조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침 출발하기 전에 몸도 풀고 인사도 하는 간단한 의례들을 진행해야 하는데, 진행을 맡은 양갱은 순서를 넘기는 것만 간신히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집중도 하지 않고 제멋대로였다. 마이크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고, 교사들이 일일이 챙겨줘야했다.
영상촬영을 해야하는 슬비는 어딘가에 정신이 팔려있어 제대로 촬영이 되지 않았고, 일지는 어디에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도 확인하기 힘들었다. 일기와 사진만 간신히 명맥이 유지되고 있었다. 답사팀이 안전과 관련한 모든 것을 맡아야 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자기들끼리 신나게 앞에서 놀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다. 잠시 일어났다 떠나는 자리에는 쓰레기와 흘린 물건들이 한가득이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면 2001년 헌법재판소가 선거권 연령이 20세인 것이 맞다며 합헌 결정한 판례에서 보듯
"선거권 연령을 20세 이상으로 제한하고 있는 것은 입법자가 미성년자의 정신적 신체적 자율성의 불충분 외에도 교육적인 측면에서 예견되는 부작용과 일상생활 여건상 독자적으로 정치적인 판단을 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의문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하여 규정한 것"이라는 말이 일견 일리가 있어 보이기까지 한다.
청소년은 어린애라 믿는 어른들에게그러던 것이 일주일이 지나고 이주일이 지나면서 확실히 달라졌다. 충주 공동육아조합에서 하루 신세를 지던 날이었다. 나오는 뒷자리에 양갱이 마이크를 잡고 뒷정리를 채근하고 있었다. 뒷정리 전담반이 조별로 돌아가며 있어서 빗자루와 진공청소기가 동원되어 깨끗하게 정리되었고 화장실까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아침 모임 진행도 자리를 잡아서 이제는 사람들이 집중하지 않으면 제법 화도 낼 줄 알게 되었다. "늦게 모이면 그만큼 더운 시간에 걷는 기간이 길어진다"는 논리도 동원했다.
지금은 생활하는 대부분이 거의 청소년들 스스로에 의해 진행된다. 문경 진남역에서 있는 휴일 동안 지원단이 한 일은 밥과 차량지원이 전부였다. 나머지 행사와 일정은 청소년 스스로 진행했고, 심지어 지원단은 거기에서 빠져서 자기 할 일들 하기에 바빴다.
행사팀은 하루하루의 일상적인 이벤트와 주말마다 있는 문화제를 준비하느라 정신없이 바쁘다. 홍보기록팀은 매일 밤 열두시가 넘어서까지 일지를 정리하고 영상을 편집하고 일기를 쓰고 사진을 올리는 일을 한다.
조명도 없는 텐트에 모여 앉아, 트럭에 시동 걸어 전기 끌어다가, 오들오들 떨며 글을 쓰고 작업을 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고있자면 안쓰럽기도 하고 훌륭하기도 한 것이 만감이 교차한다.
답사팀은 다음날 일정을 확인하기 위해서 매일 점심시간, 다른 팀원들은 휴식하는 시간에 두세 시간씩 열심히 뛰어다닌다. 답사팀을 이끌고 있는 지원단장님은 이번 주 월요일부로, 앞으로 걷는 행렬과 관련된 모든 디렉팅은 답사팀의 청소년들이 직접 하자며 확실하게 책임을 넘겼다.
아직 보지는 못했지만 슬비가 결국 영상을 만들었다고 한다. 영상편집을 노트북으로 한다는 것부터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부랴부랴 새로 노트북을 대여해가기까지 했는데, 15개에 이르는 테잎을 캡쳐해서 편집하는 일까지, 내용에 대해서는 뭐라하지 말라는 언급이 있었지만 그 열악한 환경에서 만들어낸 것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일이다.
나는 솔직하게 묻고 싶다. 48일을 걸으며 야영하는 일 자체만으로도 쉽지 않은데, 그 가운데 자기 역할 맡아서 새벽까지 트럭 덜덜거리는 소리 들으며 텐트에서 작업하고는 새벽 6시에 다시 일어나 몇일 째 세수도 못하고 새로운 일정을 시작하는 그런 일을 성인 중 몇이나 견딜 수 있을까? 몇이나 책임질 수 있을까?
그럼에도 14세에서 19세의 청소년들 중 또또를 제외하고는 단 한명도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단언컨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이들이 "정신적 신체적으로 자율성이 불충분한" 사람들이라면 대체 "정신적 신체적으로 자율성이 충분한"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여중고생들이 아직도 '어린애'로 보인다면,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되려 광우병에 걸린지도 모를 소를 먹을거리로 공급하겠다는 생각, 그것이 국민들에게 받아들여지리라는 생각이 '어린애'같은 것이다.
합리적 판단 능력은 나이에 따라 유무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건강하게 경험하며 성장했는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그러니 선거권을 그런 기준으로 줄 거라면 차라리 웃기는 어른들의 선거권을 박탈해야 한다. 적어도 십대는 자기 친구에게 죽을병에 걸릴지도 모를 고기를 선물하지 않을 정도의 합리성과 배려의 마음은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건, 그리고 남자목욕탕 사건(훔쳐보기 미수?) 이후로 또 한 번의 사건이 있었는데, 인물은 동일했고, 사건의 내용은 밤늦은 시간까지 시내 PC방에서 게임을 하다 회의시간에도 안 오고 취침시간 직전이 되어서야 돌아온 사건이었다. 그게 대단한 일이 아닐 수도 있지만 동일 인물들이 계속해서 반복하는 잦은 약속 위반들과 태도가 문제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도 남자들이 벌인 사건이다. 내가 대안교육 현장에서 보는 바로, 어느 순간부터 대부분의 '사건'의 중심에는 '남자'들이 있었다. 반면 대부분의 일과 관계의 중심에는 '여자'들이 있었다. 자기주도학습을 가장 잘 하는 것도 여자들이었고,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아이들도 여자들이었다.
우석훈 박사는 이번 촛불시위를 보며, 우리가 고대하던 합리적 의사소통이 가능한 첫 세대가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기대까지 하고 있는데, 그리 과한 표현이 아닌 것이, 지금의 여성 십대들은 소통, 배려, 리더십, 실행력, 자신감 등에서 한국 사회의 그 어떤 세대보다도 탁월한 능력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오죽하면 여학생들에게 눌릴까봐 남녀공학이 되는 것을 반대하는 남학생의 학부모들이 생기겠는가.
강강수월래단에서도 마찬가지인데, 몇 명의 남자 단원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은 여자단원들에 의해서 운영이 진행되고 결정되고 있다. 이 세대에서는 적어도 남녀차별이 거꾸로 있었던 것 같다는 착각이 들 정도다. 회의하는 모습을 보더라도 여성들이 지적하고, 화내고, 비판하면 남성들이 방어하고, 무마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번 사건도 여전히 뚜렷한 결론은 없었는데, 그 이유를 들여다보니 배려하고 이해하려는 힘이 작용하는 것이 하나고, 다른 하나는 '처벌'과 같은 형식에 대한 절대적인 반감이 작용했다.
청소년들은 스스로 잘 알고 있는데, '처벌'이라는 형식은 별로 적절한 효과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믿고 신뢰해주는 것, 기다려주는 것이 더 좋은 방법이라는 것이 중론이었다. 결국 그들에게 주어진 처벌 아닌 처벌은 15일 대구에서 있을 문화제에서 '아주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다. 아주 열심히 했는지는 곧 내려가면 물어봐야할 것 같다.
이제 남은 보름의 시간
낙동강을 따라 대구로 들어가고나니 보름의 시간이 남는다. 낙동강은 모래가 많은 강이다. 강변을 따라 끝도 없이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모래사장 중간중간에는 모래 채취의 흔적과 버려진 중장비들이 보인다.
특히나 강폭은 엄청나게 넓은데 수량은 무척 적다. 갈수기와 홍수기의 물의 차이가 230배가 나니 그럴 만 했다. 경부고속도로가 지나가는 자리를 낙동강이 지나는데, 낙동강대교 모습을 보아하니 그 다리도 철거해야할 판이다. 결국 경부고속도로의 통행에 엄청난 차질이 빚어질텐데, 그 비용과 불편은 어떻게 감당할지 모르겠다.
모래사장을 따라 한참을 걸었다. 물에도 들어가고 작은 개울도 건너고. 신발을 벗고 모래위를 걷는 느낌은 해변과 또 많이 달랐다. 모래사장 위에는 새와 도마뱀과 들짐승들의 발자국이 선명했다. 우리도 그들의 일부가 되는 느낌이었다.
동훈이는 인터뷰에서 자신이 강변에 사는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는데, 딱 그런 것이었다. 자연과 함께 살아간다는 느낌. 내 뒤로는 내가 만든 모래사장 위의 발자국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었다.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기억으로 남을 것이다.
오랜 기간 누적된 피로와 급격한 기온 변화로 감기에 걸린 친구들이 많다. 아무리해도 낫지를 않아 억지로 집에 보내서 쉬게 한 친구도 있었다. 아프고 지친 그들을 보며, 아마 지금이 일주일 중에 목요일쯤 같은 느낌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주말은 아직 조금 남았고, 피로는 누적되어 무기력한 상태. 이제 남은 2주의 시간, 청소년들이 모든 것을 직접 책임지며 운영하게 될 그 시간에 또 어떤 사연과 자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