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늘은 친정 엄마와 아버지가 내려오시는 날이다. 시골로 이사온 첫 해 겨울에 와보시곤 이번이 두 번째니 4년 만이다. 처음에 오셨을 땐 어찌나 투덜거리시는지 빨리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다.

쉰 넘은 아줌마도 '청결주의' 엄마의 잔소리가 무섭다

 우리 부부에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집이지만 엄마 아버지도 만족하실까?
우리 부부에겐 더할 나위 없이 멋진 집이지만 엄마 아버지도 만족하실까? ⓒ 조명자

원래 '청결지상주의' 성격이시라 지저분한 것은 도저히 용서하지 못하는데 제대로 수리도 못한 시골집엘 오셨으니 오죽했으랴. 보는 대로 잔소리가 늘어지셨다. 문짝 하나 성한 곳이 없는 집에서 어떻게 사냐? 화장실이 이렇게 험하니 볼 일인들 마음 편하게 볼 수 있겠냐? 웬만큼 살 수 있는 집을 골라야지, 이렇게 헐어빠진 집구석에서 어떻게 살 것이냐?

급기야 엄마 앞에서 "돈이 없는데 좋은 집을 어떻게 마련하냐?"고 고래고래 악을 썼다. 오래된 화장실 타일 바닥을 철수세미에 락스를 묻혀 박박 문지르고, 비틀어진 문틀은 급한 대로 강력 테이프로 싸바르고 한시도 쉴 틈이 없이 움직이는 엄마를 도저히 편하게 바라볼 수가 없었다. 며칠 더 있으면서 집을 손보겠다고 설치는 엄마를 반강제로 가시라고 해놓고는 빈 말이라도 "오시라"는 소리를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수없이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집이 궁금하셨던지 툭하면 집이 어떻게 변했느냐고 물어보셨지만 정말로 "한번 와보시라"란 말을 꺼내지 않았다. 간간이 컴퓨터에 저장된 우리 집 사진 중에 꽃이 활짝 핀 마당을 보여드리면 "이렇게 마당이 예쁘냐?"며 직접 보고 싶은 표정이 가득하셨다. 하지만 역시 오셔서 끊임없이 퍼부어댈 잔소리를 생각하자니 쉽사리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걱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딸년 집에 가보고 싶어하는 노인네를 차일피일 하다 정작 먼거리 나들이가 힘들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꽃을 좋아하는 할머니시니 봄꽃 만발한 계절이 적격이었다.

매화가 만개한 삼월에 내려오시라 했더니 아버지 때문에 장거리 여행을 못 하시겠단다. 그래서 우리 엄마 아버지가 제일 좋아하시는 외손주를 동원했다. 이번에 제대한 아들놈에게 집에 내려올 때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내려오랬더니 두 분이 즉각 오시겠다고 하더란다.

'비상비상' 엄마가 온다~ 이불장 뒤집는 대청소 돌입

따뜻한 날씨에 꽃이 만발한 마당이 있으니 낡은 시골 집에 대한 엄마의 편견은 상당히 누그러지겠으나 살림이 문제였다. 보나마나 집에 들어서자마자 부엌 살림, 안방 살림, 화장실까지 구석구석 뒤집어 놓을 것이 뻔했다.

할머니가 나대시기 전에 대충 치워놔야지 그렇지 않으면 계시는 동안 손에 물 마를 새가 없을 것이다. 우선 이불장에 얹어진 이불부터 손봤다. 우리 엄마 성격은 이불장에 이불 요를 크기에 맞춰 반듯 반듯하게 개켜져 있지 않으면 잠을 못 주무신다.

되는 대로 들쑥날쑥 쑤셔박은 우리 이불장을 보시면 홀라당 끄집어 내 난리를 치실 것이니 두꺼운 것은 두꺼운 대로, 차렵 이불은 그것대로 얌전히 구분해 이불장 손질을 했다. 그 다음은 서랍 정리, 여기 역시 우리 엄마가 꼭 확인하는 필수 코스다.

속옷은 속옷 대로, 양말과 손수건을 그 옆에 단정하게 정리해야 되고 나머지 티셔츠와 바지도 종류대로 사이즈에 맞춰 개켜져 있어야 한다. 옷걸이에 걸린 옷 또한 줄지어 정갈하게 걸려있지 않으면 몽땅 끄집어 내 다시 걸기 일쑤이니 빠뜨릴 항목이 아니다.

이것을 죄다 해놓고 보니 벌써 파김치가 된다. 나머지, 부엌 살림과 다락, 화장실 그리고 집 뒤란까지 정리해야 될 곳이 태산이건만 시간이 없다. 마당에서 풀 뽑느라 엄마 전화를 받지 못했더니 "내가 내려가서 죄다 할 텐데 뭐하러 하냐?"고 하신다.

엄마, 내려오면 뭐 맛난 거 먹을까

 이번엔 오마이벤치에서 엄마와 수다나 한바탕 떨어 볼까요?
이번엔 오마이벤치에서 엄마와 수다나 한바탕 떨어 볼까요? ⓒ 조명자

에구, 아무리 치워놓는다 한들 우리 엄마 검색망을 어찌 뚫을소냐, 포기다 포기. 내려오셔서 밤낮으로 일을 하시건 말건 당신 성격 때문에 당신 신간 들볶는데 말릴 장사 있던가. 두 양반 오시면 모시고 나갈 맛집을 골라 놓고는 어디를 구경시켜야 좋아하실까 궁리를 한다.

아마도 아버지 상태를 봐서는 이번 여행이 마지막일 것 같은데 가능하면 두 양반이 "참, 잘 왔다"고 하실 만큼 만족한 스케줄을 짜드리고 싶다. 부모 마음은 모두 한 가지, 장성한 자식이 쾌적하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여유를 누리는 모습을 보는 것이 소원일 것이다.

궁벽한 시골에서 지지리궁상으로 사는 자식 모습을 보는 부모 마음이 어떨지는 알 만한 나이가 됐다. 삶의 가치관이 다른 부모에게 아무리 우리 부부가 남부럽지 않은 행복을 누리는 중이라고 강변한들 그 말이 먹히겠는가. 다만 두 노인이 내 사는 모습을 보고 근심만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저것이 시골살이가 그리 좋다하드만 정말로 그렇네. 꽃속에 파묻혀 시간가는 줄 모르고, 서울에선 돈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싱싱한 야채를 먹기 싫어 못 먹을 정도로 온 천지에 그득하고…. 곳간에 돈 싸놓고 사는 놈은 하루 다섯 끼 먹을손가? 삼 시 세 끼 잘 먹고 건강하면 그것이 잘 사는 것이지."

우리 엄마가 해주실 덕담을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터넷 한겨레 블로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부모 마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