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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민기자다

 

나는 시민기자다. 사실 이전까지는 시민기자로서 역할 같은 거창한 것에 대해서 별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촛불문화제가 열려서 아이들이 청계천으로 여의도로 모여들어 자신들의 뜻을 표현하는 모습을 보면서, 시민기자의 피가 끓는 듯했다. 나 역시 시민의 한 사람으로 거기에 촛불을 하나 더 얹어두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거의 모든 세대를 만날 수 있었다. 아기 엄마, 노동자, 학생, 직장인, 노숙자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는 것은 월드컵 이후 처음 있는 일인 것 같았다.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물을 수 있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인 것 같다.

 

수줍은 성격이라 평소 때 같았으면 말도 못 걸었을 테지만, 용기를 내서 그들을 인터뷰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시민기자'이기 때문이다. 거기에는 기자에 대한 평소의 불신이나 회의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현장에서 사람을 만나는 것, 그것이 기자의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지인들과 여의도 촛불문화제 현장에 가서 촛불은 제대로 안 들고 딴짓만 했는데, 앞줄부터 인터뷰 대상을 물색해서 들이대는 일, 사진찍는 일, 인상을 기록하는 일 등이다. 거기서 기웃거리다 <시사IN> 안희태 기자의 문자를 받고, 용달차 위에 올라가 사진도 찍어 보고 '앵글'에 대한 현장교육도 직접 받을 수 있었다.

 

내 눈에 띈 것은 태극기다. 태극기가 국가주의에서 진정 해방되는 모습을 보는 것은 매우 뿌듯하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미안한 말이지만, 촛불만 들고 있기엔 너무 아까운 순간들이 많았다.

 

 태극기는 2002 월드컵에 이어 촛불문화제에 이르러 비로소 국가주의에서 진정으로 해방됐다. 촛불문화제가 주는 대표적 성과 중 하나는 태국기로 상징되는 애국심의 발견이다.
태극기는 2002 월드컵에 이어 촛불문화제에 이르러 비로소 국가주의에서 진정으로 해방됐다. 촛불문화제가 주는 대표적 성과 중 하나는 태국기로 상징되는 애국심의 발견이다. ⓒ 오승주

시민기자가 바라보는 촛불문화제의 관전포인트

 

<88만원 세대>(레디앙)를 쓴 우석훈씨는 그의 책에서 10대들이 집단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답이 없다고 얘기했다. '집단행동'? 그 당시는 판타지고 이상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10대들에게 뭘 믿고 집단행동하기를 바란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들이 집단행동을 한다손치더라도 '뭘 가지고' 집단행동을 하느냐였다. 이게 불과 6개월 전의 분위기였다. 이만하면 경천동지라 할 만하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일어나게 됐는지는 설명이 가능하다. <맹자>라는 책의 한 구절을 보자.

 

爲淵敺魚者, 獺也; 爲叢敺爵者, 鸇也; 爲湯武敺民者, 桀與紂也

연못으로 고기를 내모든 것은 수달이며 새떼를 숲으로 내모는 것은 새매이다. 백성들을 탕왕과 무왕에게 몰아다가 준 것은 걸과 주이다(맹자, 이루 하)

 

탕왕과 무왕은 중국의 대표적인 성군(聖君)이고, 걸왕과 주왕은 대표적인 폭군(暴君)이다. 걸왕과 주왕에 현직 대통령을 비교하는 것은 좀 민망한 일이지만, 그들이 해놓은 일을 보면 폭군이라는 표현이 어색하지 않다. 이것을 우리 실정에 맞게 윤색해보면 이렇다.

 

"초중고등학생들을 거리로 몰아다 준 것은 이명박 정부다."

 

형식적으로 따지면야 연이은 촛불문화제는 이명박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임으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그 구도는 본질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유권자들에 대한 비유권자의 불신임"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초중고등학생의 촛불'이 주는 의미 진지하게 고민할 때

 

 5월 12일 경향신문에 실린 박순찬 화백의 만평 <장도리>는 이번 촛불문화제가 유권자에 대한 비유권자의 불신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5월 12일 경향신문에 실린 박순찬 화백의 만평 <장도리>는 이번 촛불문화제가 유권자에 대한 비유권자의 불신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해석했다. ⓒ 박순찬

여기서 비유권자라 함은 초중고등학생들을 말한다. 촛불문화제를 단 한 줄로 표현하라면 나는 '초중고등학생의 발견'이라고 말할 것이다. 이것은 어른들이 발견한 것이기도 하고, 초중고등학생들이 스스로를 발견한 것이기도 하다.

 

사교육과 어른들의 불합리한 행동과 압력들을 견디며 고분고분하게 사는 듯 보였던 청소년들이 자발적으로 일어난 것은 축구로 따지면 간만에 얻은 몹시 좋은 골 찬스와 같다. 우리 국가대표 축구단은 이런 면에서 우리들의 모습을 잘 상징하는데, 매번 '뻥슛'으로 기회를 날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87민주항쟁, 4·3특별법, 김용철 내부고발로 인한 삼성문제 들은 하나의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후속타가 없이 '1타'로 끝났다는 것.

 

87민주항쟁은 노태우의 집권으로 이어졌고, 4·3특별법은 4.3의 이름조차 만들지 못하고 방기하다가 최근에는 보수세력의 거센 폐지압박에 직면했다. 삼성문제는 특검과 쇄신안으로 연결됐지만, 이건희 재산을 합법화하고 이재용의 불법승계를 합법화해주는 세탁기 역할로 귀결되고 말았다.

 

이 모든 것이 '1타'에 머물며 더 이상 천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일련의 실망스런 현상을 '87의 법칙'이라고 부르고 싶다. 지금은 천착하는 사람이 몹시도 절실한 상황이 됐다.

 

그래서 나는 '초중고의 발견'도 '1타'로 끝나지 않을까 솔직히 우려된다. 이것이 '87의 법칙'이라는 몹쓸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서 학생들이 들고 일어나게 되었는지 깊이 있는 성찰이 필요하며, 이 사건이 현대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집회에 참여한 한 학생도 "5년 있다 보자"고 하지 않았던가. 정부에서 아무리 폄하하고, 선생님이 귀를 잡아당기며 교무실로 끌고 간다고 하더라도 꺼질 줄 모르는 '초중고의 촛불'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가 도대체 무엇인지 어른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촛불문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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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놀이 책>, <인문고전으로 하는 아빠의 아이 공부>, <공자, 사람답게 사는 인의 세상을 열다> 이제 세 권째네요. 네 번째는 사마천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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