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이름이 광장에 울려퍼질 때, 거대한 촛불바다가 춤춘다. 그가 지나가는 곳마다 환호성이 따른다. "힘내세요" "고맙습니다"라며 악수세례가 쏟아진다. 어린 학생들이 수줍어하며 사인을 부탁하기도 한다.
어느 콘서트 장에 선 연예인이 아니다. 수만 명이 모인 광장에서 만난 한 정치인의 모습이다. 키 165㎝, 몸무게 49㎏의 왜소한 체격. 도포자락과 수염을 휘날리며 그가 지나가는 거리엔 수군거림이 남는다. "TV에서 많이 봤는데, 아! 강기갑 의원 아니야?"라고.
촛불과 '미친 소'로 상징되는 미국산 쇠고기 완전개방 문제가 우리 사회의 모든 이슈를 집어삼킨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인기있는 인물 중에 한 명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55)일 것이다.
'인기'는 곧 '바쁨'과 동의어다. 그만큼 바쁜 사람도 없을 터. 그를 찾는 전화가 쇄도한다. 하루 수차례 방송·라디오·신문에서 그와 만날 수 있다.
14일 저녁부터 15일 밤까지 그의 하루를 취재수첩과 카메라에 담았다. 여기엔 '쇠고기 문제' 해결을 위한 그의 쉼없는 발걸음이 담겼다. 심호흡을 가다듬고 14일 저녁 서울 시청 앞 서울광장으로 가보자.
[14일 밤 9시, 서울광장] "힘들겠다고? 더 고생하는 사람도 많은데"그는 분명 광장과 거리의 스타였다. 그가 나서면 카메라가 달라붙는다. 그리고 시민들이 다시 둘러싼다. 14일 밤도 그랬다. 밤 9시 그가 서울광장에서 열린 촛불문화제 무대에 섰을 때 그를 연호하는 목소리가 광장을 뒤덮었다.
강 의원은 1만개의 촛불을 향해 쉰 목소리로 "여러분의 힘으로 고시 연기를 시켰다, 앞으로 국민의 힘으로 국민건강권·검역주권을 되찾아오자"고 외쳤다. 아침부터 많은 일정은 소화한 그였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쩌렁쩌렁했다.
그와의 대화는 밤 9시 30분께 일정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에서나 가능했다. 옆에서 본 그의 얼굴엔 광대뼈가 보였고 피부는 거칠었다.
올해 들어 평소 몸무게에서 5~6㎏ 정도 빠졌단다. 몸무게는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연이은 단식, 선거운동부터 지금껏 쉼 없이 달려온 그이기에 회복이 안된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는 차 안에서 피곤함이 묻은 목소리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경상도 억양이었다.
- 4월 18일 한미 쇠고기 협상이 타결되고 참 많은 일이 있었다. 요즘 많이 바쁘지 않나?"기억이 잘 안날 정도로 뭘 했는지 모를 정도로 정신이 없었고, 그만큼 몰입했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힘이 돼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그 요구에 부응하고 있다."
그는 "많이 힘들 것 같다"는 말에 "더 고생하는 사람도 많다"고 웃어넘겼다. 그러면서 그는 "아침에 냉온욕하고 명상하면 신체·정신건강에 도움이 된다, 우리 먹을거리를 중심으로 식생활을 하면 건강해진다"며 귀띔했다.
"강달프? 진솔하게 일한다면 마법 힘 나올 수 있지 않겠나"- 인기가 많다. 특히 미래세대인 청소년들이 좋아한다. "청소년들이 절 왜 좋아하는지 의아스러울 때가 있다. 선거 영향도 있는 것 같고 광우병 관련해서 활동을 많이 했는데, 그걸 국민들이 아시면서 '이런 사람도 있었구나' 해서 그런 영향이 나타난 것 같다."
- 인터넷에서도 인기가 많다. '강달프'라는 별명도 있다."내가 사실 컴맹인데, 홈페이지·네이버·미니홈피엔 들어갈 수 있다. 글이 많이 올라온다. 내가 다 보지 못할 정도로. 간달프는 <반지의 제왕>에서 의리있는 사람으로 나온다고 보좌관이 알려줬다."
"간달프는 마법사"라고 부연하자 강 의원은 "몸·마음·정성을 다해 진솔하게 한다면 마법의 힘도 나올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호통기갑'이란 별명에 대해선 "원래 호통을 잘 안 치지만, 거짓말 하면 화가 난다"며 그 이유를 밝혔다.
그는 경찰의 표적수사 논란에 대한 입장을 내놓았다. 강 의원은 "우린 예사롭게 생각했는데 압수수색 영장까지 검토하고 그러니 황당하다, 너무 무리수 두는 것 같다"며 "경찰 수사를 보면, 상대 후보 쪽에서 뭔가를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직접 내가 조사받거나 그런 건 아니고. 우리가 봤을 때 큰 부분 아니라고 본다. 사실 우릴 비방하는 것도 많았다. 하지만 고발조치 안 했다. 지금 고발 조치하자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할 일이 많으니, 할 일만 열심히 하자는 생각을 하고 있다. 잘 풀릴 것이다."[14일 밤 10시, 의원회관] 집없는 국회의원 "6살 막내 보고 싶다"
강 의원과 기자를 태운 차량은 국회로 향하고 있었다. 밤 10시가 가까운 시각이었다. 이유를 물으니 의원회관에서 잔단다. 그는 "총선 전 1~2월에는 서울 숙소가 하나 있었는데, 총선 전 전세금이 필요해서 돈을 뺐다"고 머쓱하게 말했다.
'지난 3월 국회 공직자 윤리위원회가 밝힌 그의 재산은 6700만원'이라는 내용의 기사가 떠올랐다. 그래도 국회의원이 밤에 난방도 안 되는 의원회관에서 자는 모습을 상상하기 쉽지 않았다. 이에 그는 "출퇴근 시간이 절약되지 않느냐"고 농을 섞어 답했다.
그의 사무실 내 집무실(30㎡)의 1/3을 마룻바닥으로 만들어놓았다. 그 위론 멍석이 깔려있다. 다시 그 위로 오동나무 판이 깔렸고, 얇은 이불 한 장이 보태졌다. 이곳이 그의 침실이다. 홀로 지내는 밤이 길수록 가족이 보고 싶을 터였다.
- 가족이 보고 싶지 않나?"일 없으면 토·일요일에 사천에 내려간다. 4남매 중 막내가 6살인데 제일 보고 싶다. 워낙 많이 떨어져서 그런지 '우리 아빠 아니다, 왜 만날 서울가서 사느냐'고 선생님께 말한다고 하더라. 섭섭하다. 틈만 나면 같이 놀아주려고 한다."
그는 "첫째는 고1, 둘째는 중2, 셋째는 초등학교 4학년"이라며 "'아빠를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는 편지도 써주고 홈피에 글도 보내고 메일도 보낸다, 그 땐 찡하다"고 말했다. 그의 숨소리가 부드러워졌다.
부인에 대해선 "이제 지역구 의원이 됐으니, 집에 내려가도 새벽에 집에서 나와 밤늦게 들어가니 볼 시간이 많지 않다"며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
강 의원은 10시에 의원회관에 도착해서, 이정희 민주노동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자와 30여 분간 이야기를 나눈 후에야 공식 일정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의 책상 앞엔 내일 있을 KBS 1라디오 <열린 토론>, MBC <100분 토론> 대본과 자료들이 놓여있었다. 취재진이 그의 방에서 물러난 후에도 한동안 사무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15일 오전, 스튜디오-의원회관] 김치·멸치·깻잎 등 소박한 식단15일 역시 아침부터 강행군의 시작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난 그의 첫 일정은 오전 8시 30분 국회방송 스튜디오에서 <신율의 법률이야기>에 출연하는 것이었다.
방송 촬영이 끝나자마자 오전 9시 쇠고기 재협상 촉구 의원 모임 회의 등 11시 30분까지 회의, 촬영 등 일정 4개가 이어졌다. 방송촬영 때문에 하얗게 화장한 그의 얼굴을 오전 내내 지울 새가 없을 정도였다.
낮 12시가 조금 넘은 시각, 그는 사무실 한편에 있는 밥솥을 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오곡밥을 퍼 그릇 절반 정도로 담았다. 냉장고에서는 플라스틱 용기에 담긴 멸치와 깻잎 그리고 김치를 꺼냈다. 멍석 위에 신문을 깔았다. 밥 먹을 준비가 끝났다.
보좌관들이 구내식당으로 간 사이, 사무실엔 그와 취재진만 남았다. 소박한 그의 식단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반찬은 모두 집에서 보내줬단다.
"먹을거리는 단순히 에너지 보충하는 게 아니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신체와 정신이 바뀐다. 살아있는 먹을거리를 먹어야 한다. 단식 많이 해도 활동할 수 있는 건, 올바른 식습관을 지켜와서다. 식사할 때마다 하늘·자연의 순리·농어민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먹는다."
그는 여섯 차례의 단식투쟁으로 유명하다. 지난 2005년엔 29일 동안 단식을 하기도 했다. 현역 의원 최장기였다. 쇠고기 협상 타결 직후 청와대 앞에서 4일간 단식했다. 강 의원은 "5일을 넘어가면 (오히려)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먹고 싶을 땐 오죽하겠느냐"고 너스레를 떨었다.
그의 모습 뒤로 커다란 절구통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350년 된 것으로 2005년 쌀 협상 뒤 집에서 가져왔다"고 말했다. 이어 "국회가 정서적으로 농업을 외면하는 것 같아 우리 방이라도 농촌 분위기가 나도록 했다"며 "고향이 그리울 때가 많다"고 전했다.
그 뒤로 큰 호랑이 그림이 있었다. 그의 지지자가 보낸 거란다. 강 의원은 "호랑이처럼 국회에서 큰 소리 내고, 예전 호랑이가 사람을 지켜주었듯, 호랑이처럼 국민을 잘 대변해달라는 뜻"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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