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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농심이 주요 라면과 스낵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고 밝힌 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라면을 사고 있다.
 지난 2월 농심이 주요 라면과 스낵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고 밝힌 뒤 서울 시내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들이 라면을 사고 있다.
ⓒ 연합뉴스 서명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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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가 하늘높은 줄 모르고 치솟고 있다. 2008년 5월, 한국사회에는 두 가지 기록갱신 행진이 진행중이다. 연일 최저치를 갱신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고 연일 최고치를 갱신하는 것은 바로 물가상승률이다.

물가상승률, 4%를 돌파하다

치솟는 물가 앞에 경제를 살린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위세는 허세가 되고 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소비자 물가추이는 2008년 1월에 3.9%로 위험신호를 보내더니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2월 3.6%에서 3월 3.9%를 기록하였고 이 가운데 소비자들이 자주 구입하는 152개 품목인 생활물가지수는 4.9%나 올랐다. 급기야 4월 물가상승률은 4.1%로 4%를 넘어서고 말았다. 이는 3년 8개월만의 최고치이다. 이 정도 물가상승률이면 도시근로자의 임금인상률은 4%를 기본으로 출발해야 하며 이자율 4% 미만의 금융상품은 모두 다 적자상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지금의 물가상승률이 떨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는 2007년, 올해 물가상승률을 2.8%로 전망하다가 그 수치를 4.1%로 올렸고 환율이 더 오르면 4.6%까지 증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경제가 어렵다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이정도는 아니었다. 소비자 물가상승률은 전년 대비 2005년 4월 3.1%, 2006년 4월 2.0%에 불과했다. 민생경제를 망쳤다는 노무현 정부도 대체로 2-3%에서 관리하였던 물가가 경제를 살린다는 이명박 정부에 와서 취임 2달만에 4% 수준으로 뛰고 있다.

올해 초 이명박 정부는 3.5% 이내로 물가를 관리하겠다고 밝혔지만 단 한 차례도 지켜진 바가 없었다. 이명박 대통령도 재래시장을 방문하며 물가관리 의지를 밝히고 이명박 정부는 물가관리 52개 품목을 설정하면서 "경제대통령 이명박이 물가를 잡는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애썼지만 이명박 정부의 물가관리가 말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명박 정부가 물가관리 품목으로 선정한 52개 품목이 도리어 물가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지난 3월, 정부가 집중 관리한다던 52개 생활필수품 가운데 40여개 품목의 가격이 일제히 상승해버렸다. 4월에는 다시금 30개 품목이 상승하여 전체 물가상승을 주도하였다. 이 가운데 농산물 '파'는 1년전에 비해 무려 134.5%, 밀가루는 64.1%나 오른 수치를 기록하였다. 상황이 이러하니 경제계 일각에서 서투른 정부개입이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킨다는 비판이 터져나오는 것이다.

수입원자재 때문에 물가가 오른다는 이명박의 변명?

물론 이명박 정부도 억울함을 호소한다. 최근의 물가상승률은 국내 경제상황보다는 해외에서 수입하는 원자재 가격이 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08년 4월 수입물가는 작년에 비해 무려 31.3%가 뛰어 10년만에 최고치를 갱신하였다. 특히 원자재 수입가격은 60%가 급등하였다. 날로 치솟는 물가를 주도하는 것은 단연 석유가격과 곡물가격 등 해외 수입 원자재다.

급증하는 석유가격은 휘발유 리터당 1800원 시대를 열었으며 조만간 리터당 2000원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국제곡물시장 역시 가격이 폭등하여 2008년 들어 국제시장에서 쌀값은 68%나 올랐다. 이는 1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로 오른 수치이며 2001년 이후 5배나 상승했다. 뿐만 아니라 고철, 철광석, 고무 등에 이르기까지 안 오르는 것이 없을 정도로 해외 원자재 가격은 날로 뛰고 있다.

해외 원자재 가격의 급증 원인에 대해서는 다각도의 분석이 있다. 중국, 인도 등 대규모 개발도상국들의 산업화로 인한 원자재 수요의 폭증, 이라크, 나이지리아 등 산유국의 치안 불안으로 인한 원유 생산량 감소, 바이오 연료라는 곡물연료 생산 증가로 인한 곡물 공급량 감소 등등. 그러나 이들 원인들은 2000년 이후 중장기적 차원의 가격상승을 해명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2008년 들어 2-3배로 급격히 뛰어오르는 상승 양상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이다.

3월 8월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3월 8월 하나로마트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
ⓒ 청와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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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경제 부실과 원자재 가격 상승은 그저 오비이락(烏飛梨落)인가

현재 원자재, 곡물 가격 상승의 원인으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로 인한 미국경제의 위기국면을 제시하는 분석도 있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 일명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내 금융자본들이 무분별한 대출로 금융사정이 부실해져서 나타난 현상으로 미국내 구매력이 감소하는 것을 특징으로 한다. 분명한 점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미국독점자본들은 현재 자산 손실을 만회할 새로운 시장을 절실히 필요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의 석유독점자본인 미국의 엑손 모빌은 최근 고유가의 흐름을 타고 올해 1/4분기 동안 108억 8천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여 지난 기간보다 17%의 순이익 증가세를 보였다. 미국 석유독점 자본인 셰브론의 1.4분기 순이익은 51억 7천만 달러로 작년 4/4분기 대비 10%가 증가하였다.

곡물가격은 어떠한가? 미국 곡물독점자본이자 세계최대의 곡물회사인 카길은 최근 곡물가격 상승으로 상반기 3달만에 지난해의 2배에 달하는 10억 3천만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하였다. 여타의 곡물독점자본인 몬산토도 2배, 모자익은 무려 12배의 순이익 상승을 기록하였다.

이러한 양상은 최근의 원자재와 곡물가격 상승의 해택을 받는 세력이 바로 미국 석유자본과 미국 곡물자본 등 자원에너지를 점유한 대독점자본 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시장 부실화로 인한 미국금융자본의 거대한 손실과 고유가, 곡물가 폭등, 원자재 상승의 행진으로 인한 순이익 증대는 미국 독점자본의 숨통을 틔워주며 미국발 경제위기의 폭발을 늦추고 있다. 원자재 폭등과 미국발 경제위기는 그 기간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면서 단지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지는 우연의 일치라고만 보아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낳고 있다.

이명박의 수출중심 정책도 물가대란의 원인

이명박의 수출중심정책도 물가상승의 주요한 원인이다. 지난 4월 수입물가 상승률 31.9% 가운데 환율요인을 뺀 순수 가격상승률은 21.9%에 불과하였다. 이는 수입물가 상승의 30%는 원화 대비 달러와 가치변동의 환율적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지난 4월 원·달러 평균 환율은 달러당 986.66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931.50원)보다 5.9% 올랐다는 것이다. 이렇게 환율이 오르게 되면 수출하는 제품들은 상대적으로 달러가치가 내려가 수출이 원활해지지만 원화로 표시되는 수입물가는 떨어지는 환율만큼 오르게 되어 있다.

이명박 정부는 '비지니스 프렌들리'를 내세우며 수출중심의 대기업들의 성장을 위해 원달러환율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한국경제의 특성상 수출품목은 일부 대기업이 생산하는 전략품목, 이를테면 반도체, 자동차, 조선, 철강재 등인 반면 수입품목은 대다수 국민들이 소비하는 석유, 식량과 더불어 산업원자재들에 해당한다.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하는 대기업은 좋을지 몰라도 일상생활에 나서는 서민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다. 물가가 오르면 임금이라도 올려줄 것이지, 이명박의 노동정책은 임금인상 마저도 꽉 붙들어매고 있는 상황이니 이쯤이면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왜 20% 수준까지 떨어지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물론 수출중심의 한국경제 속성상 해외 원자재 가격이 상승하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이 당연하다. 이는 지난 1, 2차 석유파동 때의 경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 인도 등의 성장으로 국제원자재 시장의 가격상승이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갈수록 Made in China와 Made in India의 물량공세가 눈앞에 보이는데도 구태의연한 수출중심의 경제를 외치는 것은 무능하다 못해 안쓰럽기까지 하다.

뛰어오르는 물가는 위기의 경고등이다. 한국경제는 지금 진화해야 한다. 지금 진화하지 않으면 한국경제는 1939년 9월, 나치독일 전차군단의 진격에 한순간에 전멸당하고 말았던 폴란드 기병처럼, 중국과 인도의 거대한 파도에 휩쓸려 나갈 수밖에 없다.

박리다매에서 부가가치 중심으로 발상을 전환해야

21세기 한국은 무엇으로 먹고 살아야 하는가. 여전히 한국은 자원이 부족하니 가공무역으로 살아가야 하나. 전략의 기본은 장점을 살리면서 단점을 보완하는 것임을 명심하며 차분히 생각해보자.

한국경제의 장점은 기술집약적 산업의 시장확보이다. 21세기는 과학기술의 세기가 될 것인데 이를 위해 한국은 국가전략적 차원에서 과학기술에 과감히 투자하여 반도체, 디스플레이 분야 산업의 시장경쟁력을 더욱 높이며 아울러 자동차, 철강 부문의 기술혁신에 힘써 부가기치를 높여야 한다.

동시에 21세기 한국은 한미일 삼각동맹에서 발상을 전환하여 대륙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남북경제협력은 북한지역의 산업 원자재를 남북이 공동이용할 수 있는 좋은 방도이다. 나아가 유라시아 횡단철도를 통한 동북아 물류 중심지 구상은 자원대란의 시기에 광활한 시베리아로의 길을 열어주고 있다. 북핵관련 문제가 해결의 수순으로 접어드는 지금 대륙으로의 방향전환은 놓칠 수 없는 절대절명의 과제이다.

용량 2MB의 컴퓨터로는 수년 내로 몰려올 13억 중국의 파도와 10억 인도의 파도를 당해낼 수 없다. 70년대 한국경제가 박리다매(薄利多賣)였다면 21세기 한국경제는 부가가치(附加價値) 중심의 경제로 발상의 전환을 해야 한다. 최근 물가의 적신호는 그 절박한 경고이다.

덧붙이는 글 | 곽동기 기자는 한국민권연구소 상임연구원입니다.



태그:#물가상승, #고유가, #이명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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